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규모 증가에 일단 기대감
신용등급별 지원대상 희비
과거보다 단기유동성 더 중요
타깃 부정확시 신용경색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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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가 12년만에 가동된다. 그동안 우량기업 일색이었던 국내 회사채 시장에서 비우량기업 회사채를 기초자산으로 할 채안펀드 유동화증권은 일찌감치 '올해의 딜(Deal)'을 예약했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으로 금융 시장 전체가 경색되는 와중에 채안펀드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정부는 4월초부터 채안펀드를 통해 회사채, 우량기업 기업어음(CP) 등을 본격 매입할 계획이다. 우선 10조원을 먼저 공급하고 신속하게 10조원 이상을 추가 조성한다. 일단 채안펀드의 편입대상은 투자적격등급인 신용등급 BBB급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08년에 두 차례 발행된 신보채안펀드 유동화를 보면 대상은 일반 회사채, 여전채, 프로젝트파이낸싱 자산유동화기업어음(PF-ABCP)이었고 신용등급 최하단은 BBB-, 최상단은 A+까지 분포돼 있다.
국내 기업들의 펀더멘털, 자금조달 구조가 과거 금융위기 때 비해 취약하지 않은 만큼 선제적이고 충분한 수준의 조치가 채권 시장 안정에 일조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베테랑 애널리스트로 꼽히는 김상만 하나금융투자 자산분석실장은 '4윌 위기설? 어이가 없다'라는 조금은 도발적인 제목의 리포트를 내놨다. 4월 회사채 만기 도래 규모가 절대 규모면에서 좀 늘긴 했지만 통상적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발행시장이 다소 위축됐지만 신용경색을 운운할 정도는 결단코 아니라는 입장이다. 국내 회사채 시장의 우량등급 비중이 높아 부도 위험이 낮고 일부 극소수 기업을 제외하면 단기 시장 의존도가 높지 않아 유동성 위험 또한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채안펀드에 대해선 "현 단계에서 실제 필요성이 그렇게 높다고 보진 않지만 예방 차원에서 적절한 대응"이라고 평가했다.
그밖에도 채안펀드 조성이 기업의 일시적 유동성 부족 우려를 낮출 수 있다는 점, 유동성 공급 대책이 효과를 발휘해 단기자금 시장의 안정화를 꾀할 것이라는 긍정적 평가들도 있다.
귀를 기울일 얘기들도 있다. 신용경색은 언제나 작은 틈에서 시작된다. 이번 위기는 12년 전과 발생 원인이 달라 보다 넓고 면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들이다.
코로나 확산이 언제쯤 멈출지 아무도 모른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불확실성의 종결이 불명확하다. 기업들 입장에선 당장의 차입금 상환도 문제지만 소비 침체 장기화로 향후 현금흐름 악화가 더 큰 고민거리다. 그러는 새 금융시장 불안과 신용 리스크 확대로 현금 수요는 높아지고 크레딧 약세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 투자 경색이 심화돼 채안펀드 효과는 크지 않고 크레딧 시장의 불안감이 커져 비우량 채권뿐 아니라 우량등급 채권까지 가파른 약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일견 수긍이 간다.
채안펀드가 유동성 공급을 위한 신용경색 해소 이상의 마중물 역할을 하기 위해선 투자 규모를 확대하고 편입 요건 역시 더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속속 나온다. 채안펀드 매입 대상이 과거처럼 우량 기업에만 한정되면 유동성이 떨어지는 비우량 기업들의 부도 확대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항공, 해운, 유통 등 코로나 확산에 직격탄을 맞은 산업 내 비우량기업들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만기도래 물량을 일정 수준 차환해주는 것 이상으로 비우량 기업에 대출이나 보증 발행 등 추가 유동성 확충 조치가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채안펀드와 관련된 초미의 관심사는 누가 지원대상에 들어갈지, 그 대상의 범위가 어디까지 늘어날 수 있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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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신용등급 BBB-에서 A+까지 기업 중 올해 4월부터 12월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일반회사채 규모는 8조원이 조금 넘는다. 메리츠캐피탈(A+, 8900억원), 대한항공(BBB+, 4950억원), LG디스플레이(A+, 4100억원), 한화(A+, 3400억원), 코오롱인더스트리(A, 2600억원), SK건설(A-, 2060억원) 등이 있다. 이 중 한화, 코오롱인더스트리, SK건설, 금호석유화학,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중공업, 해태제과식품은 2008년 신보채안펀드 유동화에도 편입됐던 기업들이다.
