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공고 이후 일정 연기 어려울 전망
한국성장금융·사학연금 등 "큰 틀 변경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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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앵커 LP’ 국민연금의 연간 출자계획 공고가 발표되면서 다른 기관투자가들도 눈치보기가 한창이다. 코로나 확산 한 가운데서 각 기관 LP마다 자산배분 재점검, 실사 연기 등의 조치가 이뤄지는 와중에 국민연금이 출자사업을 그대로 진행하기로 한 터여서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자금 집행을 꺼리던 타 LP들도 점차 ‘더 이상 미룰 순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최근 국민연금은 총 1조9500억원 규모의 위탁운용사 선정계획을 발표했다. 규모는 사모펀드(PEF)가 8000억원 규모, 벤처캐피털(VC) 분야가 1500억원 등이다. 공고 시점은 지난달 27일로, 코로나의 확산과 정부의 공문으로 타 LP들의 출자 일정 조정에 대한 고민이 한참이던 시기였다.
이 무렵 정부로부터 받은 공문 때문에 기관들의 고민은 더 컸다.
코로나 대응을 총괄하고 있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지난달 23일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발표했다. 이어 법인 사업장을 대상으로 하는 ‘지침 공문’이 작성, 고용노동부 산하 거점 노동청들이 발표일을 전후로 이를 발송했다.
모든 법인사업장에 발송이 어려웠던 관계로, 당시 공문 발송의 ‘우선 리스트’에는 콜센터·여론조사기관 등이 이름을 올렸다. 여기엔 50인 이상 사업장의 ‘금융업권’역시 주요 배포 대상으로 분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 접촉과 집단 미팅이 활발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일선 노동청은 ‘현장 지도’라는 이름으로 배포 사업장의 점검도 병행했다.
일선 LP들의 곤란함은 이미 상당하던 차였다. 연간 출자계획의 윤곽이 모두 잡혀있는 상황에서 무기한 출자금을 쌓아둘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각 사별로 ‘코로나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 분위기가 연출되며 LOC(출자확약서)제출 연장 및 현장 실사 연기 등이 불가피하게 진행됐다.
이 가운데 발송된 정부 공문은 일선 인력들에게 부담이 됐다. 한 LP의 실무 관계자는 “원래도 코로나 관련 수칙들이 있었지만, 공문이 사내에 공유되는 과정에서 ‘외부자의 사내 PT 금지’, ‘2인 이상 외부 미팅 금지’, ‘순환 재택근무 강화’ 등 세부 조치들이 있었다”며 “따지고 보면 LP들도 정부와 직간접적으로 관계된 단체가 많은데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매년 3~4월 중 사모투자 위탁운용 공고를 내오던 ‘대표 앵커 LP’ 국민연금이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관심사였다. 그리고 국민연금은 계획대로 출자사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국민연금 측은 수립한 출자계획의 일정 상, 코로나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란 입장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가장 빠른 일정인 PEF 위탁사 선정의 경우 이달 29일 제안서 접수를 마감하면 실질적인 외부 미팅은 적어도 5월 중순은 넘어야 한다”며 “내부적으로 논의한 결과 일단 공고를 내고 추후 상황을 봐서 조정을 하는 형태로 진행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여파는 위탁운용사 선정이 ‘현재 진행형’인 기관을 중심으로 강하게 미칠 전망이다. 이들은 ‘국민연금의 출자 계획과는 관련 없이 자체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현실적으로 국내 최대 앵커 LP 지위를 가진 국민연금의 계획이 공고된 이상 큰 틀의 일정 변경은 어렵게 됐다.
지난 2월부터 성장지원펀드 위탁운용사 선정 사업을 진행중인 산업은행과 한국성장금융은 예정대로 이달 말 운용사 선정을 완료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한국성장금융은 이달 진행될 기술금융펀드, FRONT1 출자사업 등도 정상적으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대신 지원 GP들을 상대로 구술심사, 현장실사를 최소화할 수 있는 추가 서류 제출과 비대면 심사 과정을 먼저 안내한다.
사학연금은 ‘2주만 연기’이라는 방침을 정했다. 당초 사학연금은 지난 2월부터 1500억원 규모의 PEF 운용사 선정을 진행하고 있지만, 비대면 정량평가 이외 일정을 잡지 못해왔다. 사학연금 관계자는 “원래 4월 중순에 예정된 최종 선발을 이달 내 마무리 짓는 방향으로 논의했다”며 “일정을 확답하긴 어렵지만 3월 말 예정됐던 현장실사를 구술심사와 함께 이달 중순에 끝낼 예정”이라고 전했다.
대체투자의 '큰 손'으로 떠오른 새마을금고 역시 ‘2분기 내’라는 일정을 넘기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새마을금고는 지난해 말 3년간 7조원의 블라인드 펀드 투자 계획을 밝히며 시장의 기대감을 모았다. 여기에 이달부터 신임 CIO(최고투자책임자)인 박천석 전 흥국생명 상무가 김상헌 전 CIO의 공백을 메운 상황이다. 새마을금고 관계자는 “코로나로 인해 세부적인 일정은 다소 늦어지고 있지만 큰 틀에서의 대체투자 계획은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투자업계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출자금 소진 보다 코로나 확산 방지에 비중을 더 두다 보니, 일부 LP들이 머뭇거리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국민연금의 이번 결정으로 제한된 범위 내에서라도 자금이 돌며 민간 LP들도 조금씩 영향을 받을 것이고, 시장이 차츰 정상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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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4월 03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