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지는 中 LCD 공세…업계 삼성그룹 OLED 진입 임박 예상
10兆 규모 대규모 국내 투자 전망…정부와 호흡 가능성
대법원 파기 환송으로 불투명해진 거취…투자 영향 미치나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법원의 파기 환송 결정으로 뇌물·횡령죄에 대해 다시 심리 받게 되면서 그룹의 의사 결정에도 일부 불확실성이 커졌다. 특히 삼성그룹의 향후 TV사업 전략을 둔 결단이 늦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조(兆)단위 투자를 준비 중이던 삼성디스플레이의 투자 계획의 연기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부회장이 대법원 선고 직전에도 사업장을 방문해 직접 디스플레이 육성 계획을 밝히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룹 내 이견도 만만치 않다. 일각에선 그룹이 일관된 전략을 고심하기보다 총수의 향방에 따라 투자 계획 자체도 급변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QLED’ 브랜드를 내세워 점유율을 유지해왔다. 기존 LCD 패널에 퀀텀닷 기반 필름을 입힌 제품이다. 경쟁사인 LG전자 및 LG디스플레이가 일찌감치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LCD를 탈피해 OLED 패널을 활용한 제품 양산을 결정한 점과 대비됐다.
삼성전자 입장에선 LCD에 기반한 QLED TV가 경쟁사의 OLED TV 대비 가격경쟁력을 갖춘 데다, 브랜드 마케팅이 영향을 미치면서 큰 투자 없이도 일정 점유율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업계에선 중국의 공세가 더욱 거세지는 LCD 이후 미래 프리미엄 TV 시장을 둔 뚜렷한 전략이 없다는 전망이 꾸준히 이어졌다.
우려대로 최근 중국 업체들의 LCD패널 저가 공세가 더욱 거세지며 삼성그룹 입장에서도 결단의 시기가 촉박해졌다. 삼성디스플레이도 천안 아산 내 기존 대형 LCD 라인을 일부 폐쇄하기로 하는 등 ‘출구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증권가 및 업계에선 삼성디스플레이가 대형 LCD 설비 공백을 결국 대형 QD-OLED 시장 진입을 통해 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IHS마킷은 "삼성디스플레이가 기존 LCD 패널을 생산하는 L8-1 라인 뿐 아니라 L8-2라인도 오는 8월 안에 폐쇄해 QD-OLED로 전환할 것"이라며 "2021년 1분기를 양산 시점으로 보고 있는데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도 양산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
다만 이미 삼성디스플레이 내부적으로 양산 기술을 갖춰놓은 상황에서도 수년째 의사결정이 미뤄져 온 점이 변수다. 여전히 아산 신규 공장(A5) 내 설비 및 장비 투입 여부도 확정짓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내 관계자는 "지난해 중단됐던 공사가 올해들어 재개됐지만 아직 내부 장비 등은 확정하지 않고 골조만 지어 놓는 단계로 지시가 온 것으로 알고있다"고 설명했다.
우선 TV사업을 꾸리는 삼성전자 내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와 패널을 공급하는 삼성디스플레이간 의견 조율 문제가 꼽힌다. 삼성디스플레이가 QD-OLED로 프리미엄 시장에 새로 진입한다면 현재 캐시카우 역할을 담당하는 QLED의 브랜드 위치는 모호해진다.
무엇보다 삼성그룹 입장에선 그동안 LG그룹과 프리미엄 TV 기술력을 두고 펼쳐온 자존심 경쟁에서도 사실상 "LG의 OLED가 맞았다"는 명분을 만들어 주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양 사는 수장이 직접 나서서 여론전은 물론 법정 소송까지 불사할 정도로 프리미엄 TV 방향성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쳐왔다. 이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QD-OLED로 자사 기술을 알리더라도 큰 틀에서 ‘OLED’ 진영에 후발주자로 진입하는 점은 극도로 부담이될 것이란 지적이다.
실제 삼성전자도 공식석상에서 QD-OLED와 관련된 발언을 자제하고 있다. 지난 2018년 3분기 컨퍼런스 콜을 통해 “삼성전자는 TV사업에서 QLED 마이크로LED 투트랙 전략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마이크로LED는 OLED를 뛰어넘을 미래 디스플레이로 주목받지만, 업계에선 여전히 양산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데다 원가경쟁력 측면에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입장에선 LCD 기반이긴 하지만 QLED TV가 판매량과 수익성 측면에서 나쁘지 않다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QD-OLED 진입을 결단하더라도 일부 소수 모델 생산 정도로 유지하고 싶어할 것”이라며 “삼성디스플레이 입장에선 진입시기부터 유의미한 점유율을 확보해야 본격적인 경쟁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대형 패널 중 어느 정도 비중을 OLED에 둘지도 갈등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그룹내 최고경영진이 나서 계열사간 이견을 일정부분 조율할 수 있지만, 이 부회장이 재판 과정을 다시 거쳐야하는 특수 상황에 처한 점은 변수다. 이 부회장은 대법원 판결 사흘 전에도 삼성디스플레이 아산 공장을 찾아 “지금 LCD 사업이 어렵다고 해서 대형 디스플레이 사업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그간 삼성그룹이 대형 디스플레이는 물론 TV 사업을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시장의 의구심은 어느정도 가라앉혔지만, 여전히 QD-OLED 등 구체적 방향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일각에선 QD-OLED 투자에 10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재원이 투입되는 만큼 이 부회장의 재판 결과와 맞춰 일정이 재조정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삼성디스플레이가 투자 결정을 공식화하면 그동안 반도체·전기차 배터리와 더불어 흔치않은 대규모 투자가 집행되는 데다 장비 및 소재업체 육성과도 연계될 수 있다. 국내 투자를 유도하는 정부 기조와도 발맞출 수 있다. 일각에선 이재용 부회장이 비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디스플레이에서도 '디스플레이 2030 계획'을 정부와 시장에 발표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다른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이미 삼성그룹의 디스플레이 투자 발표 자체는 양산 기술력 확보 혹은 투자 규모 문제를 떠나 시기의 문제라는 시각이 우세하다"라며 "중국의 굴기로 LCD 시장이 사실상 끝나면서 결단을 내릴 시점은 다가오는 데, 이재용 부회장 개인 문제로 투자 적기를 놓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고 설명했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9월 03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