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추부터 삐끗한 사모펀드…"투자 문화 만들기도 전 시장 망가졌다"
입력 2020.07.16 06:54|수정 2020.07.17 10:01
    DLF 이후 또 터진 라임·옵티머스 사태
    "당국 대책이 혼란만 더 키운다" 평가
    '나쁜 판매사·선량한 투자자' 구도 갇혀
    개인 책임은 뒷전, 100% 배상 분위기
    • "20년 후를 생각하면 DLF 사태가 사모펀드 시장이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고 생각한다. 금융감독원과 힘을 합쳐 촘촘하게 제도를 개선하겠다. (중략) 투자자들도 금융투자 상품에 투자할 때 완전한 상품인지 판단하고 투자하셔야 한다. 공짜 점심은 없다. 투자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회 위원장)

      은성수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 위원장이 지난 10월 DLF 사태 당시 직접 밝힌 사모펀드 시장에 대한 입장이다. 당시 은 위원장은 취임을 앞두고 소비자 보호를 위해 규제 강화 쪽으로 생각이 변화했지만, 투자자 개인의 책임도 배제할 수 없다는 소신을 보였다.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에 대해서도 현 체제를 유지하되 법에 정해진 기능과 권위를 존중하며 소통하겠다고 약속했다.

      투자자의 책임과 권리. 아직 성숙하지 않은 국내 투자 문화를 제대로 만들어보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그간의 규제 위주 정책을 넘어, 자율을 최대한으로 허용한 사모펀드 시장은 500조원에 가까운 자산을 모으며 꽃을 피우고 있었다. 운용업계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스타'가 탄생했고, 은행과 증권사들은 좋은 상품 소싱(유치)를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9개월이 지난 현재, 국내 사모펀드 시장, 더 나아가 투자업계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라임에 이어 옵티머스자산운용까지 사모펀드의 불법·부실 문제는 끊이지 않고 있다. 라임은 부실이 난 자산을 숨기려다 일이 커졌는데, 옵티머스는 아예 처음부터 대놓고 사기를 쳤다. 안전할 줄 알았던 해외 젠투파트너스펀드마저 상환 불가 상태로 치달았다.

      선악을 나누는 이분법에 투자자 개인의 책임은 뒷전이 됐고, 100% 배상이라는 역사적 조정 판정이 나왔다. 연이은 정관계 연루 의혹에 정치권도 장외전을 준비 중이다. 평판 악화에 직면한 은행ㆍ증권사 등 판매사들은 아예 새 상품을 다루는 걸 포기할 지경이다. 시장에서 '사실상 사모펀드 시장이, 나아가 사모투자 시장이 이미 망가졌다'라는 진단이 나오는 배경이다.

      책임소재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금융위가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현재 22개 펀드 총 5조6000억원에 달하는 금액이 환매 중단 위기에 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5년 금융위의 사모펀드 활성화를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당초 기대한 효과와 정반대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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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시 금융위는 "규율체계를 단순화해 다양한 상품 출시를 유도하고 손실 감내 능력이 충분한 투자자만 투자할 수 있도록 하여 전문가 시장으로서 자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 설명했다. 활성화 대책 이후 20곳 안팎이던 전문 사모운용사는 현재 223곳으로 급속도로 팽창했다. 이들 펀드에 몰려든 돈은 424조원에 달한다.

      금융당국이 문을 활짝 열어두고도 관리·감독에 공백이 있었다는 사실은 지난해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 사태로 드러났다. 손실을 감당하지 못하는 개인 자금과 실력이 부족한 운용사가 우후죽순 늘어났다. 그러나 모든 책임은 불완전 판매와 수수료 장사를 벌인 판매사 몫으로 돌아갔다. 증권·운용 업계에서는 물론 당국 실무진에서조차 1차적으론 금융당국의 책임이 크다는 목소리가 많은 이유다.

