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들, 디즈니 제휴에 자사 OTT 사업성 걸려
당장 이익보다 존재감 부상 중요…출혈경쟁 가능성도
-
통신사들이 디즈니플러스와 손을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자신들의 OTT(Over the Top)는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에서 넷플릭스의 파급력은 경험했다. 디즈니의 콘텐츠 파워를 결합시키면 단숨에 국내 OTT 시장의 강자로 부상할 수 있어 통신사들은 독점권이 탐나지 않을 수 없다. 당장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컨텐츠 유통 대가를 거의 받지 않는 출혈 경쟁도 감수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SK, KT, LG유플러스 등 통신사업자는 디즈니플러스 제휴를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디즈니플러스는 작년 11월 북미 지역을 시작으로 유럽, 최근엔 인도와 일본 등 아시아 시장에도 진출하고 있다. 처음엔 디즈니가 통신 3사와 공히 손을 잡을 것이란 예상도 없지 않았으나 결국 한 곳과 제휴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연내 제휴 사업자를 정하고 내년 중엔 서비스를 출시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OTT 산업은 글로벌이나 국내 시장 모두 급성장세다. 최근 수년간 20% 중반대의 성장을 이뤘는데, 코로나 확산으로 성장세는 더욱 가속화 할 것으로 예상된다. SK텔레콤이 지상파 3사와 손잡고 웨이브(wavve)를, KT는 기존 올레tv모바일을 개선한 시즌(seezn)를 내놨고, LG유플러스도 인터넷TV와 연동한 U+모바일tv를 꾸리고 있다.
아직 통신사 OTT의 자리는 확고하지 않다. 결국은 양질의 콘텐츠를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가 문제인데 방송3사의 콘텐츠는 위상이 예전같지 않고, 다른 곳들도 제작 역량이나 자금력이 여유롭지 않다. 글로벌 OTT 넷플릭스가 국내서도 절대 1강의 자리를 차지하며 토종 OTT가 고사할 것이란 우려가 커진다. LG유플러스는 2018년 넷플릭스와 독점 제휴하며 가입자 및 매출 증가 효과를 누렸고, 올해는 KT도 넷플릭스와 손을 잡았다.
과거 넷플릭스처럼 디즈니 플러스의 성장세도 눈부시다. 작년 말 출시 후 전세계에서 8개월만에 6000만명을 모았다. 가족 컨텐츠 위주의 디즈니와 유명 캐릭터가 많은 마블 시리즈, 내셔널지오그래픽 등 고객의 구미를 당길 콘텐츠(Attraction contents)를 수 천 편 갖추고 있다. 영화 뮬란은 해외에선 극장이 아니라 통신사 플랫폼을 통해서 제공하는 등 콘텐츠 장악력이 강하다.
-
디즈니플러스가 한국 시장을 두드리니 통신사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통신사 입장에선 디즈니와 제휴만으로도 대규모 고객 유입 효과를 기대할 만하다. 마블 콘텐츠는 특히 다시보기 수요가 많다. 단숨에 OTT 시장에서의 존재감을 끌어올릴 수 있다. 디즈니플러스의 콘텐츠는 대부분 글로벌향(向)이다. 아시아에서 인기 있는 한국 콘텐츠를 무기로 해외를 진출하기에 앞서 디딤돌이 되어줄 수도 있다.
디즈니는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면서 고객 기반을 빠르게 늘리기 위해 해당 국가의 1위 사업자와 손을 잡는 전략을 보였다. 인도에선 1위 OTT 사업자 핫스타와 손잡았고, 일본에서도 1위 통신기업 NTT도코모와 제휴를 맺었다.
이 때문에 통신 고객 1위 사업자인 SK가 한 걸음 유리한 입장이 아니냔 시선이 있다. SK텔레콤은 웨이브와 티빙(tving), 왓챠 간 합병에 뜻이 있음을 드러내기도 했는데 그만큼 사정이 급하다는 평가도 있다. 자회사 SK브로드밴드는 영화 월정액 서비스 오션(OCEAN)을 출시했지만 벌써부터 콘텐츠 대가를 두고 영화 업계와 이견을 빚는 등 갈 길이 멀다. 3사 중 유일하게 넷플릭스와 접점이 없다.
KT는 ‘시즌’을 가지고도 넷플릭스와의 제휴를 택했다. 그만큼 고객을 묶어둬야 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는 모습이다. 넷플릭스는 IPTV를 통해서만 서비스 되기 때문에 모바일 쪽이 아쉬울 수 있다. KT 수뇌부도 증권사 연구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디즈니플러스를 무조건 데려오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밝혀 왔다. KT는 정통 통신사로서 입지를 지키고 있지만 다소 올드한 이미지가 부담이다. 디즈니가 얹어지면 신선한 이미지를 더할 수 있다.
LG유플러스는 넷플릭스와의 독점 제휴가 5월에 풀렸고, 10월이면 제휴가 종료된다. LG유플러스를 통하지 않는 넷플릭스 이용자가 많고, 애초에 수익 배분에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기 때문에 실효성엔 의문도 있다. 그럼에도 인지도 제고 및 이용자 증가 효과만으로도 쏠쏠한 득을 봤다는 평가가 나온다. LG유플러스는 교육 플랫폼 ‘아이들나라’에 힘을 싣고 있는데, 디즈니와 손을 잡으면 어린 고객들을 일찍부터 묶어두는 효과를 낼 수 있다.
-
통신사 입장에선 다시보기 등으로 제공하는 디즈니 관련 콘텐츠가 빠질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디즈니플러스가 한 곳과만 손을 잡는다면 몇 년 지나지 않아 인기 콘텐츠의 상당 부분을 내려야 할 수 있어 부담이 크다.
사정이 이러니 디즈니플러스와 손을 잡으려면 통신사들이 상당히 양보해야 할 것이란 시선이 많다. 보통 통신사가 IPTV를 통해 방송을 내보낼 때는 채널 위상에 따라 20~50%의 유통대가를 받는다. tvn이나 JTBC 등 유력 방송사는 수수료율이 낮고, 비인기 채널은 높은 식이다. 넷플릭스는 이 대가가 10% 수준이었는데, 통신3사의 경쟁을 감안하면 그보다도 유리한 조건을 디즈니에 제시해야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자문사 관계자는 “고객 유입 기여, 해외 진출 지원 효과, 마블 컨텐츠의 이탈 가능성 등 다양한 변수를 감안하면 통신사 입장에선 디즈니는 놓치기 아까운 파트너”라며 “넷플릭스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나은 제휴 조건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유통 대가를 노리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없지 않다. 당장 수수료를 얻지 않더라도 자사를 통한 콘텐츠 파급력이 입증되면 차후 협상 때는 디즈니로부터 보다 유리한 조건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통신사들은 고객들에 서비스를 제공할 때도 제휴에 따른 비용 전가를 최소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 플랫폼 이용료에 디즈니 콘텐츠 가격을 얹으면 당장 수익은 올라가겠지만 고객의 저항도 커지고, 고객 유입 효과도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통신담당 연구원은 “디즈니의 컨텐츠가 가지는 파급력이 매우 크기 때문에 통신사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제휴를 맺고 싶을 것”이라며 “일단 자사를 통한 마케팅 효과가 있다는 점이 입증되면 이후 협상은 부드러워지기 때문에 당장의 판매 수수료에 욕심을 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9월 03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