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칼 경영간섭 안한다"면서 뽑은 사외이사가 '감시'역할
"시간 없다"면서 2달만에 뚝딱...한진해운 교훈은 어디로?
언론에 책임 물으며 '정치적 해석 말라'…불안 조장이 언론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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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자 19일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어조는 나흘 전에 비해 사뭇 달랐다. 합병의 당위성을 강조하면서도 종사자들을 생각해달라며 호소했다. 합병 반대 기자회견을 연 여당 국회의원들에겐 유감스럽고 안타깝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특히 이번 딜(Deal)에서 김석동 한진칼 사외이사의 역할과 이 회장과의 관계를 다룬 기사를 들고 나와 조목조목 잘못을 지적하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명예훼손이기에 법률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한국 항공운송업의 생존이라는 대의 강조는 와닿지만 감정적이기까지 한 발언들 때문인지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적 장면들이 여러 차례 드러났다.
1. “고용유지 약속 여러 번 얘기했다. 고용유지 안 하면 위약인데 위약을 하겠는가? 위약하면 현 경영진은 의무위반으로 징계받는다. 경영 퇴진을 할 수 있다.”
사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의 가장 뜨거운 감자는 인력 구조조정 문제다. 이동걸 회장은 몇 번이나 자연적 감소를 제외한, 인위적인 인력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도 약속했다.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은 한 발 더 나아가 “인력 구조조정을 하지 않기 때문에 노선 통폐합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코로나 회복 전까진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직원들 모두 (유급)휴업을 해야 한다고 했다. 줄어든 월급으로 버티지 못하는 이들이 떠나는 것을 자연적 감소라고 한다면 등 떠밀린 자연적 감소라고 할 수도 있겠다.
정말 구조조정 없는 부실기업 정상화는 가능할까? 이동걸 회장은 간담회 서두에 “전 세계적으로 정부의 대규모 지원에도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는 곳도 있다”며 유나이티드항공과 캐세이퍼시픽의 감원 계획을 직접 언급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최근 흑자를 낸 것도 임직원의 급여반납과 대규모 유무급 휴직, 여객 대신 화물 확대 등 사실상 구조조정으로 마른 수건을 짜낸 결과다. 항공업계와 금융시장에선 ‘통합’ 대한항공이 정상화하려면 노선 효율화, 항공기 수 축소 등 인위적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두 항공사 직원들조차 “구조조정은 없다”는 얘길 믿지 못하는 눈치다.
산업은행은 “조원태 회장이 담보 가치 1700억원인 한진칼 지분 전체를 담보로 제공했다”며 “산은은 경영평가를 통해 경영 성과가 미흡하면 담보를 처분하고 경영 일선에서 퇴진하는 등 무거운 책임과 의무를 부여했다”고 밝혔다.
‘구조조정은 없다’→’구조조정을 하지 못하면 경영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경영 성과가 미흡하면 경영 일선에서 퇴진시키겠다’
이 논리대로라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사실상 퇴진의 길로 들어 설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그 미흡한 경영 성과의 기준은 무엇인지, 현 경영진에 얼마의 시간이 주어질지는 산업은행만 알고 있다.
지난 9월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무산 이후 진행된 간담회에서는 말이 달랐다. 이동걸 회장은 “한 가지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평가작업 중인데 비용감축과 고통 분담은 필수”라며 “그러나 너무 강요하다보면 기업 핵심부서가 붕괴된다든지 기업의 장기적 전속능력이 훼손될 수도 있어 적절한 고통분담과 어떻게 균형을 유지할 것인지 중요하다”고 얘기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구조조정은 불가피하지만 어떻게 하면 이를 최소화할 지가 고민이라고 했다. 두달이 지난 지금, 대한항공과 합병하면 구조조정을 할 필요가 없어지는 '마법'이 이뤄졌다.
2. “몇 번이나 말했지만 책임경영 보장하고, 경영참여 하는게 아니다. 건전경영을 감시 견제하는 역할이지 경영에 참여할 수도 없고 참여할 생각도 없다. 저희는 결코 경영에 간섭할 생각도 없고 방법도 없다.”
