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ㆍ시장 비판 잦은 상태에서 후계자 '마약사건' 터져
지주사 주가하락ㆍ재무부담 악화ㆍM&A시너지 의심 상황
이때 행동주의 펀드 먹잇감 되면 치명타…방어논리도 부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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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상위권 그룹 상당수는 '승계'와 '상속세'라는 공통 숙제를 안고 있다. 여파도 크고, 일부는 현재 진행형이다.
삼성은 '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물산 최대주주가 됐다. 하지만 엘리엇의 공격에 시달렸다. 국정농단 사건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분식 의혹까지 얽혀 한때 오너가 구속되기도 했다. 현대차도 지배구조 개편안을 추진하다 엘리엇과 외국인 주주 반발에 무위로 돌아갔다. 다만 당시에도 세금에 대해서는 '1조원대 양도세를 내겠다'는 정공법을 표방했다.
LG그룹은 상대적으로 명쾌했는데 1조원에 가까운 상속세를 그대로 내기로 했다. 새 회장의 비전과 능력이 시험대에 올라와 있는 상황이다. 롯데는 '형제의 난'을 겪었다.
한화는 슬슬 밑그림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GS는 '복합 방정식'을 풀어야 할 가능성이 높다.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활용할 것으로 평가받는다. 한진은 KCGI 공격에 시달리다 고(故) 조양호 회장 별세로 승계가 이뤄졌다.
그 다음은? 재계 순위로 보면 CJ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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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계 위한 '일감몰아주기' 및 '계열사 합병'
그간 CJ그룹의 '승계 움직임'은 호반건설이나 대림 등과 유사한 모양새를 보였다. '자녀들의 계열사 지분 확보 → 해당 계열사 덩치키우기 → 계열사 지분을 지주사 지분 인수 재원으로 사용' 형태다. 그간 재계 오너들이 자주 사용한 '승계 방정식'을 고스란히 따랐다.
CJ는 2004년 그룹 IT회사인 'CJ올리브시스템즈'( ㈜CJ 66.3% 이재현 회장 31.9%)와 드러그 스토어를 운영하는 'CJ올리브영' ㈜CJ 100%)을 합병, 거대회사인 'CJ올리브네트웍스'를 만들었다. 생뚱맞은(?) 성격의 두 회사를 합병하면서 "유통·물류 분야의 IT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 , "국내외 사업확장을 위한 투자재원 확보하고 '빅 데이터'를 활용해 스마트 유통회사로 성장기반을 구축한다"가 목적이라고 밝혔다.
이 무렵 올리브시스템즈 그룹 내부거래 비중이 높아 '일감몰아주기' 논란이 있었는데 이 합병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어쨌든 회사 덩치가 커졌다. 이렇게 커진 회사 지분을 이재현 회장이 장남 이선호 부장에게 몇차례 양도했다. 그리고 다시 올리브네트웍스 '덩치 키우기'가 진행됐다. CJ파워캐스트 자회사 편입ㆍ지분스왑 등이 이뤄졌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올리브네트웍스에 대한 이선호 부장 지분은 18%가까이로 늘어났다. 회사 덩치가 매년 커진터라 이선호 부장 지분 값어치도 급등했다.
올 4월부터 이선호 부장을 위한 승계 작업이 본격화됐다. 불과 몇 년 전에 시너지를 위해 합쳤다는 'IT회사'와 '올리브영'을 이번에는 다시 쪼개기로 했다(인적분할). 이제 이선호 부장은 IT회사ㆍ올리브영 두 회사 지분을 함께 가지게 됐는데 이 가운데 일부 지분을 교환, 드디어 ㈜CJ 지분을 확보한다. 그리고 8월에는 ㈜CJ의 신형우선주도 상장했는데 보통주보다 가격이 싸고, 10년뒤 보통주 전환도 가능하다. 시장관계자들 대다수는 이선호 부장 '승계용' 우선주로 해석했다.
불법은 아니지만, 편법에 가까운 승계작업이 이어지자 시장 안팎에서도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시민단체들도 앞장섰다. 경제개혁연대는 "2014년에는 전산회사와 올리브영 시너지를 이유로 합병을 추진했다가 이제와서 시너지가 없다며 쪼개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인적분할과정에서 IT회사가 올리브영보다 비싸게 책정되어 분할비율을 마련한 이유가 무엇이냐"라고 비판했다.
마치 삼성물산-제일모직 때와 거의 유사한 그림이 이어지고 있다.
물론 CJ그룹은 이런 해석과 비판을 전면 부인해왔다. 어디까지나 사업시너지가 목표일 뿐이고, 계열사 합병ㆍ우선주 상장 모두 "승계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한국 대기업은 '오너'와 '주주'를 차별대우한다"
사실 '장자 승계'는 비단 범(凡) 삼성가(家)가 아니더라도, 국내 재계 오너들 사이에서 통용된 일종의 '룰'이기도 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 , '전문경영인 체제' 는 아직 요원한 얘기다.
