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으로 위험한 곳에 고밸류 투자 많아
경기는 불안…“회수기 손실 사례 급증 우려”
-
라임자산운용 사태로 개인 큰손 투자자들의 손실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개인들의 자본시장 진입은 늘었으나 시장은 그만큼 성장하지 않았다는 점이 드러났고, 고밸류 투자를 정당화하기엔 경제 전망이 불투명하다.
경각심이 생기기 전 유입된 개인 자금들은 향후 몇 년간은 회수 지연, 혹은 수익률 저하를 걱정해야 할 것이란 지적이다.
작년 7월 파킹 거래 의혹으로 촉발된 라임 사태는 환매 중단, 무역금융펀드 사건까지 이어지며 국내 투자시장을 뒤흔들었다. 사건 자체는 특이한 사례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모든 펀드는 개별적·자율적이어야 한다는 대원칙을 어겼고, 운용에도 사기적인 요소가 얹어졌기 때문이다. 개별 운용사의 일탈에 더 무게를 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시장에 미치는 충격파가 작지 않다. 개인 자금들의 손실이 특히 크다. 라임운용이 돌려주지 못하겠다고 한 펀드 자금이 1조5600억원인데, 이중 개인 자금이 9170억원에 이른다.
2015년 이후 라임자산운용의 메자닌 투자 독주가 시작됐다. 이는 고액 개인 자산가들의 자금이 시장의 주목을 받게 된 시기와 맞물린다. 2015년엔 사모펀드 규제가 크게 완화됐다. 한국형 헤지펀드 투자금 최저 한도를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낮추며 개인 자금의 투자시장 유입이 자유로워졌다.
개인 자산가들의 이해관계와도 맞아 떨어졌다. 저금리는 계속되는데 정부는 자산 증식의 한 축이었던 ‘부동산 투자’를 죄악시했다. 대통령의 신년사에도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담겼다. 돈을 굴릴 다른 창구가 필요했다. 비상장사 및 바이오·헬스 투자 열기를 타고 많은 돈을 운용사들에 맡겼다. ‘국민 금융소득 증대’라는 정부 정책과도 부합했다.
금융사들의 자산가 유치 경쟁은 치열했다. 특히 고액 자산가가 많은 강남의 지점들이 분주했다. 운용사들이 강남 지역 WM(자산관리)이나 PB(프라이빗뱅킹) 센터 두 세곳만 돌면 펀드 하나는 뚝딱 만들 수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았다. 라임운용 상품 판매가 많았던 우리은행과 대신증권은 반포역 지점과 대치역금융센터, 반포WM센터와 도곡WM센터 등 유력한 채널을 갖추고 있다.
-
문제는 개인 자산가들의 자금이 다른 자금보다 경쟁 우위를 갖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몇 년 사이 경기 성장 둔화, 유동성 풍년, 저금리 지속 환경이 이어지면서 보다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려는 경쟁은 심해졌다. 벤처캐피탈, 사모펀드(PEF) 등 기존 참여자들도 돈이 된다는 바이오·헬스·테크 비상장 기업 투자에 몰렸다. 개인 자금은 보다 위험 부담이 큰 곳으로 밀리곤 했다.
라임운용만 해도 썸에이지(모바일게임), 아스트(항공기 부품) 등 기업의 제로쿠폰 전환사채(CB) 투자가 발목을 잡았다. 라임 사태만큼 극단적이지는 않더라도 자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사례는 더 많아질 가능성이 크다.
유사 사례도 나타났다. 작년 11월엔 플랫폼파트너스자산운용이 환매 연기를 결정했다. 수탁액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투자한 코스닥 상장사 코다코(자동차부품)와 캔서롭(바이오)이 재무제표 감사 의견거절로 거래정지됐고, 이를 담은 펀드의 회수 길이 막혔다.
자산운용 업계에선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이나 수성자산운용, 시너지투자자문 등 메자닌 투자에 강점이 있었던 운용사에 대한 불안감도 나오고 있다. 타임폴리오와 라임운용 등은 2018년 에스티큐브(IT·바이오) 전환사채를 인수했다. 한 때 주가가 전환가액을 훌쩍 넘기도 했지만 1년새 주가가 반토막이 난 상황이다.
고밸류 투자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늘었다. 자연히 회수기가 도래해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기는 어려워졌다. 시스템적 요인으로 기업 가치가 높아져 있지만, 정작 상장이 이뤄진 후에는 시장의 냉엄한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경기 전망이 밝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개인 자산가들이 만족할 투자 사례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작년엔 게임사 SNK에 투자했던 알펜루트자산운용이 애를 먹었다. 2018년 상장전투자로 SNK 주식을 사들였지만 작년 상장 후 주가가 빠지면서 수익률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이 펀드 상품을 고액 자산가에 팔았던 증권사들도 대응에 진땀을 뺀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 투자자를 품을 만큼 투자시장이 성숙하지 않았다는 점도 불안감을 키운다. 투자 결과는 투자자가 책임지는 것이지만 금융 사고엔 운용사나 금융사의 역량 부족, 도덕적 해이 문제를 수반하는 경우가 많았다. 라임운용 상품을 많이 팔았던 한 증권사 센터장은 문제가 커지기 전 경쟁사로 이적하면서 피해자들 사이에서 비판이 일었다.
해외 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DLS, DLF) 대란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역시 시중은행, 증권사 등 창구를 통해 다만 1% 이익이라도 더 거두려는 개인들에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서류상으론 설명 의무를 다했다는데 실제론 판매 인력도 상품의 위험성을 이해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무리한 실적 쌓기는 평판 하락과 손실 배상으로 이어졌다. 집단 소송 전문 법무법인들은 늘어난 먹거리에 신바람이 났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기관투자가들도 보기 어려운 자산들이 담긴 상품들이 증권사 PB를 통해 개인에게 판매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몇 년 후 이들 펀드의 만기가 도래하기 시작하면 투자 시장에 또 파장이 닥칠 것”이라고 말했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1월 09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