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성은 인정…매각 과정 '각론'에서 시장과 일부 후보들 원성
"후보에게 시너지 요구", "빠듯한 일정", "캡티브 대안 부재" 등
부활한 경영전략팀 작품…"경험ㆍ전문성 더 있어야" 지적도
-
올해 들어 LG그룹 내 거의 전 계열사들이 M&A를 진행하고 있다.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비핵심 사업부에 대한 '매각' 혹은 '철수' 움직임이다.
투자시장에서는 그룹의 미래 성장을 위한 재원 마련 차원으로 이를 높이 평가한다. 또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 마침내 적자를 내왔던 사업부들에 손을 대고, 포트폴리오 전반을 조정하는 데 대한 우호적인 시각이 많다.
그러나 '방향성'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받아도 '각론'에서는 냉랭한 시각이 적지 않다. 올해 1월을 기점으로 계열사들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한꺼번에 매물을 쏟아내면서 시장에서 소화도 잘 안되고, 매각 과정에서 일부 혼선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작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LG의 사업부 구조조정과 매각에는 그룹 내 큰 계열사들은 대부분 참여하고 있다. 회사별로 ▲LG화학은 LCD용 편광판ㆍ유리기판 사업 매각 ▲LG전자는 수처리사업 자회사 매각ㆍ퓨얼셀시스템즈 청산 ▲LG디스플레이는 일반 조명용 OLED사업 철수 ▲LG유플러스는 PG사업부 매각 ▲LG CNS는 지주사 보유지분 가운데 35%매각 등이다. 별개로 중국 베이징의 트윈타워도 시장에 내놓았다.
-
이렇게 사업부 청산과 외부 매각이 병행되면서 M&A 시장에서는 LG그룹 '매물'들이 한꺼번에 돌기 시작했다. 국내 대기업 가운데 계열사 매각을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단기간 내 처리하는 경우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
이러다보니 여러 해프닝도 벌어진다.
한 투자업체 관계자는 "LG그룹 매물만 지금 3~4개를 동시에 인수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며 "자연히 거래에 소요되는 관심도와 에너지가 분산될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상황은 현재 대기업의 투자의욕 상실로 침체를 겪는 국내 M&A 시장에서 '원매자'가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심각해졌다. 즉 국내 또는 해외 사모펀드(PEF) 등을 비롯해 수천억원~조단위 매물을 소화할 수 있는 인수 후보가 몇몇에 불과한데 이들을 대상으로 LG그룹이 '매물 쇼핑'을 의도치 않게 강요한 셈이라는 것.
다른 관계자는 "원매자가 많지 않은데 고만고만한 매물만 한꺼번에 내놓으니 협상 일정 조정도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사모펀드 업계 관계자는 "소비재인 TV 하나를 팔더라도 상당한 사전 준비와 다양한 전략을 내놓는 LG그룹이었는데 매각 가격만 수천억 원 하는 회사들을 이렇게 준비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매각한다는 점 자체가 이해하기 힘들다"라고 지적했다.
매각 과정에서 준비가 미흡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시장에 나온 LG그룹 상당수는 '그룹 물량'(Captive)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사업부들이다. 인수자로서는 LG그룹으로부터 이 사업부들을 사들인 이후 캡티브 물량 의존도를 어떻게 할지, 그룹 차원에서 어떤 대안이나 배려를 갖고 있는지가 중요한 사항이다. 하지만 매각 과정에서 이런 사전 작업이 제대로 조율이 되지 않고 있다고 원매자들은 지적한다.
매각자가 정리해야 할 사항을 인수 후보에게 요구한다는 불만도 제기됐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회피 차원에서 진행되는 LG CNS 지분 매각의 경우. LG그룹은 이 소수지분을 인수할 후보가 앞으로 어떻게 회사를 키울 것 인지 등에 대한 '사업적 시너지를 제출하라'는 의견을 냈다. 재무적 투자자도 '동반자'로서 대하는 태도로 평가받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지분 인수를 검토한 원매자들 사이에서는 불평이 나왔다. “캡티브 물량이 상당한 회사의, 그것도 경영권도 없는 소수지분을 팔면서 향후 사업적인 시너지부터 먼저 제시해 달라고 하는가"라며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매각 가격에 대한 기대감은 높은데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은 자주 나온다.
