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스테이트' 쓰던 현대ENG, 가치 떨어질까 난색
타건설사 브랜드도 연일 '고급화 행진'
재건축 감소세…"양사 언제든 경쟁사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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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수주를 둘러싼 건설업계의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최근 각광받는 ‘프리미엄 브랜드 전략’을 두고 현대자동차그룹 건설사들 간의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현대건설이 재건축 수주전에서 프리미엄 브랜드 'THE H(디에이치)'를 론칭하면서 수수료를 내가며 이전 브랜드 '힐스테이트'를 빌려 쓰는 현대엔지니어링 입장에서 사용가치 저하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대건설 역시 핵심 사업지 수주를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라 양 사가 맞서는 모양새다.
최근 현대건설은 올해 강북권 최대 사업지로 꼽혀 온 옥수동 한남하이츠 설계안으로 ‘한남 디에이치 그라비체’를 제안했다. ‘알짜 단지’로 꼽히는 성동구 한강변 일대의 해당 단지는 지난해 한남3구역 재건축 사업에서 고배를 마신 현대건설이 가장 수주 의지를 피력하는 단지로 손꼽힌다. 개포 디에이치 아너힐즈(2019년 8월 입주), 반포 디에이치 라클라스(2021년 5월 입주 예정)의 뒤를 이은 강북권 첫 ‘디에이치’ 브랜드 적용 후보이기도 하다.
브랜드 론칭 이래 적용 단지를 까다롭게 산정하던 현대건설이 연초부터 ‘디에이치’ 카드를 꺼낸 것을 두고 시장에서는 현대건설의 본격적인 브랜드 재편 시기가 도래했다고 평가한다. 디에이치 브랜드는 지난 2015년 서초구 삼호가든 3차 수주전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래 등장이 드물었다. 현대건설 측은 “신규 브랜드의 가치에 걸맞은 엄격한 기준을 적용 중이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선 기존 브랜드 ‘힐스테이트’를 빌려 쓰는 현대엔지니어링과 앞선 입주 단지들의 눈치를 봐왔다는 지적도 상당했다.
현대건설은 브랜드 계약을 두고 이미 현대엔지니어링과 갈등을 겪은 바 있다. 과거 국내 주택 사업을 하지 않던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 2014년 현대엠코타운을 합병한 이래 본격적으로 주택시장에 등장했다. 당시 현대엔지니어링은 인지도가 다소 떨어지는 ‘엠코타운’ 브랜드 사용을 중지하고, 현대건설과의 협의를 거쳐 연간 약 50억원 규모의 계열회사 브랜드 수의계약을 맺어왔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주택 사업을 시작한지 1년 만인 지난 2015년 현대건설이 고급화 전략을 다시 내세우며 ‘디에이치’를 기습 론칭하자 현대엔지니어링 내부에서는 일부 임원을 중심으로 “차라리 독자 브랜드를 만들자”는 의견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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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엔지니어링의 우려는 최근 정비 사업 경기와 맞물려 강해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정부의 부동산 압박 정책을 기점으로 국내 정비 사업은 공급지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대지가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 ‘땅값은 비싸고, 건 수는 적은’ 품귀 시장으로 재편되는 상황 속에서, 브랜드 사용의 무게 추는 ‘힐스테이트’에서 ‘디에이치’로 이동하는 형국이다. 지난 2015년 현대건설은 강남권 정비 사업을 겨냥하며 “특정 분양가 이상의 택지에만 디에이치를 적용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최근 대전 장대B구역 등 일부 지방 사업 단지에서도 '디에이치' 적용을 언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건설은 고급화 브랜드 전략에 더욱 속도를 높여야만 하는 입장이다. 경쟁사 역시 ‘옥상옥’ 구조의 브랜드 론칭을 거듭하고 있다. 대우건설의 고급 아파트 브랜드 ‘푸르지오 써밋’이나 대림산업의 ‘아크로’ 등이 기존 자사 브랜드인 ‘푸르지오’와 ‘e편한세상’을 누르고 속속들이 서울과 수도권 분양 시장에 등장하고 있다.
문제는 현대엔지니어링이 당장 디에이치 브랜드를 사용하기도 곤란하다는 데 있다. 현재 양 사의 브랜드 계약은 여러 브랜드 사용을 포괄할 수 있는 형태고, 재건축 입찰 검토 시 협의를 통해 경합을 피하고 있다. 디에이치 브랜드의 사용 자체가 막힌 건 아니라는 것이 현대엔지니어링의 입장이다. 반면 현대건설 측은 “디에이치를 사용한다면 반드시 협의를 거쳐야 할 내용”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15년 디에이치 브랜드가 시장에 등장한 이래, 현대엔지니어링이 해당 브랜드를 사용한 이력은 전무하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반포주공 1단지 3주구 등 양 사가 동시에 참여 입장을 밝힌 최근 사업장들을 봐도, 두 회사는 언제든 재건축 시장의 경쟁사가 될 수 있다”며 “현대엔지니어링이 디에이치 기준에 부합하는 수주 건을 들고 온다 하더라도, 좁아진 시장 상황에서 애써 론칭한 브랜드를 현대건설이 곧바로 허가 내주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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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1월 19일 09: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