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재협상 들어가도 조정가능한 부분 적어
정몽규 회장이 결단하거나, 산은이 확고한 대비책 내놓거나
이도 저도 아닐 경우, 결국 'KDB아시아나항공' 탄생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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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C현대산업개발과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 매각 지연을 두고 때늦은 '책임공방'에 돌입했다. 작년말 계약 체결 후 무려 6개월이나 지나서다. 게다가 이런 공방조차도 문제해결을 위한 실무자들간 협상은 빠진채,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서면 반박', '보도자료 배포'에 급급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미 이번 아시아나항공 매각 성사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당장 양측이 재협상을 시작해도 거래성사에 도움울 줄 유효한 매각조건 변경안이 많지 않다. 인수가격을 깎아준다 해서 HDC현산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진행할지 여부가 일단 불확실하다. 이러다보니 산업은행의 뚜렷한 결단 혹은 대비책이 없을 경우, 아시아나항공도 대우조선해양이나 대우건설, KDB생명처럼 산은이 지배하는 회사로 남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정작 관련부처와 정부는 뒷짐을 지고, 혼자 구조조정 난제를 떠안은 산업은행의 구조조정 실패 사례가 다시 등장한다는 의미다.
구주ㆍ신주 조정? 큰 의미 없어…자본 넣어줘야하는데 정부차원 결단'
HDC현산이 지난 9일 재협상을 요구한 대목은 사실상 '원점차원에서 전면 검토'로 인식되고 있다. HDC현산은 아시아나의 재무제표를 믿지 못하겠다며 ▲부실한 재무구조를 극복하고 산업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지원책 ▲계약 체결 당시의 본원가치를 회복하는 것을 전제로 한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 방안 두 가지를 요구했다.
M&A 계약 통례를 따지면 어느 것 하나 실현가능성이 높지 않은 요구다. 회사를 팔고 떠나려는 이에게 "그 회사가 미래에도 경쟁력을 가지도록 매각자가 돈을 넣어서 보장해달라"는 의미다. '계약 체결 당시의 가치 회복' 대목도 마찬가지. 진술과 보증등의 항목을 통해 매각 당시 매물의 상황을 어떻게 정의하고 보증할지 문제인데...여기에 코로나 사태로 인한 변동성까지 산은이 책임져야 할지는 미지수다. 즉 "아시아나항공, 다시 옛날 상태로 돌려줘"라는 요구를 산은이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는 확정하기 어렵다.
현실적으로 재협상 가능한 영역은 ▲박삼구 회장의 금호산업 등 기존 아시아나항공 대주주의 구주 매각가격 조정 ▲신주 인수조건 변화 (주수 확대 등) ▲채권단의 출자전환 등을 거론된다. 하지만 이 중 어느 하나도 현실성이 높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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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3000억원대의 구주 가격을 몇천억원이나 떨어뜨리거나, 신주발행 유상증자를 하는 과정에서 HDC현산이 받을 주식수와 지분율을 늘려준다고 해서 HDC현산이 "아시아나를 바로 인수하겠다"고 나설지 불확실하다.
현재 아시아나항공 인수의 최대 리스크는 '인수조건'이 아닌, 새 먹거리로 선택한 항공산업의 비전자체가 아예 변해버렸다는데서 기인한다. 달리 말해 인수가격을 좀 줄여준다고 해서 올해부터 내년에 이르기까지 아시아나항공이 겪어야 할 코로나발 리스크를 감내할 수 있을지는 보장하기 어렵다. 기술적으로도 자본감소나 액면가 이하 증자는 주주총회 특별결의(출석주주 3분의 2, 주식총수 3분의 1이상)를 거쳐야 한다. 하다못해 대주주 차등감자를 시도해본들 박삼구 회장과 금호산업의 동의를 기대하기 어렵다.
HDC현산이 가장 바랄만한 부분은 채권단의 대대적인 자금지원이다. 현재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의 5000억원 규모 영구 전환사채(CB)를 제외하면 실질 자본은 마이너스(-)수준이다. 이 CB는 HDC현산이 아시아나항공에 대해 증자를 단행하면 이를 통해 상환이 이뤄질 것이 전제된 CB다. 하지만 아시아나의 적자가 쌓이고 코로나 사태로 인해 향후에도 누적적자가 예고되면서 상황이 뒤틀렸다.
채권단이 기존 영구 CB를 포함한 채권을 자본으로 전환하는 한편, 대대적인 자금지원이 제공되면 아시아나항공의 자본잠식 상황이 회피된다. 아시아나는 재무구조가 개선되고 인수자의 상환 부담은 줄어든다.
하지만 이 경우 HDC현산과 아시아나에 대해서만 과도한 배려를 제공했다는 지적, 그리고 산업은행이 가장 꺼리는 '특혜'의혹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동일한 조건의 지원이 예고됐다면 HDC현산이 아닌, 다른 인수후보에게도 동일한 조건이 제공됐어야 한다는 형평성 논란이 불가피하다. "HDC현산이 잘 인수하기 위해 수천억원의 금융지원을 하겠다"고 산은이 선뜻 나서리라고 보는 이들도 많지 않다.
이 정도 수준의 결정은 산업은행 수준이 아닌, 항공산업과 국적항공사 생존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만드는 영역에 해당되지만 이번 정부는 이에 대한 밑그림을 제대로 보인 적이 없다.
