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배터리·수소 등 미래산업 곳곳 손길
글로비스 주가 상승률, 현대차·모비스 압도
-
정의선 회장 체제 돌입으로 주목받는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는 단연 현대글로비스이다. 현대글로비스의 성장은 정 회장의 자금 동원력 확대와도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이 아직 풀어내지 못한 지배구조 개편이란 숙제를 끝내기 위해 현대글로비스의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미 현대글로비스는 과거의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벗어나 신사업을 개척하려는 필사적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 그리고 현대모비스에 비해 그룹 내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현대글로비스는 최근 들어 빠른 속도로 사세를 확장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10월 들어 ▲중고차 시장 진출 ▲배터리 렌탈 사업 시작 ▲수소운반선 사업 등에 본격적인 진출을 선언했는데 각 사업에는 현대글로비스가 중추적인 역할을 맡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룹의 중고차 시장 진출에 대한 구체적인 주체는 아직 확정하지 않았지만 현대글로비스가 사업을 이끌 개연성이 가장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대글로비스는 이미 2001년부터 중고차 매입 서비스인 오토벨(Auto bell)을 운영중이다. 회사가 중고차를 매입해 중소 중고차 매매업체를 대상으로 오프라인 경매를 열고 매물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이같이 B2B 사업에 국한했던 중고차 사업영역을 일반 소비자까지 대상을 확대하는 것이 현대차그룹의 전략이다.
기존 중고차 업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지만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출은 이미 예견돼 왔다. 내연기관의 종식, 그리고 전기차·자율주행 차량의 보급은 자동차를 사고파는 방식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자동차가 단순한 운송 수단에서 벗어나 일종의 스마트 기계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보다 수준 높은 인증 절차와 정비 시스템이 필요하다. 결국 소비자의 안전과 직결되는 일종의 ‘컴퓨터’와 ‘스마트 기계’를 매매하는 과정에서 원제조 업체의 역할이 더욱 부각될 거라는 평가다. 벤츠와 BMW, 아우디와 같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도 이미 인증 중고차 사업을 운영중이다.
LG화학과 손잡은 현대글로비스는 전기차 택시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가 보유한 배터리를 전기 택시회사에 빌려주고, LG화학이 2~3년 후 발생하는 폐배터리를 활용해 급속 충전용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제작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이달 이 같은 ‘사용후 배터리 활용 사업’을 임시 승인했다. 폐배터리 사업 또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이미 시행하고 있는 사업 중 하나다. 관련 업계에서는 2050년까지 폐배터리 활용 시장이 60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범(汎)현대그룹 간의 사업적 시너지 효과도 노리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한국조선해양, 현대미포조선)은 22일 인증기관으로부터 2만 입방미터(㎥)급 액화수소운반선에 대한 기본인증서(AIP)를 받았다. 실제로 운항이 가능한 세계 최초의 액화수소운반선인 해당 선박을 활용하기 위해 현대글로비스는 실선에 적용하기 위한 구체적인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
▲(중고차)플랫폼 ▲배터리 ▲수소 등 미래차 시대와 가장 밀접한 연관이 있는 사업에서 현대글로비스가 앞장서는 모습을 보이면서 투자자들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최근 3개월간 현대글로비스의 주가 상승률은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를 뛰어넘었다. 정의선 체제를 맞아 기업가치를 끌어올려야 하는 필요성과 실질적인 사업 진출이 가시화하면서 강한 투자심리를 이끌었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글로비스는 과거 현대·기아차의 실적과 연동해 투자심리가 형성됐던 기업이지만 이젠 독자적인 기업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사업들을 추가하며 그룹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며 “다만 신사업들이 아직까진 실적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현재의 기업가치에는 기대감이 더 많이 반영돼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현대글로비스가 필사적으로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이유는 정 회장의 지분 승계 그리고 일감몰아주기 탈피 등을 이유로 꼽을 수 있다. 정 회장이 정몽구 명예회장의 현대모비스, 현대차 지분을 상속받기 위해선 수조원대의 재원 마련이 필수적이다.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정 회장이 활용할 수 있는 재원은 사실상 글로비스와 비상장 계열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이 유일하다. ▲ 직접 상속세를 납부해 명예회장의 지분을 사오는 방안 ▲ 과거 추진했던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의 합병 방안 ▲지주회사 설립 방안 등 모든 전략에서도 현대글로비스의 기업가치 상승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기도 하다.
현재 정 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의 지분가치는 현재 약 1조6500억원 수준으로 불과 3개월 전과 비해 2배가량 늘어났다. 현재의 사업확장 속도를 고려하고, 수년 내 신사업의 사업성과가 나타난다고 가정하면 정 회장이 현대글로비스를 통해 마련할 수 있는 재원 또한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사실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차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중심에 서 있기도 하다. 정 회장 부자가 29.99%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정부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을 과거 오너일가가 30%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에서 20% 이상 보유한 기업으로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의 올 상반기 매출(연결 7조9730억원, 개별 6조4090억원) 가운데 현대차와 기아차로부터 발생한 매출만 4조9000억원이다. 결국 현대차와 기아차가 대부분의 비중을 차지하는 물류와 유통 사업에서 확장하지 못하는 이상 정부의 규제 한 가운데 서게 된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글로비스가 수년 동안 꾸준히 내부거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 왔으나 사실상 사업부를 떼내 외부에 팔지 않는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뜨리긴 쉽지 않다”며 “정 회장의 재원마련과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사업 다각화와 이에 따른 주가 부양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은 정책적 수혜를 가장 많이 받는 기업 중 하나로 꼽힌다. 완성차의 판매실적과는 무관하게 주가는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데 현대차그룹이 친환경·스마트 모빌리티 기업으로 이미지를 탈바꿈하며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점도 주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
실제로 현대차는 그룹 전반에 걸친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고, 성장 히스토리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투자자들과의 접점이 가장 많은 IR 담당 부문을 강화했다. 글로벌 금융회사 출신의 유력 인사들을 곳곳에 포진하고 IR 개최를 늘리며 투자자들과의 소통을 늘리는 모습을 나타낸다. 현대차 계열사의 기업가치 상승, 투자자들과의 접점이 과거에 비해 크게 늘어나면서 지배구조 개편의 시기도 점차 빨라지고 있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10월 23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