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결성 지연 해결 위해 연초 일정 조정
정책성 자금과 민간 LP 자금 간극 심화
VC 양극화 우려…"기본적 고민부터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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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제 2의 벤처 붐’을 주창하며 벤처캐피탈(VC) 시장 띄우기에 나섰다. ‘충분한 시간을 주겠다’며 연초부터 대규모 자금을 풀었는데, 시장에선 외려 자금 모집에 난항을 겪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에 필요한 민간의 매칭자금 확보가 어려울 것이란 이유에서다.
한국벤처투자와 한국성장금융은 이달 들어 2020년도 출자 계획을 밝혔다. 중소기업벤처부 등의 예산으로 모태펀드를 운용하는 한국벤처투자는 올해 약 1조3000억원을, 한국성장금융은 최대 1조6000억원을 출자한다. 국내 대표 벤처 출자사업 기관 두 곳에서 3조원에 가까운 자금이 풀린다.
두 기관은 민간자금을 매칭해 각각 2조5000억원, 5조4000억원 규모 펀드들을 조성한다. 산업은행, 은행권청년창업재단(DCAMP) 등 기존 LP들의 출자금도 포함된다. 계획대로라면 역대 최대인 8조원대의 관련 펀드들이 설립된다.
벤처업계는 마냥 반색하진 않는 분위기다. 국내 투자업계에서 이만한 대규모 벤처 투자 관련 정책성 자금에 공동출자할 민간자금 풀(Pool)이 많지 않아서다. 정책 자금을 받아도 기준에 맞는 펀드를 설립할지는 별개 문제라는 것. 이미 지난해 산업은행과 한국성장금융이 주축이 된 성장지원펀드가 기한 전 자금 모집에 실패한 사례도 있다.
이를 의식한 듯 모태펀드와 성장금융 모두 출자 일정 조정, 성과보수 지급기준 하향 등의 대응책을 마련했다.
한국벤처투자 모태펀드는 출자 예산인 1조2975억원 중 1조1930억원을 1분기 내 집행한다. 성장금융 역시 산업은행과 함께 다음달 초 성장지원펀드 운용사 접수를 마감한다. 이외 시스템반도체, 일자리 창출 등 대부분 블라인드 펀드의 일정을 1분기 내 공고할 예정이다. 공개된 블라인드 출자 예정액 1조1490억원 중 5400억원(약 47%)를 같은 기간 내 푼다.
성장금융은 자금을 모으기 쉬운 금융 지주사 혹은 증권사 소속 운용사들에 자금이 쏠리는 것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성장지원펀드 사업에선 우선심사 대상 선정 기준치(출자확약서 30% 이상 확보)에서 계열회사 출자확약서를 20%까지 인정하기로 했다.
또 특정 운용사에 자금이 몰리지 않도록 펀드 전체 규모 제한(Hard Cap)을 도입하는 한편, 성과보수를 주는 기준치도 낮출 예정이다.
그러나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많다.
한 민간 출자 기관 관계자는 “자금 매칭이 어려운 것은 일정 탓도 있지만 안정성을 따지는 출자자들의 분위기 영향도 있다"며 "공고를 빨리 내는 건 자금 쏠림 해소에 도움이 되기 어렵고 성과보수 기준을 낮추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운용사에 득이 되는 내용이라 출자자들엔 매력이 없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결국 트랙레코드를 보유한 몇몇 대형 운용사들에게 자금이 몰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어쨌든 정부의 출자사업에 호응해야 하는 각 연기금 등은 자금을 풀어야 하고, 행여 수익이 좋지 않더라도 '명분'이 있는 운용사를 찾게 된다. 결국 실적을 쌓아둔 일부 운용사(GP)들에만 자금 쏠림 현상이 발생할 것이고, 회수 가능성이 높은 자산들의 가치만 폭등할 것이란 지적이다.
자금이 같은 시기에 동시다발적으로 풀리면서 이런 현상은 더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과거에는 출자 예산액들이 정부의 추가 경정예산의 추이에 따라 달리 정해졌다. 그러나 지난해 중기부를 중심으로 벤처 예산 편성이 빨라지며 비슷한 자금이 경쟁적으로 풀리게 됐다. 시기가 겹치다 보니 체급이 떨어지는 VC와 역량 있는 VC간 격돌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한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무작정 돈을 풀면 해결될 것이란 근시안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며 "‘얼마를 풀지’ 보다는 어느 시점에 자금이 풀려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고민부터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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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2월 25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