김정주 회장, 6개월간 시장 뒤집어놓고 없던 일
회사 임직원ㆍ소액주주ㆍ거래처 여파는 안중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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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웨이가 인수 3개월만에 재매각이 결정됐다. 6개월간 시장을 떠들썩하게 한 10조원대 넥슨 매각은 철회됐다. 모두 '오너'들이 직접 내린 결정이다. "마음이 바뀌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넘어가기에는 시장에 미치는 여파가 크다. M&A 교과서에 '케이스 스터디'로 실릴 사안들이다.
◆8번이나 주인 바뀔뻔한 코웨이…이번이 9번째
2조원대 거래가 3개월 만에 재매각 수순을 밟는 일은 보기 드문 사례다. 거슬러 올라가면 7년간 코웨이를 대하는 윤석금 회장의 태도는 조변석개였다.
"그룹을 살리기 위해 매각하겠다" (2012년 2월)
"GS리테일에 팔겠다" (같은 해 7월)
"아니다. 코웨이 매각을 취소하겠다" (같은 해 7월)
"KTB PE에 팔겠다. 대신 경영권은 유지한다" (같은 해 7월)
"아니다. MBK파트너스에 팔겠다" (같은 해 8월)
"법정관리 신청하니까 다시 안 팔고 가져가겠다" (같은 해 9월)
"(법원 결정에 따라) MBK파트너스에 매각한다" (2013년 1월)
"그룹 명운을 걸고 다시 인수한다" (2019년 3월)
"재무부담이 불가피하다. 다시 팔겠다' (같은 해 6월)
작년 10월 웅진그룹이 코웨이 인수계약을 맺을 당시. 윤 회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코웨이를 '자식'이라 표현했다. "자식 같은 회사인데 꼭 찾아오고 싶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바쳐 코웨이를 키우고 다시 웅진그룹을 일으킬 것입니다". 실패한 기업인이지만 끈기 있게 재기에 성공한 창업자에 대한 축복도 이어졌다. 그렇게 거둔 자식을 다시 3개월 만에 새 주인 찾아주겠다고 내놓는 형국이 됐다.
물론 윤석금 회장 일가는 윤형덕ㆍ윤새봄 형제를 통해 (주)웅진 지분 27%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재매각 결정 권한이 있고, 위법사항도 아니다. 또 이번 사태를 포함해 과거의 잦은 의사결정 번복도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었던 부분들이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8번이나 주인이 누가 될지 마음 졸이고, 이제 9번째로 새 주인을 걱정해야 하는 4500여명의 코웨이 직원들은? 거래처는? (단타 투자자를 제외하고) 코웨이 미래를 걱정하고 투자한 소액주주들은?
거래에 참여한 금융회사들도 크게 손해볼 일은 없다. 영민한 사모펀드(PEF) MBK파트너스는 이미 고수익을 거뒀다. 우려가 컸음에도 거래를 밀어붙인 한국투자증권은 어쨌든 조단위 발행어음 자금 투자처를 찾아 '이자'도 받고, 리그테이블에 올릴 '트랙레코드'도 얻었다. 향후 매각 과정에서 '일감'도 땄고, 매각주관사로 '수수료' 수익도 가능하며 원금만 회수하면 된다.
조직과 회사가 이익을 봤는데…이들 금융회사 내부에서 코웨이 사태 책임을 누군가에게 물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런 일들이 늘어날수록. 뱅커들과 금융권에 대한 사회 전반의 불신과 부정적인 인식은 강화된다. "그들은 고객과 시장과 공공성을 내세우지만 결국 자사 이익 챙기기에 급급하다"
◆매각 철회는 김정주 회장의 결정 권한이 맞기는 한데…
'넥슨' 매각 철회도 김정주 회장 의중대로다. 사실 매각결정도, 번복도 모두 '오너'의 권한이 맞다. 어디까지나 본인 재산이다. 엄연한 자유민주국가에서 소유주가 팔고 싶으면 파는 것이고, 팔 사람이 없다고 싶으면 안팔아도 되는 사안이다.
하지만 그 대상이 작은 '식당'이나 직원수가 적은 '중소기업'이라면 모를까.▲국내 게임업계 1위 ▲시가총액(일본 상장 넥슨재팬 기준) 15조원 ▲임직원 2600여명에 매출 1조원인 회사다.
그 와중에 여파도 컸다. 매각 결정이 알려지며 '한국 게임산업 위기' 논란이 대두됐다. 조단위 세금 문제와 상속증여세 이슈로 국세청 등 과세당국까지 긴장시켰다. 소액주주 주식매수 여부를 놓고 일본 금융청이 유권해석을 내려야 했다. 일선 게임사들은 넥슨 주인이 누구로 바뀌느냐에 따른 여파에 촉각을 기울였다. 금융시장에서는 10조원을 훌쩍 넘기는 역대 최대 규모 M&A에 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 모든 과정이 "안 팔겠다"라는 회장님의 번복으로 없던 일이 됐다.
매각 과정에서 해프닝도 수차례였다. 최초 참여 권한을 제대로 부여받지 못한 넷마블은 '군기'가 잡혀야 했다. 다른 후보들도 대접을 못받았다. 입찰 진행 와중에 "김정주 회장이 디즈니를 찾아갔다"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거래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KKR이든, MBK파트너스든 김정주 회장의 마음에 쏙 드는 후보가 없다"라는 언급이 수시로 이어졌다. 결국 6개월의 시간과 비용이 무위로 돌아갔다.
투자시장에서는 이와 유사한 경우가 간혹 발견된다. 오너가 매각의사를 타진하고 후보들을 불러들여 형성되는 가격을 알아본다. 이후 "잘 알겠다"라고 하고 매각을 번복하는 사례다. "결국 본인 재산(지분) 시세를 알아보기 위한 목적"이라고 평가받는데 주로 창업1세대 중소업체 오너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시장은 놀이터가 아닙니다"
15년 전 LG카드를 중심으로 '카드 사태'가 터졌고 국민들 상당수가 신용불량자가 된 시절이 있었다. 카드사들이 '돈이 된다'고 앞다퉈 카드 발행을 남발한 것이 원인이었다. 당시 해결사로 '친(親) 시장주의자'인 이헌재 장관이 3년 반 만에 다시 경제부총리로 취임했는데 이때 자주 회자되는 대목이 있다.
"시장은 매우 소중합니다…그러나 시장은 매우 취약하기도 합니다. 사적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시장 참가자들의 이기적인 행동은 쏠림현상을 심화시키고 불안정성을 확산시킵니다"
"시장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고, 내키면 하고, 싫으면 안하는 철없는 어린 아이들의 놀이터가 아닙니다. 시장이 깨지든 말든 내 이익만 챙기면 된다는 억지나 불장난이 용납되어서는 안됩니다. 시장의 자율은 참가자의 책임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2004년 2월 11일 경제부총리 취임사)
15년이 지난 지금. 국내 투자시장은 의사결정 번복이 잦고, 본인 이익이 가장 먼저인 오너들의 '놀이터'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창업자ㆍ기업인들의 엄청난 사회 기여도에도 불구, 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여전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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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6월 27일 13: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