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격차 넓히는 TSMC, 독주 체제 견고해져
경쟁사이자 발주처인 삼성…구조적인 파운드리 한계 지적
"분사 후 투자유치 등 통해 명확한 절연 보여야" 아이디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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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민 사과에 나서며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을 시사한 이재용 부회장에겐 적지않은 사업적 시험대도 남아 있다. 가장 큰 과제로 단연 삼성전자가 발표한 ‘반도체 비전 2030’이 꼽힌다. 글로벌 선두에 오른 메모리반도체뿐 아니라 2030년까지 비메모리 반도체(파운드리 및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TSMC를 넘어 글로벌 1위를 달성하겠다는 선언이다. 정부도 메모리반도체 편중을 극복해야 한다 화답하며 적극적 지원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삼성전자의 비전 발표 및 대규모 투자 계획에도 불구, 구조적인 변화 없이는 업계 선두 TSMC 추격이 쉽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강하다. 삼성전자가 애플·인텔·퀄컴·엔비디아 등 수위권 IT업체들과 치열히 경쟁하면서, 비메모리 분야 중 핵심인 위탁생산(파운드리) 사업에선 그들의 기술력이 담긴 핵심 부품을 속속들이 들여다본다는 구조적 모순점을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이 때문에 파운드리 사업 부문을 기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에서 분사해 독립성을 강화하는 전략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제언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올해 1분기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 매출은 4조5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3조원) 약 50% 증가했다. 처음으로 반도체 전체 매출 중 25%를 넘어서는 등 호조세가 짙다. 하지만 삼성이 따라잡겠다 공언한 TSMC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지난 4월 TSMC는 1분기 총 12조5600억원(3105억 대만달러) 매출을 기록 전년 동기 대비 42% 증가했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분기별 순이익은 90.6% 증가한 4조7930억원(1169억9000만 대만달러)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를 보였다.
글로벌 리서치기관이 집계한 파운드리 분야 시장 점유율도 TSMC의 독주 체제가 굳어지고 있다. TSMC의 점유율은 지난해 48% 수준에서 올해 1분기 54% 수준으로 늘어 과반 점유율을 돌파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는 19%에서 15.9%로 오히려 줄었다. 타 업체들과 달리 해당 통계에 삼성전자 타 사업부의 자체 발주 물량이 절반 가량 포함된 점을 고려하면 삼성이 내건 ‘TSMC 타도’는 아직 갈길이 먼 셈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비메모리 2030’ 비전을 발표하며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만 약 133조원을 투입하겠다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혔다. 특히 비메모리 중 파운드리분야에선 최근 극자외선(EUV)을 활용한 미세공정 기술력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업계에선 의미있는 경쟁자로 TSMC와 삼성전자 두 곳만 남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공정과정이 미세해질수록 보다 저전력·고사양의 제품을 양산해낼 수 있어 우위를 점하기 위한 선제 투자가 중요한데, 10나노 이하부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투자금을 부담할 체력을 갖춘 곳은 양 사 뿐이란 전망이다.
다만 현재까지 기술력 측면에서 TSMC가 삼성전자를 앞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본격적으로 극자외선(EUV) 미세 공정이 필요한 5나노 경쟁에서 TSMC가 이미 양산 체제에 돌입했지만 삼성전자는 올해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시험 가동을 진행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 수익성 측면에선 고객사들의 하이엔드 제품 수주가 중요한데 TSMC가 아직까지 수율, 원가 측면에서 압도적이다보니 대부분 물량을 선점하고 남는 물량을 나머지 업체들이 나눠갖는 구도"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기술 격차를 좁히는 것 못지 않게 고객사들의 불안감 해소라는 구조적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완제품 시장에서 치열히 경쟁하는 삼성전자에 파운드리를 맡길 경우, 회사의 기초 설계까지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고객들의 우려가 자리한 탓이다. 회사도 이를 고려해 2017년 파운드리 사업부를 시스템 LSI 사업부에서 분리해 별도 사업부로 독립했지만, 사업부 체제의 한계는 분명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TSMC는 투자자 설명회 등에서도 지속적으로 "우리는 고객사와 경쟁하지 않는다"를 내걸어 삼성전자의 구조적인 취약점을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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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과의 해프닝은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에 대한 취약 사례 중 가장 대표적인 일화다. 애플의 아이폰 출시 시점인 2007년부터 핵심칩인 모바일AP를 위탁받아 생산했다. 애플이 파운드리 성장의 근간이 됐던 셈이다. 그러나 갤럭시S 시리즈의 시장 점유율이 아이폰을 위협하자 애플은 물량 전체를 경쟁사 TSMC로 옮겼다. 최근까지도 애플은 차기 아이폰용 AP칩(5나노 A14칩)을 추가적으로 주문하며 TSMC의 ‘매출 기반’ 역할을 톡톡히 한 것으로 전해진다.
반도체 담당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의 비메모리 및 파운드리 강화는 최근 이슈라기보다 이건희 회장이 지휘했던 30여년 전부터 강조해왔던 중점사업이지만, 그간 투자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라며 "기술 격차를 좁히는 것 못지않게 구조적인 한계를 직시하고 명확한 ‘방향성’을 갖고 베팅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업계 일각에선 삼성전자 비메모리 사업부의 분사 후 외부 투자 유치 등 구조적 변화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구체적으로 경영권은 삼성전자가 유지하더라도, 잠재 고객이 될 수 있는 다수 IT업체들을 지분 5%가량 주요주주로 포섭해 신뢰를 쌓고 일부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지배구조를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란 제안이다.
특히 분할회사를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해 투자금 확보와 동시에 미·중 무역분쟁 구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전략도 제시되고 있다. TSMC의 압도적인 기술력에 수혜를 보면서도 동시에 가격 협상력 등 주도권이 넘어가는 데 대한 고객사들의 우려를 공략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업종은 다르지만 국내에선 LG화학이 배터리 사업부를 분사하면서 고객사인 글로벌 완성차들의 투자 유치를 이끌어오는 방안을 고민하기도 했다.
파운드리 등 비메모리 사업부 구성원들의 '야성'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독립을 결단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그간 비메모리 분야는 단기간 이익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더라도, 호황을 누린 메모리반도체로부터 수혈 받아 대규모 초기투자 등 기반을 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독주 체제를 갖춘 메모리반도체에 편승하다보면 절박함을 잃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다른 반도체 분야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의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의 영향력이 없었다면 EUV 장비조차 원하는 시기에 구매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라며 "D램 분야의 울타리가 비메모리에 큰 장점이기도 하지만 독립성을 키워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애플의 팀쿡 CEO를 만나 삼성이 시장을 잠식하려는 게 아니라 일종의 비메모리 분야 연합체를 구상하고 있다는 식의 설득도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상 삼성전자가 컨퍼런스 콜에서도 메모리, 비메모리 가리지 않고 잘하겠다고 하지만 투자자 사이에선 자체적인 실력만으로 실현이 가능하냐는 근본적인 고민이 있기 때문에 이 지점에 대한 해법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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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5월 14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