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이슈'로 논란만 더 키운 삼성 준법감시위
입력 2020.02.11 07:00|수정 2020.02.12 09:27
    • 지난 5일 삼성생명 서초타워에선 늦은 밤까지 릴레이 회의가 이어졌다. 논란 속에 출범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첫 회의였다.

      내용은 주로 준법감시위의 ‘권한 설정’에 집중됐다. 이날 준법감시위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7개 관계사의 대외후원금 지출 및 내부거래 사전 검토 ▲리스크 여부 직접 판단 ▲결과보고 및 시정 조치 요구 권한 등을 담은 위원회 운영 규정을 마련했다.

      단순 후원금 지출에 대한 모니터링을 넘어서 각 계열사와 특수관계인 사이의 각종 거래를 감시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했다는 점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이밖에 검토 대상 범위에는 '경영진의 불법행위'가 명시됐고, 각 계열사들이 위원회의 요구나 권한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그 사유를 대외적으로 공개하기로 했다.

      시스템 '구축'과 별개로 실질적 '작동'에 대한 의심이 지속됐던 준법감시위였기에 당면한 현안을 챙기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핵심은 최근 그룹 내 최대 이슈인 ‘노동 현안’이다. 당초 해당 준법감시위 설립은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준법감시 제도’ 보완에 대한 후속조치였다. 연초 준법감시위 위원장으로 내정됐던 김지형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가 “전권을 이양받았다”고 표현한 만큼 실질적인 권한와 운영 방식에 대한 기대감은 있었지만 ‘구체적인 구현 방안이 무엇인가’에 대한 시장의 물음은 끊이지 않았다.

      때마침 삼성그룹은 준법감시위 설립 전후로 관련 리스크에 노출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 계열사에 동시다발적으로 설립되고 있는 노동조합(노조)이다. 지난해 말 삼성전자 노조가 그룹사 최초로 상위노조(한국노총)에 이름을 올린 데 이어 지난 3일엔 68년만에 삼성화재 노조가 출범했다. 최근 삼성디스플레이 역시 한국노총과 연대해 조합 설립을 추진중이다.

      이 과정에서 ‘노조 메일 삭제 파문’이 터졌다. 한노총 삼성전자노동조합 측은 최근 회사측이 지난달 6일과 29일, 노조 가입 독려 이메일을 일방적으로 삭제당했다고 밝혔다. 일부 경영진이 '노조 와해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은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시점이다. 준법감시위 입장에선 존재감을 드러내고 지적되는 불안감을 잠재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첫 회의에서 일부 노조 관련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국 공식적인 결과 발표에선 아무런 내용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앞서 김 위원장이 지난달 출범 기자회견 당시 “삼성전자서비스 재판 절차 등에서 회사의 위법 사항이 확인됐다”며 “노동 문제는 예외 없이 들여다보겠다”고 밝힌 것과 상반된 결과다.

      결과적으로 준법감시위가 삼성이 ‘불편해하는’, 하지만 '당면 과제'였던 노조 이슈를 외면한 셈이 되면서 출범부터 동력을 잃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와는 별개로 오는 14일로 예정된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에서는 준법감시위의 설치와 활동이 양형에 반영될지, 이 부회장이 ‘감형 티켓’을 받을 수 있을지가 뜨거운 감자다.

      일련의 사태들이 당장 삼성그룹 본연의 기업가치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 준법감시위의 정체성이 모호해 짐에 따라 삼성이 마주해야 하는 것은 또 다른 '색안경'이다. 이미 반복된 오너리스크의 노출로 시장과 투자자들의 피로감은 상당하다.

      준법감시위가 실질적인 활동 성과를 보여주는 '제 역할'을 했다면 여론과 투자자들의 의심은 신뢰로 바뀔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삼성 노조 관계자들은 이미 "기대할 것 없는 기구였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준법감시위는 주어진 권한을 어디에 어떻게 발휘해야하는지 다시 한 번 자문해봐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