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규모와 네트워크에 따른 양극화 심화
사모펀드 대란은 증권사 전반에 대한 신뢰저하
위기를 틈타 새로이 부각하는 테크핀의 공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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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상반기는 국내 증권사들에게는 수면 아래 잠재하던 리스크들이 한꺼번에 부각된 시기였다.
수익을 창출할 먹거리는 줄어들거나 영역이 한정되기 시작했다. 일시적인 '이벤트'로 치부하기에는 시장의 변화가 예사롭지 않고 '뉴노멀'로 고착화될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이런 상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금융사고, 그리고 네이버ㆍ카카오로 대변되는 테크핀(Tech Fin)의 발빠른 금융업 진출은 이들이 설 자리를 점점 좁히고 있다.
이런 위기와 리스크가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한꺼번에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기존 먹거리 줄고, 20년째 새 일감은 모호
코로나 사태에 짓눌린 올 상반기 주식ㆍ채권ㆍM&A 각 부문에서는 유동성 장세가 이어진 주식시장을 제외하고는 시장 전반이 움츠려들고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는 모습이 드러났다. 회사채 발행의 60%는 10대 그룹에 집중됐다. M&A시장에서는 오랜만에 움직인 KB금융지주와 일부 대형 사모펀드(PEF)를 제외하고는 다른 플레이어들의 움직임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당연히 이들을 따라 움직이는 증권사들의 일감도 SK바이오팜 상장이나 푸르덴셜생명 매각 같은 일부 거래에만 국한됐다.
비단 올 상반기만의 문제일까. 코로나 사태가 좀 더 완화된다고 해서 움츠린 시장이 기지개를 펼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기업들의 움직임은 점점 신중해지고, 투자금을 선뜻 낼 수 있는 바이어는 일부 대형 PEF로 완전히 좁혀졌다. 클라이언트의 범위가 좁아지면서 증권사들 사이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심해질 상황이다. 자본규모와 기존 네트워크를 갖춘 상위권 증권사는 그럭저럭 일감과 물량을 받아내지만 그렇지 못한 곳은 점점 수익 내기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증권사들이 이렇다할 새 일감을 창출해 낸 것도 아니다. 사실 지난 20년 동안 기업금융(Corporate Finance)과 투자은행의 리더들은 새 먹거리 창출이라는 주제를 놓고, 매번 비슷비슷한 답을 내놓았다. 대부분 ▲기업 니즈에 맟춘 원스톱 서비스ㆍ품질향상에 따른 수익증대 ▲중견기업을 포함한 고객군의 다양화 ▲크로스보더 거래 진출 등으로 요약된다. 2000년에도, 2010년에도 이런저런 미사여구를 동원하면서 "10년 후에는 달라질 것이다"라고 표방했던 변화의 축이다.
하지만 여전히 증권사들의 서비스는 대동소이하고, '돈벌이'가 될만한 먹거리는 일부 대기업에 치중돼 있다. IB부문 수익이 과거보다 급증했지만 수익의 실체를 따져보면 늘어난 자본에 기인한 인수금융 등 대출거래 혹은 그 파생에 기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크로스보더 거래는 여전히 글로벌 IB의 영역인데다 코로나 사태는 이로 인한 확장 가능성을 크게 줄였다. 증권사들의 수익은 또다시전통 브로커리지 수익에 기대고 있고 일부 대형 증권사는 전통 IB를 벗어나 부동산 PF로 이익을 창출하고 있다. 새 먹거리는 요원하다.
"대형 금융회사는 믿을만하다?" 신뢰도 바닥까지 추락
이런 와중에 라임ㆍ옵티머스에서 젠투파트너스까지 연일 이어지는 사모펀드발 금융사고는 국내 증권사들은 물론, 금융회사 전반의 평판 리스크를 야기하고 있다.