“이 딜이 성사돼 효력 발생하면 한진칼과 대한항공 양사 다 사외이사 3인과 감사위원은 저희가 추천하는 걸로 지금 약속이 돼 있다. 저희가 추천한 사외이사가 건전경영의 감시 역할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역시 논리적으로 배치(背馳)가 된다. 국유화 가능성, 그리고 재벌 특혜 논란에 대한 얘기를 하는 과정에서 뭔가 뒤섞여 있는 듯한 느낌이다.
국유화 논란에선 한진칼 지분 10% 정도밖에 들고 있지 않게 되며 중립 및 캐스팅보트 역할에 그칠뿐 “산업은행은 경영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이 회장은 이 딜이 불발돼 아시아나항공에 대규모 자금이 들어가고 자본을 확충하면 ‘여러분이 걱정하는’ 완전 국유화라고 한다.
반면 조원태 회장 특혜에 대해선 “사외이사가 건전 경영 감시 역할을 맡는다. 인력 구조조정 못하게 했고, 경영 성과 못내면 퇴진한다는 내용을 서약했다”고 한다. 서약서의 법적 효력이 어디까지일지도 모를뿐더러 한진칼 지분 10%와 사외이사 3인으로 한진칼, 대한항공 모두 사실상 경영에 개입하겠다는 얘기와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사실상’과 ‘완전’은 다른 얘기다.
3. “이제는 합쳐서 경쟁을 높이고 최대한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게 국적항공사, 우리 국제항공운송업이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다. 시간이 없다. 시간이 지나면 비용이 늘고 정상화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결단을 내릴 시기라 생각했다.”
이 결단을 왜 미리 내리지 못했을까? 이제서야 그런 결단을 내리게 된 걸까? 복기를 해보자.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무산된 이후 가진 9월 기자간담회에서 이동걸 회장은 “통매각뿐 아니라 분리매각도 쉽지 않을 것 같아서 걱정이 많은데 좋은 아이디어를 달라. 지금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끝났다고 우리가 최종 판단을 했다. 기안기금 투입 결정 후 가장 중요한 현안은 아시아나항공이 더이상 불확실성 속에서 기업가치가 훼손되는 걸 막자는 것이다. 다시 말씀드리면 빨리 안정화 추진하자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말인즉슨 이 기자간담회 이후 ‘좋은 아이디어’를 어디서 받았고, 그 때부터 두 항공사를 합치는 게 유일한 대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얘기다. 즉 2달만에 아이디어를 받고 실행에 옮겼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때부터 모순은 이어진다. 이 회장은 해운업 구조조정 실패 얘기를 꺼낸다.
“지난 4~5년 전 한진해운-현대상선의 동반부실화가 있었다. 큰 호황 뒤 불황이 오며 해운업이 다 망할 지경이었는데 잘못 처리해서 비용은 엄청 들고 많은 노력 끝에 가까스로 과거 현대상선이 정상화의 길로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해운업이 양사가 있었을 때의 시장점유율을 못따라가고 있다. 몇년 더 있어야 한다. 그 교훈을 살려서 대한민국 항공운송업이 발전하고 세계에서 중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점유율을 더 높이기 위해 한 개 회사에 집착할 게 아니라 2개 회사를 어떻게 합병해서 능력 있는 훌륭한 회사 만들 건지 정말 열심히 고민해야 할 때다.”
4~5년 전에 이미 교훈이 있었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을 실사한 기간만 1년반이 넘는다. 그동안 저런 고민을 하지 않았고, 최근 두달 전에 갑자기 떠올랐다는 걸로 해석이 된다. 물론 두달전부터 열심히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가 두 항공사를 합치는 것뿐으로 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교훈 역시 두 곳 중 하나를 파산시켜서 하나만 남은 게 문제라는 것이다.
4.“강(성부) 대표는 사모펀드 대표다. 자기 돈은 0원이다. 남의 돈 가지고 한다. 이 부분에서 책임을 물 것이냐. 지분 6% 가진 조원태 회장이 문제라면 0원 가진 강성부 펀드는 또 문제가 아닌가. 양쪽 다 문제다.”
이 발언은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의 문제점과 직접적으로 연관됐다기 보단 자본시장, 더 좁히면 사모투자펀드(PEF)에 대한 이동걸 회장의 인식을 보여준다.