아시아나항공 처리에 필요한 자본확충이 거론되자 금융위원장이 기껏 한 얘기는 "민간에서 M&A가 먼저 끝나야 기간산업안정기금 지원이 가능하다"는 수준이다. 파는 쪽도, 사는 쪽도 이 상태로는 매각이 어렵다고 아우성인데...정부가 선제적으로, 주도적으로 해결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인다. 결국 '산은이나 HDC현산이 알아서 해라"는 의미고 '산업구조조정' 보다는 '말 나오지 않는 일처리'에만 관심 있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이니 '원천 재협상하자', '협상장에 일단 나오고서 얘기하라'로 서로 문서를 보내가면서 '보여주기식' 책임공방을 해본들 실제 협상장에서 유효한 카드는 많지 않다는 의미다.
결단력 없는 오너와 정부 정책 없이 움직이는 국책은행이 가속화시킨 합작품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이렇게까지 흘러간데는 당장 '코로나 사태' 발발이 원인으로 꼽힌다. 인수가 결정될 당시와 달리, 항공산업의 비전과 미래 자체가 바뀌어버렸다. 그러나 이에 더해 결단력 없는 오너, 그리고 수십년간 구조조정 실패 사례를 야기한 산업은행의 '면피대책'이 상황을 가속화시켰다는 지적도 피하기 어렵다.
표면상 HDC현산으로서는 '인수조건'을 합리적인 차원에서 최대한 유리하게 조정하는 것이 당면과제다. 하지만 '인수조건 변동 = 아시아나항공 인수 단행'으로 이어질지는 별개문제다.
지금 상황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단행하려면 앞으로 오랜기간 항공산업 오너로서 리스크를 과감히 지느냐, 마느냐가 결정되어야 한다. 이는 삼성이 반도체 산업에 임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진출했을 당시처럼, 모두가 반대해도 미래를 내다보고 과감하게 리스크를 감내하는 오너 경영인의 결단 문제다.
현재 HDC현산과 정몽규 회장이 "사실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원치 않는다"라는 것이 진짜 속내라면? "인수조건을 바꿔주지 않으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취소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은 '벼랑끝 전술'이 아닌, 인수포기를 위한 '명분 만들기'에 불과하다. 그러니 HDC현산이 산은의 주장대로 공문만 11차례나 보냈던 것이나, '재협상하자'라는 신호를 계약 체결후 6개월이나 지나서 언론을 통해 배포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된다.
산은이 처한 상황은 더 복잡하다.
이번 아시아나항공 매각은 회사의 재무위기가 부각되는 과정에서 박삼구 회장과 금호산업이 지난해 돌연 "경영권을 포기하겠다"면서 본격화됐다. 그러나 실제 추진동력은 산은과 정부 차원에서의 오너 경영인의 경영실패를 문제 삼으면서 '박삼구 회장의 경영권 포기'가 수차례 공개적으로 종용된 것이 근본 출발점이다.
예상치 못한 코로나 사태가 발발한 점도 있지만 계약 체결후 무려 반년이 지나도록 산은과 매각측은 "HDC현산이 아무런 요구도 하고 있지 않다"라는 대답 외에는 이렇다할 적극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즉 인수자가 인수 자체를 포기할만한 상황이 뻔히 드러났음에도 불구, 국적항공사의 미래와 생존 자체에 대한 고민을 수반한 대안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이는 비단 산업은행 탓만으로 돌리기도 어렵다. 항공산업 구조조정 전반에 대해 명쾌하고 뚜렷한 스탠스를 제공하지 못한 정부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다.
재매각이나 분리매각을 단행하는 방편도 없지 않지만, 공개경쟁입찰을 또 진행해본들 자본잠식 위기를 맞이하는 아시아나항공 매각가격이 새로 어떻게 형성될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이 상황에서 가장 우려되는 최악의 경우는 'KDB아시아나항공'의 탄생이다.
HDC현산이 인수를 포기한다고 할 경우. 2500억원의 이행보증금 공방은 '부수적인 문제'다. 이제부터 아시아나항공을 어떻게 살리느냐는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그렇다고 박삼구 회장 등에게 "경영을 제대로 못했으니 새 주인을 찾아야 한다"며 매각을 먼저 종용해놓고서는 팔리지 않으니 "도로 경영하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상황을 감안할때 증자나 출자전환을 비롯, 어떤 식으로든 산업은행과 채권단의 자본투입(Cash Injection)이 불가피하다. 이렇게 되면 결국 아시아나항공의 새 주인은 다시 산업은행과 채권단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렇게 구조조정 '밑그림'과 '철학'이 부재한 상황에서 산은 산하로 들어간 회사들은 거의 예외없이 기업가치가 크게 훼손됐다.
대우조선해양이나 대우건설, 그리고 KDB생명에 이르기까지.... 산은 지배 아래에서 10년 넘도록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수조원의 자금이 투입됐음에도 불구, 산은 아래에서 기업 값어치가 뚝뚝 떨어지고 온갖 비리가 불거지기까지 한 사례들은 부지기수다.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과감하게 밀어붙일 당시 내세운 논리가 "산업은행과 채권단은 전문 경영인이 아니다"라는 점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 비전문가 집단이 항공업이라는 특수 산업을 떠맡아야 하는 상황이 최악의 경우다.
게다가 지금 산업은행은 전임 회장들과 달리 구조조정 작업에 가장 적극적이었다고 평가받는 이동걸 회장의 임기 종료를 3개월 남기고 있다. 과거 '연임' 사례가 거의 없었음을 감안하면, 남은 기간 내에 아시아나항공 처리 문제에 적극 대처하지 못하면 새 수장의 취임을 겪으면서 또 다른 시간을 써야 한다. 이런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가치는 계속 하락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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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6월 11일 17:54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