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은행, 러시아 관련 사업 지원했다 미국 문제 삼으면 타격
일말의 가능성도 부담…”위험 안는 게 오히려 국익 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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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이 러시아 가스 개발 프로젝트의 LNG운송선박 수주 기회를 보고 있지만 국책은행들이 이 사업에 대한 금융 지원에 나서긴 어려운 상황이다. 러시아 기업이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올라있는데 금융 주선에 나섰다 같은 제재를 받기라도 하면 막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위험 회피 방안이 없지는 않지만 일말의 제재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지원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의견도 나온다.
러시아 가스개발사 노바텍(NOVATEK)은 지난해 북극권 LNG 생산프로젝트(아크틱 LNG2) 투자를 최종 결정했다. 러시아 북부 야말반도 인근의 육상 가스전을 개발하는 사업이다. 극지 프로젝트인 만큼 앞으로 LNG 운송을 위한 쇄빙 선박 발주가 이뤄질 전망이다.
일반 LNG운송선이 2억달러라면 쇄빙선은 3억달러로 부가가치가 커 기술력 있는 우리 조선사들의 관심이 높다. 대우조선은 2014년 야말 프로젝트에서 노바텍으로부터 쇄빙 LNG운반선 15척 전량을 수주한 이력이 있다. 이번엔 많게는 10척의 수주 기회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조단위 수주 기회인데 성과를 낙관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의 제재 영향으로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으로부터 선박 건조에 필요한 금융을 조달하기 여의치 않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은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및 크림반도 병합에 대해 러시아와 기업들을 경제 제재 대상에 올렸다. 노바텍도 제재 대상에 포함돼 미국 채권시장에서 장기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는 등 불이익을 받았다. 미국은 올해도 크림반도 병합에 대해 새 제재를 발표하는 등 감시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미국의 제재 대상과 관련된 사업에 참여하기 부담스럽다. 일반 기업도 그렇지만 금융사들은 부담이 더 크다. 미국은 단순한 금융 시스템 미비만으로도 처벌을 강하게 한다. 제재 기업을 지원했다는 혐의를 받으면 더 큰 징계를 피하기 어렵다. 대규모 과징금을 물어야 하고 미국 내 영업도 금지될 수 있다.
해외 사업이 많은 국책은행으로선 선뜻 입장을 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제재 시 해외 자금 조달이 막히거나 기존 외화채의 조기 상환 트리거가 발동할 수도 있다. 가뜩이나 수출입은행은 외화채 발행 비리와 관련해 미국의 감시 선상에 올랐었다. ‘조선업 경쟁력 강화’ 명분만 챙기기 어렵다.
한 선박금융 전문가는 “러시아 회사도 해외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다보니 한국 조선사들은 한국에서 금융을 조달해오길 바라는 분위기”라며 “정부는 대우조선의 수주를 위해 국책은행들이 나서줬으면 하지만 국책은행들은 사업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보니 이에 응하기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관련 업계에선 수주 시 제재 위험을 피하는 방안이 검토됐다.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하고 제재 회사의 지분율을 50% 미만으로 낮추면 지배력을 끊어낼 수 있다. 작년 러시아 제재 회사와 다른 국가 기업간 조인트벤처(JV)가 이렇게 제재를 피한 사례가 있었다. 제재 회사가 배를 소유하지 않고 빌리는 방식도 고려할 만 하다. 제재 회사가 직접 수혜를 받지 않기 때문에 제재 가능성이 줄어든다.
이론적으론 제재 회피 수단이 없지 않다. 그러나 미국의 강력한 제재를 감안하면 일말의 가능성만 있어도 국책은행들은 멈칫할 수밖에 없다. 조선사에 당장 얼마간의 일감을 안기는 것보다 다음 기회를 기다리는 것이 유리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미국의 제재를 받아 해외 사업이 완전히 중단될 일말의 가능성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만의 하나에 불과하더라도 미국 제재 위험을 안고 조선사를 지원하는 것이 오히려 국익에 위반되는 행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대우조선 관계자는 “아직 공식적으로 발주 일정이 나오지 않았고 국책은행들이 지원을 꺼려 문제가 되는 상황은 아니다”며 “발주 일정이 나오면 협의를 진행하고 제안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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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2월 19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