LG CNS 지분 매각의 경우 LG그룹에서 원하는 가격이 1조원에 달하다 보니 인수자들이 섣불리 인수에 나서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최근 예비입찰을 진행한 LG유플러스 PG사업부의 경우, 매각 측에서는 4000억원대 매각가격을 희망하고 이 같은 의사를 내비쳤지만 후보들은 당황하고 있다. 이른바 상각전이익(EBITDA)가 300억원에 불과한 회사인데 여기에 13배가 넘는 배수(EBITDA Multiple)을 적용하려는 게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
높은 가격을 고집하다 결국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을 받은 사례도 나왔다. 부방그룹에 넘기기로 한 LG전자 수처리 사업부는 매각 자체에는 성공했지만 당초 기대했던 가격인 5000억원의 절반 정도인 2000억원대 중반을 받는데 그쳤다. 역시 그룹사 매출 의존도가 높다 보니 제값을 받기가 어려웠다. LG그룹에서 떨어져 나가는 상황에서 이전과 같은 매출을 올릴 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서다. 입찰 진행 과정에서 후보들의 참여ㆍ탈락이 수차례 반복되기도 했다. IB업계 관계자는 “LG가 시장 가격을 인지하고 거래를 종결하는 데 더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매각을 진행해도 팔리기 어려울 것으로 평가받는 대상도 있다. LG화학이 내놓은 중국 편광판 사업부는 사실상 철수 수순을 밟고 있다. 전방사업인 LCD시장의 수익성은 날로 악화되는 데다, 중국 업체들이 상당수 기술력을 보유한 상황에서 생존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사업부다. 작년에 이어, 매각 결정을 냈던 지난 3월까지도 중국 법인(난징·북경·광주) 세 곳의 합산 순익은 35억원 가량 적자를 냈다. 이런 사업부를 시장에 내다 팔려 하니 관심도가 높지 않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지금 LG그룹에서 진행하는 매각은 '시장에 일단 내놓으면 팔린다', '빨리 팔고 보자' 라는 생각으로 진행하는 듯하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정작 사업부 재편의 '아킬레스'에는 손을 못 댄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재계는 물론, 투자시장에서 LG그룹 사업 재편을 거론할 때 한결같이 꼽는 대상은 '17분기 연속적자'를 기록한 LG전자 스마트폰 사업부다. 하지만 과거 이를 방치했던 LG그룹은 아직도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고, 다른 작은 사업부 매각에만 힘을 쓰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장에서 스마트폰 사업부 매각 검토에 대한 예상이 나오기만 해도 LG그룹은 "현재 매각은 전혀 검토되고 있지 않고, 그룹 경영전략팀이 어떤 외부 의견을 듣거나 조율한 적도 전혀 없다"는 입장을 내놓는다.
이런 일련의 그룹 계열사 매각ㆍ사업 재편은 (주)LG의 '경영전략팀'이 주도하고 있다.
지주사 내 경영전략팀은 과거 LG그룹 전반의 사업전략을 담당했으나 2017년~2018년 초 구본준 부회장ㆍ하현회 ㈜LG 부회장이 지주사를 이끌 당시에는 '신사업전략팀'과 함께 해체됐다. 이때는 대신 '기획팀'이 신설되어 신사업 전략을 담당했고 담당 임원도 교체됐다. 이러다 작년 하반기 구광모 회장이 부임하고, 하현회 부회장 대신 권영수 부회장이 지주사에 오면서 팀 개편이 이뤄졌다. 기획팀은 해체되고 담당 임원은 LG전자로 복귀했고, 대신 기존의 경영전략팀이 부활했다. 구광모 회장 본인도 과거 경영전략팀에서 경영 수업을 받은 이력이 있다.
부활한 경영전략팀의 수장으로 LG그룹은 베인앤컴퍼니 홍범식 대표를 올 초에 '사장'으로 영입했다. 그는 모니터그룹ㆍ베인앤컴퍼니에서 정보통신 및 테크놀로지를 담당한 전통적인 '전략 컨설턴트'로 꼽히는 인물. 일각에서는 경쟁사인 SK텔레콤의 신사업담당 출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근무기간은 2005년 하반기~2007년 9월 말로 2년 남짓 정도로, 사업전략실장ㆍ사업전략 2팀장 정도만 역임했다. 그가 현재 LG그룹의 경영전략팀을 맡으면서 지금의 포트폴리오 조정이 본격화됐다.
경영전략팀의 최근 행보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엇갈린다.
그간 LG그룹은 지주사의 계열사 조정 능력과 기능이 다른 대기업에 비해 약했던 것으로 평가받았다. 각 계열사들의 경쟁력과 성장 동력이 강한 시절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경영 환경이 급변하는 최근 상황에서는 컨트롤타워로서 기능 강화가 필수인데, 이런 차원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이들이 많다. 어쨌든 변화에 앞장서서 대응하려는 시도 자체가 긍정적으로 인정 받는다.
하지만 추진 과정에서 경험이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동시에 제기된다. 일련의 사업부ㆍ자회사 매각에서 투자시장의 비판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
즉 일단 그룹의 미래 전략과 밑그림부터 명쾌히 내세우고, 가장 큰 문제부터 차분히 접근하기보다는 단기 성과에 치중해 "불필요한 것은 다 팔아라"라고 지주사가 몰아붙이는 형국이어서 최근의 해프닝이 발생했다는 지적인 셈이다.
투자업계 일각에서는 LG생활건강만 유독 그룹 전반의 '매각 대열'에서 빠진 것을 두고도 여러 해석이 나온다.
표면상으로는 그룹 내에서 가장 주목을 받을 정도로 실적도 좋고, 꾸준한 성장세로 경쟁사를 압도한 이력이 이유로 꼽힌다. 한편으로는 홍범식 사장의 지주사 경영전략팀이라고 해도 M&A 경험이나 전문성, 전략 면에서 경험이 훨씬 많고 이를 통해 회사를 키웠던 차석용 부회장에게 계열사 재편에 대한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예상도 함께 거론된다.
한 컨설팅 전문가는 “지주사 권한이 강해지는 과정에서 각 계열사 부회장들과의 조정이 필요할 것이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라며 “회장 휘하의 지주사 중심 체제를 꾸리는 데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8월 07일 12:12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