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대림 창업주이자 기업가인 동생과 거리둬
수십년간 공시된 '744주'…'정계 집안' 자식들도 무관심
지분 매각하고 주주명부 빠져나갈 것으로 전망
-
최근 대림그룹의 주식변동신고서 한 건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재계에서 오랜 시간 ‘망자(亡者)의 주식’으로 불린 대림산업의 ‘744주’가 새 주인을 찾은 것이다. 적시된 양도자의 생년월일은 ‘141107(1914년 11월7일)’로, 생존해있다면 올해 나이가 106세다.
해당 주식은 대림그룹 창업주 고(故) 이재준 명예회장의 친형이자 이미 작고한 이재형 전 국회의장의 것으로 밝혀졌다. 대림산업은 지난 22일 고 이재형 전 의장의 소유주식 744주가 아들 이두용씨 소유로 변경됐다고 공시했다. 변경원인은 상속으로, 이 전 의장이 소유하던 주식 전량이 지난달 옮겨간 것으로 나타났다. 소유주가 사망(1992년)한 지 약 30년 만이다.
해당 주식은 대림산업이 공시를 시작한 지난 1998년부터 등장해 20여년간 관심을 받아왔다. 수량 자체는 작지만, 소유주의 배경과 사망 연도가 특이점이었다.
재계서 잔뼈가 굵었던 이재준 명예회장과는 달리, 이재형 전 의장은 정계에서 강한 존재감을 남긴 인물이다. 1914년 태어난 그는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学) 법학부를 졸업한 뒤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7선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이승만 대통령부터 노태우 대통령 초기까지, 40년 경력의 ‘정치 베테랑’으로 평가된다.
기나긴 정치 역경 동안 대림그룹과의 연(緣)은 피할 수 없었다. 이 전 의장이 야당의 중임이었던 탓에 대림은 세무조사 등 유무형 압력에 시달렸다. 때문에 그는 동생과 거리를 두는 방식을 택했다. 입지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던 80년대 민정당 시절에도, 대림의 후원 없이 접촉을 최소화했던 것으로 회자된다.
때문에 이 전 의장 사망 이후 6년이 지난 1998년, 대림산업의 사업보고서가 공개됐을 땐 의외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당시 이 전 의장이 보유한 주식은 보통주 2622주와 우선주 642주로, 양도 시기가 불명확하나 창업주 이 명예회장이 직접 친형에게 이전한 주식으로 알려진다.
해당 주식은 오랜 시간 ‘방치’됐다. 수량이 많지도 않거니와 이 전 의장의 아들들이 이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2005년 장남 이홍용 전 서울대 농대 교수가 보통주 744주만을 남기고 상속분 전량을 바로 매각한 것이 지난 수십년 간 움직임의 전부였다. 남은 744주 때문에 이 전 의장의 이름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등장했고 이제 이 주식은 또 다른 아들인 이두용씨에게로 넘어갔다.
24일 종가 기준(주당 9만4300원)으로 남은 상속분 주식의 가치는 약 7000만원에 달한다. 상대적으로 낮은 대림산업의 배당 성향을 고려해도 30년간 이 전 의장에게 돌아간 배당금은 어림잡아 수천만원에 이른다. 상법상 배당금은 주주 당사자나 질권자가 아니면 수령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전 의장 일가가 그동안 정식 주주명부에 등장하지 않았던 점은 일가가 대림그룹과 거리 두기를 계속해왔다는 방증이다.
한 상속 전문 변호사는 “주식이나 부동산은 사망과 동시에 직계비속과 망인의 배우자로 소유권이 넘어가는데, 이 경우는 부동산으로 치면 재산은 이미 받은 상태에서 등기만 안했던 셈”이라며 “상당히 독특한 경우로, 사실상 해당 주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제와서 이 전 의장 일가가 변동신고서에 갑작스럽게 이름을 올린 배경으로는 최근 대림을 둘러싼 논란들과 무관치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림은 보수적 가풍과 확고한 장자 승계 원칙을 바탕으로 올해 초 3세 승계 작업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증여세 회피 논란이 크게 일었고 갑질 논란, 그로 인한 2대주주 KCGI를 앞세운 기관투자가들의 회장 연임 반대 가능성 등 악재가 끊이질 않았다. 첫번째 지분 정리가 있었던 2005년에도 대림은 재건축 사업비리 연루와 국세청 세무조사로 가득 채운 한 해를 보냈다. 시장에서는 이 전 의장 일가가 남은 지분 전량을 매각하고 주주명부에서 완전히 빠져나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대림산업 측은 “개인의 주식 보유가 변동되는 것에 대한 내용은 알지 못한다”며 “관련해 회사가 따로 파악하고 있는 바는 없다”고 전했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10월 27일 09: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