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시카우 메모리반도체엔 호재 전망…재고 감축 및 가격상승 유도
메모리반도체 '감산'결정 공식화 둔 부담도 일부 덜 듯
삼성그룹 내부 사정 둔 관측도…"위기감 고조가 나쁜 상황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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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에 대한 기습적인 수출규제안을 발표한 이후 국내 산업계는 혼란에 빠졌다. 당장 반도체 설비가 2주 내 멈출지, 3주 내 멈출지 등 정확하지 않은 정보들을 두고 여론전이 펼쳐지기도 했다. 애초 물밑에서 조용한 해결을 희망했던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의 바람과는 달리, 양국 정부 차원의 전면전으로 전선은 점차 넓혀지는 모양새다.
혼란 속 일선에 선 삼성전자에도 해결이 쉽지 않은 과제들이 놓였다.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나서 대규모 투자를 공언한 ‘미래 먹거리’ 비메모리 분야의 평판 훼손 문제를 극복해야 하는 점은 급선무로 꼽힌다.
반면 업황 하락 사이클을 맞은 삼성전자가 이번 불확실성을 활용해 오히려 반도체 재고를 소진하고 가격 상승을 유도하는 등 반전의 기회로 삼을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日, 삼성 미래먹거리 '파운드리' 사업 정조준…'평판 리스크' 휩싸인 삼성전자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 4일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 3종(고순도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에 대한 한국으로의 수출 규제를 발동했다. 업계에선 일종의 ‘위협구’라는 해석이 나왔다. 일본 정부에서 충분히 국내 반도체사들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품목들 대신 당장의 생산과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품목들을 대상으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특히 반도체 업계에선 일본이 포토레지스트 중에서도 메모리반도체에 쓰이는 불화아르곤(ArF) 포토레지스트 대신,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로 규제 대상을 한정한 점이 관심을 끌었다. 국내 정부와 삼성전자가 미래 먹거리로 육성 중인 비메모리반도체(파운드리)를 겨눴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같은 일본의 의도가 시장에 확산되면서 타깃이 된 삼성전자와 비켜간 SK하이닉스 양사의 주가 회복 폭에서도 격차를 보이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D램과 낸드 등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선 글로벌 시장의 절대 강자지만, 비메모리 시장에선 사실상 도전자 입장에 놓여 있었다. 이번 사태로 입을 평판 리스크를 극복하는 게 시급한 이유다. 삼성전자는 올해 하반기~내년도 1분기부터 EUV를 활용한 7나노 공정 비메모리 설비 가동 계획을 세워둔 상황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향후 133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를 약속한 '비메모리 2030' 계획의 첫 시험대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비메모리 청사진 발표와 동시에 퀄컴·IBM·엔비디아·인텔 등 글로벌 고객사들을 공격적으로 확보하면서 본격적인 양산 채비에 나섰다. 하지만 핵심 소재 공급망 한 곳의 변수로 전체 설비가동이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고질적인 리스크를 노출했다는 평가다. 선두업체인 대만 TSMC의 경쟁력이 공고한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EUV를 활용한 미세화 경쟁에 승부수를 던진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이번 경쟁에 탈락할 경우 양 사의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최근 들어 글로벌 IT사들간 적시 공급 및 품질관리를 둔 공방은 평판 뿐 아니라 실적과도 직결되는 핵심 문제로 거론됐다.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의 경우 2분기 애플이 약속한 아이폰향 디스플레이 패널 물량을 받아가지 않아 80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보상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분기엔 일부 D램 불량을 이유로 아마존으로부터 리콜요청을 받아 반대로 수천억원의 보상금을 지불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 입장에선 최악의 경우 수주 받은 물량 조차 소화하지 못했다는 평판 문제와 더불어 대규모 보상금까지 지불해야 할 위험에 놓인 셈이다.
한·일간 갈등이 단기간 봉합되지 않을 경우, 일본이 세 가지 품목으로 던진 ‘견제구’가 실질적인 타격으로 옮겨붙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내달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 등 추가적인 규제안을 본격화 할 경우 웨이퍼·블랭크 마스크 등 타 핵심 장비 등도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수출을 일본 정부가 인위적으로 막을 경우 글로벌 수급 상황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일본 정부 입장에서도 전선을 확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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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고 덜고 가격 올리고, 정작 메모리 사업엔 호재?…이재용 부회장 거취와도 연관된 '위기론'
반면 반도체 업계 내에선 일본의 공세를 바탕으로 삼성전자가 반전 카드를 마련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갑작스러운 일본 소재업체들의 이탈은 명확한 악재지만, 오히려 삼성 입장에서도 불확실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시장 내 영향력을 확보하고 손실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준비할 것이란 시각이다.
그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메모리반도체사들의 고민은 팔리지 않아 쌓인 '재고량'이었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1분기말 삼성전자의 재고자산은 14조원 수준으로 반도체사업부의 한 분기 매출액을 상회한 상황으로 진단됐다. 이를 바탕으로 집계한 삼성전자의 반도체 재고자산회전일수(DOI), 즉 재고가 기업에 남아있는 일수는 193일 수준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엔 30~40일 가량 재고를 보유했던 점과 비교하면 6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이로 인해 D램 가격이 고점 대비 67%가량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업계에선 삼성전자의 단계적 대응으로 ▲불가피한 외부 변수로 인한 현물(Spot) 시장 내 적시 공급 차질 및 가격 인상 유도 ▲주요 고객들에 일본 분쟁으로 인한 생산 차질 우려 메일 발송 ▲컨퍼런스 콜 등을 통해 불확실성 공식화 ▲생산 차질로 인한 미국 등 글로벌 수요처에 대한 적시 공급 우려 표명 등의 절차를 하나씩 밟아갈 것으로 전망했다.
노근창 현대차투자증권 연구원은 리포트를 통해 "미국의 화웨이 제재가 수요에 영향을 주는 제재였다면, 일본 소재 수출 제재는 공급에 영향을 주는 제재"라며 "삼성전자의 캐시카우인 메모리 제품 가격에는 오히려 긍정적인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무엇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사들 입장에선 내부적으로 고심했던 ‘감산’카드를 공식적으로 꺼낼 명분이 마련됐다는 시각도 나온다.
그간 삼성전자 입장에선 수요 부진과 쌓인 재고를 고려하면 추가 투자를 다시 생각해봐야 할 상황이지만, 이재용 부회장이 나서 시장과 정부에 대규모 투자를 ‘공언’한 탓에 쉽게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일본 변수를 이유로 감산을 대외적으로 공식화할 경우, 회사의 실적 및 업황 측면에서 효과를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이번 분쟁을 통해 위기감을 고조하는 게 사업환경 뿐 아니라 삼성그룹 및 이재용 부회장의 입장에서 결코 나쁘지 않다는 시각도 나온다. 대법원 3심 결정을 앞둔 이재용 부회장의 ‘특수’ 상황을 고려한 목소리다.
이번 사태 직전까지만 해도 사정당국의 수사는 이재용 부회장 최측근 인사들까지 좁혀졌다. 대법원 판결을 앞둔 상황에서 측근들이 대거 구속되는 상황이 발생했고,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과정의 핵심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정까지 재조명받는 계기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무역분쟁이 터졌고 오너인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일본에 출국해 해결책을 찾는 모습을 내비치고 있다. 그만큼 재계와 산업 전반에서 이재용 부회장이란 오너의 '필요성'을 대외에 설파할 수 있는 계기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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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7월 18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