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람코 IPO 외면한 글로벌 투자자…웃을 수 없는 국내 관련 기업들
입력 2019.12.11 07:00|수정 2019.12.16 11:24
    '정유부터 건설까지'…국내 산업군 영향권
    아람코 IPO 비중동 투자자는 '10%'
    ESG 문제 불거진 아람코, 예상 시총 하락
    국민연금 ESG 강화 속 유관사 영향 가능성
    •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기업공개(IPO) 여파가 상당하다. ‘탈(脫)석유’ 선언과 이를 위한 대규모 자금 조달을 두고 사업적 연관이 있는 국내 기업들은 IPO 이후 편승 효과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중동을 제외한 해외 투자자들이 관심이 예상보다 저조했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차원에서 아람코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잇달아 나온다. 국내 기업들이 아람코와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장밋빛 미래’만 기대하긴 어렵다는 의견이다.

      5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CNBC등 외신에 따르면 아람코의 공모가는 예시 가격 범위의 상한인 주당 8.53달러(약 1만원)로 결정됐다. 개인과 기관투자자의 합산 청약 대금 규모는 약 500억달러(약 60조원)를 상회해, 조달하려던 256억달러(약 30조원)의 두 배 이상을 기록했다. 하지만 아람코가 국제 증권거래소 상장을 포기하기로 결정하면서 미국, 유럽 등 글로벌 투자자들의 관심이 저조했다. 주관사 측은 지난달 29일 기준 청약 대금의 10.5%만이 국외 기관투자가라고 밝혔다. 기업가치는 당초 사우디 왕실이 기대하던 2조달러(약 2381조원)에 못 미치는 1조7000억달러(약 2000조원)로 정해졌다.

      투자자들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아람코의 상장 의지는 명확하다. 아람코 IPO는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국가 산업개발 계획 ‘비전 2030’에 따른 실탄 확보 목적이 강하다. 사우디 정부의 100% 자회사인 아람코는 마련한 자금을 바탕으로 석유화학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요구받고 있다. 체질 개선이 일종의 국책 과제인 셈이다. 사우디는 아람코 IPO를 위해 5일부터 열린 OPEC(산유국 연합 기구) 회의에서 산유량 감산을 하루 평균 170만배럴로 확대하는 방안을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 이 과정에서 정유·건설·신재생에너지·화학 등 국내 관련 산업군의 ‘아람코 영향권’ 편입은 본격화할 전망이다.

      정유사의 경우 GS칼텍스를 제외한 국내 주요 3사(SK이노베이션·현대오일뱅크·에쓰오일)가 모두 아람코와 직간접적으로 지분 관계를 가지고 있다. 아람코는 에쓰오일 지분 63.5%를 보유한 최대주주고, SK이노베이션과는 자회사 '사빅'으로 합작사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최근엔 현대오일뱅크 지분 17%를 1조4000억원에 매입해 2대 주주로 올라서기도 했다.

      지분 관계를 바탕으로 사업 협력은 강해지고 있다. 내년부터 현대오일뱅크는 약 20년간 하루 15만배럴 규모의 아람코 원유를 도입한다. 연간 구매의 22%에 달하는 양으로, 금액만 약 40조원어치다. 에쓰오일과는 60억달러(7조1200억원) 규모의 공장 증설을 검토 중이다. 더불어 양 사 모두 석유화학 연구개발(R&D)에 적극 협력한다는 방침이다.

      건설사들 역시 아람코와의 연계를 굳히고 있다. 국내 양대 건설사인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은 각각 다운스트림(원유 가공·판매)과 신사업 발주 수혜를 입을 예정이다. 이미 마잔 해상 유전 가스, 원유 처리 플랜트, 도시개발 ‘키디야 프로젝트’ 등을 따내며 줄어든 해외 수주액을 적극 방어 중이다. 대림산업은 건설 수주는 물론 고부가가치 화학 제품 협력 방안까지 논의한 상황이다.

      최근에는 자동차 회사와의 협력 방안까지 마련하며 업종에 제한을 두지 않는 모습이다. 아람코와 현대자동차는 지난 6월부터 수소에너지와 탄소섬유 소재 부문에서 양 사가 전략적으로 협업한다는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세부 계획을 마련 중이다. 아람코가 더 이상 전통적 석유 사업에 머무르지 않으면서 신재생 에너지 분야에 적극적 투자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국내 산업 전반에 아람코의 투자 확대가 마냥 호재일지는 미지수다. 올해 실적이 폭락했던 정유사나 해외 수주 ‘가뭄’에 들고 있는 건설사들에는 당장의 먹거리 제공이 기대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사회적 책임 투자(ESG)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투자 환경 속에서 아람코와의 관계 또는 의존도 강화가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ESG 투자가 대세가 되면서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최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환경과 사회, 지배구조 등 ESG 요소의 전체 자산군으로 확대하는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을 의결했다. 이번 결정에서는 적용 대상이 일부 기업에 그치지 않고, 그동안 소외됐던 환경(E) 분야가 대폭 강화됐다는 평가가 있어 차후 정유·플랜트 등 석유 에너지 관련 기업은 직접적인 투자배제 대상이 될 가능성이 늘었다.

      3년 전 정유사 호황 시기 ‘세계 최대 기업’, ‘중동 경제의 축’으로까지 수식되던 아람코는 이번 상장 과정에서 정치적 리스크로 인한 불투명한 지배 구조와 정유업의 성장 가능성이 없다는 ‘한계론’에 봉착했다. 예상보다 줄어든 기업가치와 국외 투자자들의 투자 기피 원인이 모두 ESG 요소에서 나온 셈이다. 아람코가 상장 과정에서 이미 ESG ‘낙제점’을 받은 만큼, 일부 회사의 경우 현시점에서 아람코와의 연계를 강화하면 투자자에게 부정적 시각을 심어줄 수 있다는 평가다.

      이종오 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은 “이미 EU 등 주요 선진국 연기금들은 ESG 측면에서 기후변화, 화석연료 탈피, 지배구조 등 비재무적 요소가 기업가치 산정의 본질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며 “글로벌 속도보다 국내가 조금 늦은 만큼, 이번 국민연금의 움직임을 기점으로 다른 기관들과 금융 감독기관까지도 ESG 평가 잣대를 강화할 것으로 보여 아람코와의 연계가 국내 회사들의 기업가치에 좋다고만 볼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