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유현금 대부분 아시아나 인수에 투입
“디벨로퍼 운신의 폭 강제 축소”
신용등급 하락도 가시권…조달금리 부담 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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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부동산회사(이하 디벨로퍼)로 변신중인 HDC현대산업개발이 국적 항공사 아시아나항공를 인수한다. 정몽규 회장은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직후 “HDC그룹이 항공산업을 넘어 모빌리티그룹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HDC그룹은 보유 현금 대부분을 아시아나항공 인수자금에 쓰게 됐다. 디벨로퍼, 다시 말해 핵심 사업에 대한 투자는 당분간 어려워졌다. 불과 몇 년만에 디벨로퍼에서 모빌리티기업으로 사업 방향이 수정된 탓에 투자자들의 혼란은 가중됐다. 이 같은 우려는 그룹 신용도에도 반영되는 상황이다.
HDC컨소시엄의 아시아나항공 경영권 인수가격은 약 2조5000억원이다. 미래에셋대우가 재무적투자자(FI)로 참여했지만, 지분의 80%가량은 HDC그룹이 부담하는 구조다. 이번 거래는 본실사가 없이 진행돼 연내 본계약(SPA) 체결이 목표다. 가격조정이 구주 약 3000억원에 대해 최대 3% 수준으로 책정된 점을 고려하면 HDC그룹의 부담이 줄어들 가능성은 크지 않다.
올 3분기 연결기준 HDC현대산업개발이 보유한 현금은 약 9200억원이다. 지난해 말엔 1조3500억원, 올 상반기 1조1800억원 수준이었다. 국내 증권사들은 HDC현대산업개발의 올 연말 기준 보유현금은 1조2000억~1조3000억원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다. 기말 보유 현금을 1조5000억원까지 전망하는 곳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낙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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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HDC그룹은 보유 현금 대부분을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투입해야하는 상황이다.
현재로선 아시아나항공 재무구조 개선 및 사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얼마가 더 들어갈 지 가늠하기 어렵다. 항공산업이 호황을 맞아 아시아나항공이 꾸준히 현금을 벌어들이는 구조가 되려면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인수전에선 풍부한 현금 유동성과 든든한 FI를 등에 업고 나머지 후보들을 압도하며 항공업에 화려하게 진출했지만 이제는 실리를 따져봐야 할 시점이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우협 선정 이후 진짜 관심사는 HDC그룹이 아시아나항공에 돈을 투입한 것만큼 이득을 볼 수 있느냐인데, 인수전에서 현금유동성으로 밀어부친 것 치고는 인수 이후가 굉장히 위태로워 보인다”고 말했다.
HDC그룹이 앞으로 남은 사업에 자금을 꾸준히 투입해야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유 현금이 부족해 지는 점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광운대 역세권 개발 사업이 대표적이다. 해당 사업은 HDC그룹이 주력으로 내세운 사업 중 하나다. 지난 2017년 10월 서울 동북권 개발사업 민간사업자로 선정됐는데 최대 2조5000억원 규모의 사업 중 최소 6000억원 이상이 투입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내년도 지방 주택사업에서 4000억~5000억원 정도가 유입될 것을 가정해도,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1조원 이상 현금이 유출되는 점을 고려하면 남는 현금이 거의 없는 셈이다.
국내 증권사 건설담당 한 연구원은 “디벨로퍼의 현금유동성이 '제로'가 된다는 것은 사실상 운신의 폭을 강제로 축소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할 통로는 아직 열려있다. 유효 신용등급은 현재 A+로, 회사채 또는 기업어음을 발행할 수 있다. 문제는 아시아나항공 우협 선정 이후, 신용등급 하락이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점이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이미 HDC현대산업개발의 신용등급 하향 검토에 돌입했다. 아시아나항공 정상화에 HDC그룹의 자금이 지속적으로 투입될 경우엔 등급 하락이 가속화할 수 있다. 조달비용을 낮춰 수익성을 극대화 하는 것이 핵심인 건설·디벨로퍼 사업자엔 가장 위험한 부분이기도 하다.
NICE신용평가는 "HDC현대산업개발은 이번 인수가 완료되면 사업다각화 및 사업위험 분산 효과는 일부 존재하지만, 재무여력이 축소되면서 재무적 부담이 증가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본업에 대한 위험성을 감수하면서까지 아시아나항공의 인수를 강하게 추진한 것에 대해 투자자들의 의구심은 더 커지고 있다. 회사가 밝힌 시너지 효과가 무색하게 주식시장은 빠르게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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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관투자가 주식운용 한 담당자는 “건설업황이 상당히 좋지 못한 상황에서, 본업이 아닌 새로운 분야에 진출하는 것에 대해 상당한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한다”며 “사실 디벨로퍼와 항공사의 시너지 효과는 전무하다고 볼 수 있는데, 앞으로 아시아나항공 활용법에 대한 명확한 방향성을 보여주는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HDC그룹이 보여온 행보는 국내 몇 안되는 디벨로퍼 사업자로서 입지를 굳히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기에 충분했다. 2017년 그룹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변혁하고 미래 경쟁력 확보 방안을 구상하기 위한 '빅 트랜스포메이션(Big transformation)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지난해 지주회사 전환 이후에 디벨로퍼로 탈바꿈하기 위한 다양한 투자를 진행했다. 2~3년간 개발사업 부지 확보를 위해 투입한 자금은 1조원가량, 지난해엔 부동산114 인수, 올해엔 한솔개발(한솔오크밸리) 등을 인수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다소 의외다. 수년 전부터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검토했던 애경그룹과 달리 HDC그룹은 입찰 불과 몇 개월 전부터 검토에 돌입했다. 이 또한 HDC그룹의 선제적 검토라기보단, 미래에셋대우의 제안을 통해 참여가 성사됐다. 실제로 본입찰 참여 검토 단계에서부터 회사 내부에선 불안감이 감돌 정도였다.
일단 정몽규 회장은 “HDC그룹을 모빌리티그룹으로 한 걸음 도약하는 계기”라고 했다. HDC그룹이 항만사업도 추진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해상 운송 사업 진출도 예상해 볼 수 있다. 인수전 초기단계부터 범(汎) 현대그룹 오너일가의 후광 지원이 거론된 것을 보면 현대차·KCC·현대백화점·현대중공업 등과의 사업적 연대를 꾀할 수도 있다.
낙관론은 차치하더라도 정몽규 회장이 그룹의 방향성을 뒤흔들면서 투자자들의 혼란은 가중된 게 사실이다. 아시아나항공이 과연 HDC그룹의 새로운 미래 성장동력이 될 지는 추후 숫자로 증명해야하는 과제다. 그 때까진 아시아나항공 인수 결정이 그룹의 사업 확장을 위한 진지한 고민이었는지, 정몽규 회장의 개인적 야심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었는지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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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11월 15일 11:05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