3자연합의 가장 큰 폐착은 한진칼 최대주주이면서도 이사회에 진출하지 못한 거다. 그걸 차치하더라도 이 회장의 코멘트는 남의 돈으로 움직이는 펀드는 경영 주체가 될 수 없다고 얘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현재 한국 자본시장에서 수많은 기업들의 경영권을 쥐고 있는 PEF도 부정되는 것인가? PEF의 운영사(GP)는 남의 돈을 가지고 운영하지만 이들을 대신해 투자회사에 대한 의사결정을 할 법적인 권한을 위임받았다. 엄연히 자본시장법에서 규정된 법적인 플레이어와 지위 자체를 부정하는 모양새다.
이 회장의 논리대로라면 KDB금융그룹 산하의 KDB인베스트먼트는 자기 돈으로 하니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돈도 정체성을 확장시키면 자기 돈이라고 부를 수 있을진 모르겠다.
이에 대한 KCGI 측 입장은 다음과 같다.
“KCGI는 운용하는 펀드에 무한책임사원으로 출자하고 있습니다. 펀드매니저로서 저희가 투자자를 위해 느끼는 엄중한 관리책임(Fiduciary Duty)은 국책은행 임직원들께서 국민의 세금을 관리하는 무게보다 결코 작지 않습니다. 현재도 금융시장에서 선량한 관리자의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투자자의 자금을 관리하는 은행, 보험, 증권 등 국내외 금융인들을 폄하하는 인식이 매우 아쉬울 따름입니다.”
5. “제발 쓸데없이 종사자 불안 야기하는 주장은 언론에서 삼가주시길 바란다. 이런 쓸데없는 불안 조성이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된다. 신문기사에 그런 쓸데없는 불안조성이 종사자, 그 가족은 밤잠 설치게 한다.” “제발 정치적 색안경을 끼고 이 문제 바라보지 말아달라.” “객관적 냉정한 판단해서 비판할 걸 비판해달라.”
지금부턴 기자로서 국책은행 수장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다.
이동걸 회장은 김석동 사외이사와 관련된 부분에서 보도한 매체들에 대해 “명예훼손에 관한 것인 만큼 법률적 조치가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회장은 조원태 회장과 강성부 대표를 비교하면서 ‘사인(私人)’ 조원태는 만나지 않고 한진칼 대표로서만 만났다고 했다. 그렇다면 명예훼손 대상은 ‘사인 이동걸’인지, 산업은행 대표인지 궁금하다. 만약 ‘사인’에 해당하는 거라면 법률적 조치라는 단어를 공식 기자간담회에서 꺼낸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객관적, 냉정한 판단해서 비판할 걸 비판해달라”고 했다. 이 회장에게 있어 비판할 만한 사안은 무엇인가. 앞서 종사자들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발언을 했는데, 그 종사자들과 노조, 그리고 시민들이 구조조정은 정말 없는 것인지, 재벌에 대한 특혜는 아닌지, 누가 이 딜에 관여했는지 등등을 궁금해 한다.
정치적 해석을 하지 말라고 한다. 한국 금융업이 규제 산업이라는 점에서 민간 금융지주사 회장들의 말과 행동도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국책은행이자 산업과 기업의 구조조정 키를 쥐고 있는 산업은행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시장에서 산업은행의 결정은 그 무엇보다 정치적 고민의 산물인데 이를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입을 다물고 있으라는 얘기다.
언론은 종사자들에게 쓸데없는 불안을 조성하지 말라고 하는데 산업은행 스스로 그 ‘쓸데없는’ 불안을 조성한 적은 없는지 묻고 싶다. 아무리 두 항공사 합병의 대의가 좋다한들 이 회장의 말대로 언론에게 쓸데있는 걸 쓰고 비판할 걸 비판하라는 식이면 이는 또 다른식의 언론 통제가 아닌지 되묻고 싶다.
이동걸 회장은 간담회를 마치면서 “앞으로도 저희가 여러가지 기회 만들어서 여러분과 접촉하며 추가 질문이나 필요사항에 대해 설명하겠다”고 했다. ‘쓸데없는 걸 묻고 비판할 것도 아닌 걸 묻는’ 기자들에게 재갈을 물릴 기자간담회를 또 열 필요가 있나 싶다. 이 와중에 명예훼손에 걸릴 게 없는지 되짚어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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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11월 20일 16:2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