      사모펀드 부실 사태가 본격화한 이후 금융당국이 내놓은 대책들도 시장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DLF 당시 최대 80% 배상안은 라임 사태 이후 100% 배상 책임으로 확대됐다. 현재 옵티머스 투자자 사이에서는 라임 무역금융펀드에 대한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이하 분조위) 측의 권고안을 두고 100% 배상받을 수 있다는 분위기가 감도는 것으로 전해진다. DLF에 대한 파격적 배상 책임이 나쁜 선례가 되며 개인 책임은 뒷전이 된 실정이다.

      운용 업계 한 관계자는 "당시 금감원이 보도자료 상단에 79세 치매노인 사례를 기재해놓고 판매사에 80% 배상 책임을 물었는데 금융업 종사자 사이에선 후진적이라는 평가 일색이었다"라며 "신파극을 내세워 피해자 적극 구제 명분을 만들고 책임을 금융사에 모두 떠넘기려는 의도로 비쳤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사건인 만큼 금융당국의 냉정한 대처가 필요했다는 지적이다. DLF 이후 라임과 옵티머스 등 문제가 잇달아 터진 현재 세간의 인식은 '나쁜 판매사와 선량한 투자자' 구도에 갇혀 있다. 시장에선 추후에도 비슷한 문제가 터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판매사들이 앞으로도 감내하고 보상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사모펀드 시장이 사실상 손실 위험이 없는 고수익 투자처로 변질되고 있다는 푸념도 나온다.

      금감원은 라임 무역금융펀드에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 사유를 적용했다. 계약 시점 이전에 기초자산 부실이 진행된 만큼 투자자가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었으니 판매사가 100% 책임을 져야 한다는 구조다. 그러나 더 심각한 사기로 밝혀진 옵티머스의 경우 동일한 잣대를 적용할 수 없어 분조위 측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운용사·판매사·투자자 3자에 앞서 금감원이 나서는 상황 자체가 사모펀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펀드 관련 한 전문가는 "펀드 판매사에 배상 책임을 어떻게 물을지 당국이 곤란해하는 건 자승자박"이라며 "사모시장인 만큼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불완전 판매 사실이 있었다면 거기까지 책임을 물으면 그만인데 어떤 이유로 얼마나 배상할지 정부가 나서는 게 어떻게 사모펀드냐"라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소비자 보호 외에 다른 목적이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된다. 자산운용사 한 대표는 "정관계 연루설이 제기되는 시점에 금융위, 금감원에 대한 감사가 겹치며 음모론이 들끓고 있다"라며 "정부에 불똥이 튀기 전에 당국 차원에서 피해자 구제 명분을 내세워 일을 빨리 마무리하려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라고 전했다.

      주력 플레이어 격인 증권·운용 업계에선 이미 사모투자 시장이 망가졌다는 회의적인 반응이 확산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법제처는 일반 사모펀드 투자 최소금액을 1억원에서 3억원으로 높이는 시행령 개정안을 심사하고 있다. 이는 금융위에 제기되는 '규제완화 원죄'에 대한 대응책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늦장 대처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이미 다수 판매사 입장에서는 사모펀드를 취급할 이유가 사라진 상황"이라며 "100건 잘 유통해서 얻을 수 있는 수수료 수익 총액보다 1건 문제가 터졌을 때 감당해야 할 평판, 배상 리스크가 더 커졌다"라고 평가했다.

      고난도 금융상품의 은행 판매를 제한한 것에 대한 비판도 꾸준히 제기된다. 금융위는 지난해말 파생상품 내재 등 투자자 이해가 어렵고 원금 손실 가능성이 20~30% 이상인 상품의 은행 판매를 규율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다른 운용 업계 관계자는 "시장에서 검증이 완료된 정상적인 자산운용사까지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며 "투자자 피해를 방지한다는 명목하에 시장 자체가 위축되고 있는데 국내 자본시장 전반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상품에 파생 편입을 못하면 주식 위주로 굴러가며 중개 수수료 등이 부과되는데 이 역시 그나마 남은 투자자에 부담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