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워크·쿠팡 등 비전펀드 투자 기업들
외형 성장보단 자본 확충 고민하게 돼
'신성장 기업' 전반 투자 위축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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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투자업계의 ‘큰손’ 소프트뱅크가 대규모 적자에 직면한 가운데, 사태가 국내 자본시장에 미칠 여파는 예상보다 거셀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비전펀드’의 이름 아래 시장 지배적 지위를 구축한 신성장 기업들은 기존의 자금 수혈 방식을 담보할 수 없게 됐다. 위워크, 쿠팡 사례로 부각된 비전펀드의 ‘유니콘 투자’가 거꾸로 시장 위축을 부르게 생겼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소프트뱅크그룹은 잇따른 자산매각에 나서고 있다. 이동통신 자회사 소프트뱅크코퍼레이션 지분에 대한 블록딜, 알리바바와 T모바일 등 투자회사에 대한 지분 매각 사례가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1~3월 1조4381억엔(약 16조5000억원)의 유례없는 적자를 낸 탓인데, 주원인은 비전펀드의 투자 손실(약 20조6500억원)이었다.
비전펀드를 통해 공격적인 외형 확장에 나섰던 신성장 기업들의 셈법은 복잡해졌다.
위워크는 최근 본사 차원의 경영 긴축 차원에서 CBD(도심권 업무지구)의 종로타워 임대차 계약 해지를 요청했다. 비전펀드 측이 위워크 본사에 전달한 ‘지점 옥석 가리기’ 지침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공유오피스 시장은 인테리어 비용과 전대차의 복잡한 계약 조건 상 경쟁자가 물량을 이어받기 힘든 구조다. 때문에 위워크의 지점 축소는 공유오피스 사업의 냉각을 부를 수 있다는 평가다.
CBD와 GBD(강남권 업무지구)의 오피스 투자 시장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 부동산 투자자문사 관계자는 “올해 신규 공급이 쏟아지며 오피스 시장의 임대료 하락이 예상되고 있었기에 공유오피스의 역할이 중요했다”며 “더 이상 공실 방어를 해낼 수 없다면 임차가 보장되지 않은 오피스들을 중심으로 매각 성사 사례가 크게 줄어들 것이고, 투자자들의 회수 전략이 막히며 시장이 침체될 수 있다” 고 분석했다.
수익성보단 외형 성장을 강조해온 쿠팡 역시 비전펀드의 역할이 중요했다. 하지만 이미 30억달러(약 3조7100억원)를 수혈해준 비전펀드가 흔들리며, 추가 자본 확충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
비전펀드가 보유하고 있는 쿠팡LLC 지분은 현재 약 6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때문에 소프트뱅크의 유동성 경색 우려가 커질 때마다 손정의 회장이 대형 전략적투자자(SI)나 재무적투자자(FI)를 동원해 쿠팡LLC 지분을 일부 정리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는 지난해 11월 라인과 야후재팬의 경영 통합이 선언된 이후, 손 회장이 대규모 자금을 필요로 할 것이라는 분석이 대두됐을 때도 유사했다.
한 증권사 유통 연구원은 “지금와서 손 회장이 쿠팡LLC의 지분을 전부 처리할 이유는 없지만, 현재까지와 같은 방식의 자금 수혈을 계속 해나가기도 힘든 상황”이라며 “물론 쿠팡이 추가 투자 유치에 어려움이 있지는 않겠지만, ‘버팀목이 있다’는 이미지에는 타격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리스크 회피 측면에선 좋을 게 없다”고 평가했다.
국내 기술 스타트업의 활로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지난해 ‘타다’를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의 갈등이 격화됐을 때도, 비전펀드의 타다 투자 검토 소식은 ‘신사업 규제 타파’의 명분으로 작용했다. 올해엔 서빙 로봇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이 소프트뱅크의 투자 유치에 성공하면서 국내 기술기업에 대한 관심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한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신성장 기업이란 곳은 대부분 바로 돈을 벌기 어려운 구조가 많고, 자연스럽게 기술을 인정받거나 투자를 확약 받을 일이 적다”며 “비전펀드는 투자 사례 하나만으로도 그런 스타트업이 외형을 키우고 다시 한번 시장과 만날 기회를 만들 수 있는 곳인데, 이번 적자로 이들의 성장 가능성이 다시 줄어든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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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5월 24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