그러니 장녀 이경후 상무 (1985년생)ㆍ장남 이선호 부장(1990년생)가 있는 CJ그룹의 승계는 이미 정답이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이전 세대와 달리 지금은 승계 성사가 전부가 아니다. 시장과 주주들이 세 가지를 따져 묻기 시작한다. ▲승계가 얼마나 합법적ㆍ합리적이고 사회 통념에 위배되지 않게 이뤄졌느냐 ▲새 오너가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대응할 비전ㆍ역량을 갖췄느냐 ▲'오너 일가'를 제외한 주주들의 이익과 기업가치 제고가 이뤄지느냐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삐끗'하면? 기관과 주주들의 반발에서 비롯돼 행동주의 펀드의 타깃이 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선호 부장의 '마약사건'은 여기서부터 '시한폭탄'으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즉 온갖 비난과 비판에도 불구, 그룹이 나서 '장자 승계'를 위해 움직였다. 계열사 합병과 분할의 수혜 중 상당수는 이선호 부장 1인에게 돌아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과정에 자칫 다른 CJ그룹 주주들에게 피해가 생긴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한다면?
이쯤이면 싸움거리와 논란을 원동력 삼아 고수익을 노린 헤지펀드 혹은 행동주의 펀드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지난 3년간 한국 재계 톱 10위 가운데 삼성ㆍ현대차ㆍ한진 등 3곳이 동시다발적으로 행동주의 펀드 먹잇감이 된 것을 우연이라 보기 어렵다.
너무 먼 얘기, 혹은 가벼운 단상이라고 보기에는…최근 해외 투자자들은 CJ에 꽤 관심이 있어 보인다.
일례로 리먼 브러더스 사태에서 숏 전략으로 '489%" 수익률을 남겨 영화' 빅쇼트'(Big Short) 의 실제 주인공이 되기도 한 마이클 버리(Michael Burry)가 최근 블룸버그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꼽은 종목 중 하나가 CJ다. 한국에 저평가된 주식이 많다면서 관심있다고 표현했다. 보도가 나간 후 며칠간 우선주를 포함한 CJ주가도 2% 가까이 올랐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그가 남긴 언급이 여운을 남긴다.
"(한국의 기술 역량과 고등교육 수준을 언급하며) 한국은 매우 잠재력이 높습니다. 한국 주식도 거의 항상 가격이 낮았습니다. 그리고 (한국기업의) 경영진들은 '주주'들을 '오너'처럼 동등하게 대우하지 않는데 이런 점에서는 비난받아야 합니다" (“Korea has so much potential,” Burry wrote, citing the country’s technological prowess and high education levels. “Yet Korean stocks are almost always cheap, and management teams are to blame because they do not treat shareholders equally as owners.”)
심지어 지금 CJ그룹 상황도 여의치 못하다.
지주회사인 ㈜CJ 주가는 8만원대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 중이다. 작년 주가가 18만원에 달했는데 지금 주가가 이렇다는 건, 주주들의 실망이 어마어마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오죽하면 "승계를 위해 일부러 낮아진 주가를 방치하는 것 아니냐"는 푸념까지 나오고 있다.
CJ제일제당을 위시해 단행된 글로벌 M&A는 재무부담 우려를 시장에 각인시켰다. 그러한 M&A들이 그룹에 어떤 시너지를 부여할지 시장은 의구심을 보인다. 신용평가사들은 CJ에 슬슬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 외형확대 성과가 실적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신용등급을 떨어뜨릴 기세도 엿보인다. CJ ENM은 홈쇼핑과 합병 이후 성과 부재로 연일 기관투자자들의 뭇매를 맞아 왔다.
이런 와중에 정말 행동주의 펀드가 공격에라도 나선다면. 그리고 승계에 치중한 그룹의 활동을 비판하고 외국인 주주들의 세력을 모은다면. (㈜CJ 외인 지분율은 11%에 달한다) 삼성물산-제일모직 사태가 오버랩되기 시작한다.
그나마 삼성은 '한국 대표기업'이라는 명분이라도 확실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어쨌든 경영 수업을 받고 명실공히 그룹을 이끄는 리더로서 인식됐다. 그래서 '애국심'에 호소라도 가능했다.
그러나 CJ에서 이런 방어가 가능할까.
비판의 종착점은 결국 마약 밀반입 사건까지 일으킨 29세의 젊은 장자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왜 그런 장자의 승계와 이익을 위해 다른 주주들이 희생해야 하는가"
이번 마약사건의 진짜 함의는 바로 이 지점이다.
관심사는 좁혀진다. 첫째 "CJ그룹의 승계 방향은 변함이 없는가. 그리고 당사자는 승계 의지와 역량이 있는가", 둘째 "승계가 본격화 될때 어떤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
비교가 될 사례는 이미 나왔다. 유사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SPC그룹은 '모든 보직에서 물러나고 향후 경영에서 영구 배제'라는 단호한 조치를 내놓았다. 비록 장자가 아니었다고는 하지만 상당한 역량을 보였던 차남에 단호한 입장을 취했는데, 그러지 않았다면 SPC그룹에 대한 평판과 기업가치 하락은 불가피했다.
반면 CJ그룹은 아직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았다.
사건이 터질 때도 묵묵부답이었고, 첫 코멘트조차 당사자가 검찰을 찾아가자 그제서야 나왔다. 시장은 주가하락을 걱정하고, 임직원들은 허탈감을 표명하는데 경영진이 내놓은 답은 "이선호 부장이 사죄드린다"며 '개인 문제'로 축소하는 내용의 11줄짜리 코멘트가 전부다.
시장이 수긍할만한 설명이 언제 마련될지도 지금은 기약하기 어려워 보인다. 다만 '시간'에만 기대어서 방치하기에는 CJ가 처한 경영 환경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9월 16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