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반영된 현대카드 기업가치 1조6000억원 수준
현대차와 풋ㆍ콜옵션 있지만 실현 가능성 낮아
공모가 높아야 하지만 삼성카드도 PBR 0.52배 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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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가 기업공개(IPO) 출사표를 던졌지만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최근 국내외 주요 증권사에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보내면서 IPO를 시작하는 단계고 재무적 투자자(FI)의 투자금 회수(엑시트)를 위한 거래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업계4위인 현대카드가 현재 상장된 업계 2위 삼성카드보다 높은 밸류에이션(PBR)이 나와야 유의미한 엑시트가 가능할 전망이다. 자칫하면 FI 엑시트로 갈등이 불거진 ‘교보생명’ 전철을 밟을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10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현대카드는 최근 주요 증권사들에 IPO를 위한 RFP를 발송했으며, 제안서 마감일은 오는 22일까지다. 국내 증권사로는 미래에셋대우와 NH투자증권 등 대형사 3곳에, 외국계의 경우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과 JP모간 등 주요 증권사 위주로 요청서가 배포됐다.
이번 IPO 결정은 사업적 측면보다는 FI들의 투자금 회수를 위한 거래로 시장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홍콩계 사모펀드(PEF)인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를 필두로 한 컨소시엄은 지난 2017년 GE캐피탈의 손자회사 IGE USA 인베스트먼트가 보유한 현대카드 지분 24%를 인수했다. 어피너티가 가장 많은 지분(9.9%)을 사들였고, 싱가포르투자청(GIC)과 칼라일그룹 계열 사모펀드 운용사인 알프인베스트먼트가 각각 9%, 5.01%의 지분을 매입하며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현대커머셜도 당시 현대카드 지분을 매입했는데, 인수 가격은 주당 9779원으로 책정된 바 있다. 이를 근거로 FI들이 매입한 현대카드 지분 24%(3851만1668주)의 인수 가격을 환산하면 약 3766억원으로 추정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보통 제안서는 한글로 작성하는데 현대카드는 RFP를 통해 한글과 영문 두 가지 버전의 제안서를 요구한 것으로 안다”며 “이것만 보더라도 어피너티와 싱가포르투자청 등 FI의 엑시트에 방점이 찍힌 IPO라는 것을 방증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현대카드 IPO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단연 ‘밸류에이션’ 문제가 꼽힌다. FI 측이 2년전 지분 인수를 위한 실사 과정에서 현대카드의 기업가치를 1조6000억원 수준으로 평가한 것을 감안하면, 적정 수익률 확보를 위해서는 현대카드의 밸류에이션이 최소 2조원은 넘어야 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하지만 업계 내 유일한 상장사인 삼성카드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52배(10월10일 기준) 수준에 그친다. 이를 적용하면 현대카드의 시가총액은 1조6925억원 (자본총계×PBR) 정도로 예상된다. 아울러 현대카드(업계 4위)가 삼성카드(업계 2위) 대비 시장점유율(M/S)과 수익성 모두 떨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대카드의 기업가치가 더욱 보수적으로 책정될 여지도 있다. 최근 일련의 대기업 계열사 IPO 딜(Deal)을 고려했을 때 상장에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팽배하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카드업이 현재 사양 산업으로 평가받으면서 IPO과정에서 ‘미래 성장성’을 담보한 에쿼티 스토리(Equity story)를 만드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현대카드가 IPO를 서두르는 것은 FI들과 ‘계약 조항’의 영향이 크다.
현대카드와 FI들 사이에서는 FI 측의 제안으로 ‘4년 안에 IPO를 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는 조항이 계약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다. 통상 FI들의 투자 기간이 5년인데다 이번 RFP에서 상장 시점 타깃을 2020년으로 명문화하면서 해당 조항의 존재에 더 힘이 실린다.
FI 측은 IPO 관련조항 외에도 안전장치로 ‘주주간 옵션(Option) 조항’이란 카드를 쥐고 있다. 해당 조항은 현대카드 최대 주주인 현대자동차(36.96%)가 다른 투자자들과 주주간 협약 형태로 체결하고 있다. 즉 현대차가 FI들이 보유한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콜옵션(Call-Option), 또 FI들이 보유주식을 현대차에 팔 수 있는 풋옵션(Put-Option)이 조항이 있다. 어느 한쪽의 중대한 계약 위반이 옵션 발동의 조건으로 알려진다.
다만 현대차가 현실적으로 FI 지분을 매입해줄지 여부는 미지수다. 정의선 부회장의 진두지휘로 한창 자동차 산업에 집중하고 있는 현대차로서는 지금 현대카드 지분을 매입했을 경우 투자자들의 실망이 클 수밖에 없다. 이렇다 할 명분이 없는 데다 한전 부지 인수 이후 잠잠했던 자동차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사업으로 ‘외도’한다는 시각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결국 현대카드도, FI도 IPO가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현대카드 입장에선 구주매출을 통해 대주주에 엑시트 기회를 제공하고, 신주발행으로 추가 자금조달이 가능해서다. FI 입장에선 옵션 강행 등의 분쟁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FI들이 책정했던 밸류에이션보다 높은 가격에 IPO가 이뤄져야 한다는 딜레마가 생긴다는 것.
이러다 보니 투자업계에서는 이번 현대카드 IPO가 자칫 ‘교보생명’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일단 공모 가격이 FI의 눈높이에 미달될 경우 교보생명 경우처럼 공모 자체가 좌초될 수 있단 우려가 제기된다. 그렇다고 이렇다 할 대안이 없다는 점, 아울러 풋옵션의 실효성이 낮다는 점이 비슷하기 때문.
심지어 현대카드와 교보생명은 어피너티와 싱가포르투자청이 FI로 있다는 공통점 외에도, IPO 주관사단이 비슷하게 구성될 전망이다. 교보생명의 IPO 주관사단은 ▲크레디트스위스(CS) ▲NH투자증권 ▲씨티글로벌마켓증권 ▲JP모간 ▲미래에셋대우 등으로, 현대카드가 RFP를 발송한 증권사들과 겹친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교보생명의 IPO 밸류에이션이 어피너티 등 FI 기대치에 못미쳐 풋옵션 행사를 놓고 갈등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라, 현대카드 역시 자칫 교보생명의 수순을 밟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는 것이 사실”이라며 “당장에 이번 RFP 내용만 보더라도 요구사항이 까다롭기도 하고, IPO 외적으로 신경 쓸 부분도 많을 것으로 예상돼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꼴로 전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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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10월 10일 16:55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