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채권발행 등 올해 IB업계에서도 관련 규모 커질 듯
다만 구체적 방안 미흡하다는 지적도‧‧‧"저변 넓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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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가에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 움직임이 불고 있다. 지난해부터 SK그룹을 비롯한 여러 기업들이 너도 나도 ESG 원칙을 내세우자 증권사 투자은행(IB)업계도 이에 발맞추는 모양새다. 다만 ESG 자체가 투자 수익률 등의 ‘정량’보다는 ‘정성’ 평가에 가까워 결국 보여주기식 구호에 그치는 게 아니겠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 4일 증권사 수장들은 일제히 신년사를 발표했다. 고객 보호, 디지털 등 예년과 비슷한 키워드들이 주를 이뤘지만 이 가운데 눈에 띄는 항목은 ESG였다. 구체적인 방안까지 담기지는 않았지만 지난해 신년사와 달리 증권사 수장들이 직접 ESG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박정림‧김성현 KB증권 각자 대표 및 최석종 KTB투자증권 사장, 최현만 미래에셋대우 수석부회장 등은 모두 신년사에서 ESG 가치를 강조하는 목소리를 냈다.
SK, GS, 삼성 등 대기업들이 정부 및 기관투자자의 주문에 발맞춰 ESG 원칙을 강조하면서 증권사들도 자연스레 분위기를 따라가는 모양새다. 그동안 기관투자자들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꾸준히 강조해왔다. 이를 위해 ESG 관련 지표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국내 기업들이 관련 정책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을 주요 고객으로 두는 증권사의 기업금융 부문 역시 ESG에 관련한 기업들의 요구 사항을 주의 깊게 따라야할 필요성이 많아지는 셈이다.
현재까지 증권사들이 가장 활발히 투자은행(IB) 부문에서 도입하는 ESG 분야는 채권 발행이다. 올해 초부터 롯데글로벌로지스, 현대오일뱅크, 현대제철 등이 새롭게 ESG 채권 발행 대열에 동참하는 등 규모가 늘고 있다. 민간 기업 기준 지난해 1600억원 수준에서 올해 초에만 5800억원으로 두 배를 훌쩍 웃돌았다.
증권사 중에서는 KB증권, SK증권 등이 ESG 도입에 가장 활발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KB증권은 전통적인 ‘채권자본시장(DCM) 강자’로 꼽히는 만큼 ESG 채권 발행 실적도 좋다. 지난해 TSK코퍼레이션의 그린본드(1100억원), 롯데지주 지속가능본드(500억원)에 이어 올해 현대오일뱅크와 현대제철의 ESG 채권 발행도 주관을 맡았다. SK증권 역시 작년 신한카드, KB국민카드, KB금융지주 등 금융사들의 ESG 채권 발행을 도우며 꾸준히 실적을 쌓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 증권업계에서는 ESG 도입이 채권 발행에 국한된 만큼 다양한 아이디어를 통해 ESG 저변을 넓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단 DCM뿐 아니라, 기업공개(IPO), 대체투자 등 다양한 IB 비즈니스에 ESG가 구체적으로 녹아들지 않는다면 단순히 ‘보여주기식’ 성과 집계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ESG는 가치 추구 차원에서 방향 전환의 문제인 만큼 대기업처럼 오너가 확실히 끌고 가는 것이 효율적인데, 그에 비해 국내 증권사들 중에는 오너 경영 체제가 많지 않아 (해당 체계 도입이) 좀 더딘 면이 있다”라며 “자칫하면 연말 성과평가에서 ESG가 단순 집계를 위한 기준으로 전락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물론 투자수익률을 기준으로 내부 경쟁이 치열한 증권사 IB 영역 특성상,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담보되지 않는 한 단순히 사회적 가치만을 이유로 ESG를 도입하기는 쉽지 않다. 적어도 초기에는 동일한 수익률이라도 질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하는데, 절대적인 수익률을 쫓는 IB업계의 본질과 어긋날 수 있기 때문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최근 증권업계 트렌드를 보면, 석탄 화력 발전소보다는 태양광이나 그린 에너지 등에 투자하는 등 소극적 의미의 ESG 사례 정도가 나온다”라며 “이보다는 실제 IB 비즈니스에 ESG 컨셉이 실질적으로 정착되는 깊이 있는 방안이 나와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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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01월 08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