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은, 우월한 지위 이용해 IB와 유착…뒤늦은 문단속 나서
시스템 부재보다 의식 문제…잇단 설화에 지위 위축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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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입은행의 외화채권 발행 관련 비리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국책은행 담당자들은 발행자로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했고, 주관사들은 일감을 따오는 데 급급해 부적절한 대가 관계를 맺었다. 부적절한 접대의혹과 임직원 자녀의 외국계 투자은행(IB) 인턴 취업 청탁까지 거론되는 중이다.
직원들이 도덕적 해이에 빠진 상황에서 견제 장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잇따른 비위가 수출입은행의 지위를 위축시킬 것이란 자조도 나온다.
감사원은 작년 7월 수출입은행이 외화채 발행 주관사를 미리 내정하고 사후에 평가표를 작성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내사를 진행하다가 작년 11월 정식 수사로 전환했고, 외국계 투자은행(IB) 압수수색도 진행했다.
연초 인사로 경찰 수사가 잠시 소강상태였으나 인사가 마무리되면서 다시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해외 투자설명회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수출입은행 관계자들이 IB로부터 부적절한 접대와 향응을 받았느냐가 핵심이다. 경찰은 “수사 상황에 대해선 밝히기 어렵다”고 했다.
‘시장의 왕’과 ‘눈치보는 IB’ 역학 구도가 발단
외화 부채자본시장(DCM) 시장의 역학 구도에서 비롯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IB로선 예측이 어려운 M&A나 IPO보다 꾸준한 DCM에서 기본 실적을 내야 한다. 외화채 발행 성과가 중요한데 수출입은행이 가장 큰 손이다.
주관수수료는 30bp(0.3%) 내외로 높지 않고 그나마도 5곳 내외의 IB가 나눠가져야 한다. 그러나 한해 많게는 100억달러를 조달해 잡을 수만 있다면 쏠쏠한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IB 입장에선 ‘외화 DCM 시장의 왕’으로 불린 수출입은행의 마음에 들기 위해 무리한 영업에 나서려는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논란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도 지난해 수출입은행과 IB간의 유착관계를 지적했다. 바클레이즈가 2009년부터 수출입은행 임원의 자녀와 지인들에 대한 고용 요청을 받아들인 대가로 주관사에 선정됐고 수수료를 챙겼다는 것이다.
DCM 업계 관계자는 “백 번 양보해 해외 투자설명회를 자주 같이 다니면서 주관사가 발생사 직원들의 편의를 조금 봐줄 수 있다 쳐도 채용까지 청탁하는 것은 명백히 선을 넘은 것”이라고 말했다.
말 많던 자금시장단…뒤늦게 단속 나선 수출입은행
사실 외화채 발행을 맡는 자금시장단은 내부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해외를 오가며 '품위있는' 일을 하면서 콩고물도 챙기는 것 아니냔 인식이 있었다.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으면서도 여신관련 부서처럼 사고가 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임원으로 가는 요직이란 평가 속에 부러움과 시기를 동시에 받았다.
작년 10월 취임한 방문규 수출입은행장은 잇단 논란에 큰 실망감을 표했다. 자금 규모가 큰 사업은 직접 챙기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작년말 한 해외 대규모 여신지원 관련 보고를 받는 자리에선 또 다른 비위가 있는 것 아니냔 질책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잠시 자리를 비운 담당자 대신 다른 관계자가 보고에 들어갔다가 여신 금리 산정 근거를 잘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방문규 행장은 외화채 발행 시스템에 대한 대대적 개편을 지시했다. 연말 조직개편으로 팀(준법업무팀) 단위던 감시 조직이 부서(윤리준법실) 단위로 격상됐다. 부서 자체적으로 해온 외화채 감리 역시 윤리준법실 입회해 살피게 됐다. 1억달러 이상의 외화채를 발행하는 경우 리스크관리부서의 결재를 받도록 해 부서간 견제 장치를 마련했다. 주관사선정위원회엔 타 부서 직원들도 참여한다.
인사 조치도 있었다. 연말 정기인사때 전 자금단장은 보직에서 물러났고 새로운 단장이 선임됐다. 일부 임원은 채용 논란이 얽혀 연임 대상에서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은 조직원 의식 문제…입지 위축 우려도
수출입은행에 통제 시스템이 없진 않았다. 이미 2010년 금융감독원이 주관사 선정 기준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고, 이듬해 절차 규정이 마련됐다. 담당자들은 발행이 잦고 고려 사항이 많다는 이유로 일부 IB에 특혜를 줬다. 규정 미비보다는 담당자들이 준수하려는 의식이 없었다는 점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은행에 가려 관심을 자주 받지는 않지만 수출입은행 역시 조직 관리 문제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지방 지점에선 지점장에 반발해 ‘민란’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었다.
IB 캐피탈마켓 출신 관계자는 “외화채 발행도 나름 전문가의 영역인데 관계 없는 인력을 참여시킨 것은 과잉 대응”이라면서도 “국가에 준하는 국책은행이라면 마땅히 더 조심했어야 하지만 임직원들이 너무 안일하고 뻔한 수단으로 비위를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조직원들의 사기는 저하된 분위기다. 잇따라 구설에 오르는 상황에서 ‘국책은행 통합론’이 다시 수면위로 떠오를 때 저항할 명분이 있겠느냐는 푸념도 나온다.
한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수출 지원, 개도국 경제협력, 남북 경협 등 역할을 맡고 있지만 상당 부분은 산업은행과도 겹치는 영역”이라며 “자꾸 비위가 불거지는 상황에선 산업은행과 합친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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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2월 14일 16:55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