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이 왕' 내세운 고객들, 자문사는 지갑 열기 골몰
색채 갖춘 IB들은 여유있지만…입지 좁아질 IB도 거론
지난해 호황누린 로펌도 '긴장'…조직 슬림화 기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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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전세계로 확산하며 기업들도 잇따라 경영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다. 장기 경기침체가 우려되는 상황에선 기업들이 돈을 써가며 의미있는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보니 자문사들의 걱정도 깊어지는 모습이다. 이번 위기로 자문사 역량에 따른 양극화가 더 심화할 계기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투자은행(IB)들은 당장 먹거리 비상이다. 일부 IB는 코로나가 산업과 기업에 미칠 영향 등 분석 자료를 고객에 제공하며 마케팅에 나서고 있지만 거래 수임으로까지 이어지긴 어려운 상황이다. 승계나 구조조정 등 솔깃한 전략을 짜서 방문하려 해도 기업들이 손사래치고 있다.
기업의 핵심 임원 면면을 꿰고 있거나, 주요 그룹 의사결정자와 친분이 깊거나, 어떤 식으로든 클라이언트를 위해 매각가격 인상에 올인하는 등 색채가 뚜렷한 글로벌 수위권 IB들은 그래도 사정이 괜찮다. 글로벌 IB들 가운데 모건스탠리, 씨티 등 주요 IB들은 본사 CEO가 직접 나서 인위적인 인력조정은 없을 것이라며 조직 안정에 나서는 모양새를 취했다. 본사부터 구조조정에 들어갔던 2008년 금융위기와 분위기가 다르다.
그러나 국내에서 존재감이 약했던 IB들은 코로나 사태로 인한 일시적인 실적둔화에도 마음 졸이는 상황이다. 한 유럽계 IB는 코로나 확산 초기부터 본사가 글로벌 인력 축소 방침을 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도이치처럼 작년부터 이미 본사 차원에서 IB 업무를 줄여온 곳도 있다. 연락 사무소 수준이던 유럽, 아시아계 IB도 사무실을 유지할 필요성이 줄었다는 평가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은 규모 대비 실속 없는 시장으로 평가받는다. 활황기엔 보수 10억원 미만 거래를 수주하려면 홍콩 등 아시아본부에 사유서를 내야할 정도로 브랜드 관리를 철저히 했지만 이미 옛날 이야기다. IB 특성상 필수 인력은 적고, 해고와 재고용은 원활하다보니 경기 변동때마다 타격이 컸다.이미 부채자본시장(DCM)은 인력을 더 줄이기 어려울 만큼 줄여놨고, 주식자본시장(ECM)도 이런 형국에선 전문 인력이 큰 의미가 없다는 평가다.
전략컨설팅도 IB처럼 충격파가 있을 때마다 인력 변동이 잦은 영역이다. 전략 수정을 원하는 대기업 수요가 늘 수 있지만 거래와 관련한 자문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아시아나항공(맥킨지)이나 하나투어(BCG) M&A에 관여했지만 대형 충격파 앞에선 무기력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경영진의 눈치를 보는 상황에선 매주 대금을 청구해 위험을 줄여야 한다는 웃지 못할 평가도 나온다.
지난해 ‘빅 6’ 모두 괄목할 매출 성장세를 보인 로펌업계도 직후 터진 코로나 이슈에 고심이 커졌다. 대부분 지난해부터 이어진 거래를 이어가거나 일상적인 관리 업무 등으로 일감을 마련하고 있지만 장기화되면 실적에 미칠 영향도 고심해야 한다. 물리적으로 기업과 법원 문이 닫힌 상황에서 로펌만 분주하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점차 구조조정 자문이 늘고 있지만 이익에 큰 도움이 되는 영역은 아니다.
특히 로펌의 가장 큰 먹거리로 꼽히는 규제대응이 사실상 전면 중단된 점이 부담이다. 공정거래위원회·금감원·국세청 등 당국 규제기관의 현장조사도 대거 줄거나 뒤로 밀렸다. 그나마 라임 사태 대응에서 금융사를 자문하거나 한진칼 경영권 분쟁에 올라탄 법무법인들은 여유가 있다.
어차피 지난해와 같은 호황을 이어가긴 어렵다보니 일부 파트너 사이에선 되레 코로나 이슈가 매출 둔화의 책임을 피할 명분이 되는 것 아니냔 기대도 있다. 반면 일부 로펌 경영진들은 벌써부터 '파트너 평가의 기회'로 삼겠다며 대응 논리를 짜고 있다. 이번 기회에 방만한 인력 운영도 도마위에 올려 자연적인 구조조정 계기로 삼겠다는 것이다. 일부 로펌에선 지난해 호황이 배당으로 이어지지 않는 점에 대한 파트너들의 불만도 나오지만, 경영진들은 이번 코로나 이슈처럼 수년간 현금흐름을 고려해야 한다며 대응 근거로도 활용하고있다는 후문이다.
1인자 김앤장법률사무소의 매출 추이와 대응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타 로펌들이 금세 반등한 것과 달리 김앤장은 2010년까지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핵심 고객인 외국계 기업들이 한국을 떠난 영향이 컸다. 역설적으로 이 기간에 조직 슬림화, 인력 재조정 등을 거치며 체질 변화에 성공했다. 그 후 벌어진 키코 사태에서 금융사 일감 대부분을 따왔는데, 타 로펌들과 격차가 벌어진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회계법인도 여유가 많지는 않다. 상시적인 인력 이동은 있지만 과거 대우조선해양 분식 사태 때와 같은 대규모 이동이나 영입은 이뤄지지 않는 분위기다. 딜로이트안진은 최근 인건비 절감을 위해 전직원 휴무를 추진했다가 반발로 방침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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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3월 30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