신용등급 인플레이션을 감안해 차환 부담이 더 큰 A 이하 회사채 규모는 4조5000억원 정도다. 그룹의 지원여력이 있는 기업들은 높은 비용을 지불하면 차환발행이 가능하지만 BBB급 기업들은 이마저도 어렵다. 등급 양극화가 더 심해져 지금의 BBB급 기업은 사실상 투자부적격으로 분류돼 기관투자가들이 투자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금융채 시장의 약한 고리인 여신전문금융채권도 문제다. 카드채, 캐피탈채 등 여전채는 소매·금융 업종이나 고객들의 경제상황 등이 전체적으로 반영된다. 특히 코로나 확산에 따른 소비 침체가 길어지면 여전사들이 금융시장 경색의 발단이 될 수 있다. 2008년 채안펀드 적용 대상에 여전채가 포함된 것도 이 때문이다.
채안펀드는 기업들에 있어 딜레마이기도 하다. 당장 자금조달이 쉽지 않은 상황에선 단비 같지만 동시에 유동성 위기의 낙인이 찍힌다. 자칫 채안펀드, 더 나아가 P-CBO(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에조차 편입되지 못한다면 사실상 자금줄은 막히고 금융시장 전체로 번질 신용경색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미국과 유럽의 코로나 확산이 언제 잡힐지 모르고 돈을 풀 수 없는 특정 국가에서 신용경색이 발생하면 글로벌 금융시장으로 전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현 시점에서 정부의 조치가 긍정적이면서도 낙관적으로만 보기는 어렵고 동시다발적으로 대규모 유동성이 풀리는 만큼 시장, 산업, 주체 등 타깃별로 면밀한 대응이 더해지는 질적 지원이 요구된다"고 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채안펀드는 회사채 주선 시장에서 '올해의 딜'이 될 가능성이 크다. 올해 1분기만 봐도 발행 규모가 작년에 비해 감소했다. 1분기에 SK하이닉스(1조600억원), LG화학(9000억원), 에쓰오일(6800억원), 현대제철(5500억원) 등 우량기업들의 대규모 발행이 있었지만 지속 여부는 불투명하다. 현금이 있는 기업들은 발행 수요가 줄었고, 그렇지 못한 기업들도 4월 발행 계획에서 관망세로 돌아섰다. 개별 기업이 조 단위 발행을 소화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신용보강을 통해 우량등급이 될 채안펀드 ABS는 조 단위 발행이 몇 차례 이어질 수 있다. 2009년 DCM 주관 1위에 산업은행이 오른 것도 채안펀드, P-CBO 주관 및 인수사 역할을 담당하면서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1분기 DCM 리그테이블은 KB증권과 NH투자증권의 양강 구도로 시작됐지만 현 상황에서 이들이 채안펀드 ABS 주관 및 인수에서 큰 몫을 차지하긴 쉽지 않아보인다는 전망이다. 이미 증권시장안정펀드에 5대 금융지주사가 필수적으로 참여하고 채안펀드 주요 투자자로 시중은행들이 지정돼 있다. 금융지주사 차원에서 보면 계열 증권사들이 나서기엔 이미 부담이 크다. 미래에셋대우,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등 비은행계 초대형 IB들의 활약, 그리고 산업은행의 재등판 여부에 관심이 맞춰져있다.
우량 기업들이 회사채를 어떻게 상환할 지도 리그테이블 성적에 중요하다. '현금이 왕'이 되면서 유동성 확보가 기업들의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이런 분위기가 길어진다면 조달비용 증가를 감수하고서라도 대규모 현금 축적을 위해 회사채 발행 움직임을 보일 우량기업들이 나타날 수 있다. 동시에 차입금 감축을 통한 신용등급 관리도 염두에 둬야 한다. 신용등급이 높아도 차입금 비율을 정상 수준으로 맞추지 못하면 신용평가사들이 등급 강등을 경고한다. 이런 기업들은 자산 매각 이후 현금 상환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다. 기업들의 차입금 상환 전략이 올해 DCM 리그테이블에 또다른 주요 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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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3월 31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