각 사태마다 원인이 다르다보니 일괄로 판단할수는 없으나 고객들 입장에서 보면 별반 차이가 없다. 안전성을 보장해주는 주된 척도였던 브랜드, 이른바 '국내 5대 증권사' , '상위 증권사'로 이름불리던 판매창구에서 가입한 상품들이 연일 고객의 손실을 야기하는 사태가 반복 중이다. 라임사태를 겪은 고객들로서는 "국내 증권사는 아무리 큰 회사라고 해도 믿을 곳이 못된다"라는 인식을 가지게 됐다.
그렇다고 이번 사모펀드 대란에서 한 발 빗겨난 증권사나 금융회사들이 확실한 차별성을 지니고 있는지도 미지수다. "앞으로 또 터질 펀드 사태가 줄줄이 대기중"이라는 암울한 전망은 그간 국내 증권사들이 상품의 설계나 외주선택, 펀드 관리와 판매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여전히 과거보다 크게 나아진 것이 없음을 방증하는 모양새다.
이들이 야기한 평판 추락은 특정 증권사가 아닌, 금융권 전반에 대한 신뢰상실을 일으킨다. 중장기적으로는 신용과 신뢰에 기반한 금융회사의 기반 자체를 흔들리게 하는 요인이다. 이제 고객들에게 국내 증권사들은 '투자' 혹은 '자산관리'를 믿고 맡길 수 파트너라기보다, 수수료 이익을 받아내고 해당 회사 임직원의 고액 보너스를 주는데 앞장서는 부도덕한 이미지로 남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새 세대의 금융서비스를 점유하려는 테크핀…성큼 다가온 미래
공교롭게도 이 시기에 네이버와 카카오로 대변되는 메머드급 테크회사들의 금융업 진출이 가시화되고 있다. 처음에는 개인통장과 후불결제에 기반한 카드부문으로 시작하는 추세. 그러나 이들 테크핀 회사들이 금융의 최정점인 자산관리와 투자의 영역으로 진출하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테크 회사들은 '네이버 검색' 이나 '카카오톡'을 위시한 국민적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손쉽게 접하고 편리하게 쓸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놓는데는 이골이 난 곳이다. 그 파괴력이 얼마나 엄청난지는 이미 증명됐다. 네이버페이가 처음 등장할 당시, 온라인 유통회사가 아닌 네이버가 G마켓이나 쿠팡 등을 가볍게 제치고 온라인 판매채널 최강자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이들은 드물었다. 이런 파괴력과 경험을 기반으로 네이버를 통해, 혹은 카카오를 통해 앞으로 주축이 될 2030세대에게 금융서비스 공급자로 다가 온다면? 이들이 내놓는 플랫폼의 편리함과 별개로, 이미 '익숙함' 혹은 '친근함'의 영역에서 기존 금융회사를 가볍게 뛰어넘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리 먼 얘기도 아니다. 전 국민이 관심을 가진 공모주 투자나 다시 불붙은 부동산 투자 영역에서 테크회사들이 접근성이 높고 사용자 데이타까지 반영한 서비스를 내놓는다면? 취업을 하고 성인이 되어 처음 주식투자를 접할 2030세대에게 있어 OO증권 모바일 주식거래 앱보다도 훨씬 더 편리한 네이버나 카카오의 서비스가 제공된다면? 이들의 플랫폼이 한 번 자리잡게 되면 그간 시장을 점유했던 국내 증권사들과 금융회사들은 네이버나 카카오의 서비스를 보완하는 '하청' 혹은 '외주'업체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런 변화들을 한꺼번에 모아서 보면 묘한 결론이 나온다. "전통 금융회사들의 기존 먹거리는 줄어들고 지난 20년간 새로운 먹거리는 아직도 마련하지 못했다. 반면 '신용'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금융사들의 신뢰도가 점점 바닥을 치고 있다. 이 와중에 앞으로 부를 창출해야 할 세대들은 금융상품을 금융사가 아닌, 테크회사에서 선택할 것으로 전망된다".
멀리 있을법한 암울한 미래가 갑자기 코로나를 계기로 성큼 눈앞에 나타나버린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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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7월 13일 10: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