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등 ESG 평가 배점 늘려
대기업 제휴·투자관리에도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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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PEF)들이 ESG(환경·사회적책임·지배구조) 강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출자자(LP)들이 ESG를 중시하고 있어 이를 도외시한 운용사는 자금 모집이 어렵고 투자 기회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ESG를 접목한 포트폴리오의 가치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높아질 가능성이 크고 회수에도 유리하다. 당장 추가 비용을 들더라도 돌아올 과실이 더 큰 만큼 PEF들은 ESG 투자 행보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IMM PE는 이달 유엔책임투자원칙(UN PRI)에 가입하며 ESG 투자·경영 활동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PwC컨설팅과 안진회계법인을 파트너로 삼아 투자 검토, 실사, 기업 개선 등에 ESG를 접목시키기로 했다. MBK파트너스는 2012년 국내 운용사 중 처음으로 UN PRI에 서명했고, 이후 내부 기준을 만들어 ESG 투자를 집행해왔다.
스틱인베스트먼트는 회계법인을 통해 ESG 컨설팅을 받았고, 투자활동 전 과정에 ESG를 도입할 계획이다. 글랜우드PE, 프랙시스캐피탈 등 운용사들도 ESG 투자에 힘을 싣고 있다. 과거의 투자 활동들도 따지고 보면 ESG와 연결돼 있었다는 것을 부각시키는 분위기다. 또 KTB PE는 최근 소스 제조업체 맛죤식품을 인수하며 ESG 실사를 진행했다. 실제 실사로 이뤄진 드문 사례인데 거래 규모가 수백억원에 불과하고 LP들의 요구가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실사를 진행하고 개선점을 찾았다. 공정 중 발생하는 폐수를 위탁 처리했었지만 자체적인 처리 시설을 갖추기로 했고, 오너 위주의 의사 결정 구조도 전문 경영진 체제로 개선하기로 했다. 앞으로도 경영권 거래에선 ESG 실사를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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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운용사들이 ESG에 열을 올리는 가장 큰 이유는 LP들의 눈에 들기 위해서다. 국민연금은 2년 안에 ESG 반영 자산 비중을 50%까지 늘리기로 했다. PEF 출자사업 제안서 양식에 ESG를 넣지는 않았지만 평가 때는 중요하게 살필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 교직원공제회 등 큰손들도 ESG 기준, 실천 사례 등을 살피기로 했다. IMM PE가 밝힌 대로 ESG는 ‘공적 자금을 운용하는 투자사의 책임’이 됐다.
금융사들도 최근 ESG 행보에 분주하다. 너도나도 ESG 관련 채권을 찍고 있는데, 이 돈은 결국 ESG에 써야 한다. 펀드 출자든 대여든 ESG를 앞세운 운용사들에 먼저 시선이 갈 가능성이 크다. 운용사들은 기관 출자를 받고, 투자 자금을 모으려면 ESG를 부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포트폴리오 관리에서도 마찬가지다. PEF가 ESG를 고려하지 않고 투자한 기업에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 논란이 불거지고 운용사의 평판 위험은 커질 수 있다.
한 ESG 평가사 임원은 “국민연금 등 주요 기관들이 ESG 평가 배점을 늘리고 있다”며 “운용사들은 출자를 받기 위해 발 빠르게 ESG 스토리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대기업들은 대부분 ESG 경영에 힘을 쏟고 있다. SK그룹은 계열사들에 ESG 전담 조직을 신설했고, 주요 그룹들은 탄소 중립 계획을 내놓고 있다. 이런 흐름에선 운용사들은 ESG를 부각시키지 않고선 투자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SK건설은 해외 ESG 투자를 위해 PEF 결성을 추진 중이고, LG화학은 IMM크레딧솔루션과 함께 ESG 유망기업 육성 펀드를 결성하기로 했다.
ESG는 투자 기업의 회수 가치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일반 건설사보다 ‘친환경 솔루션 기업’으로 포장하는 편이 시장의 평가가 후하다. 세계적으로 일반 채권보다 ESG 관련 채권의 투자 열기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ESG 강화에 비용이 들더라도, 돌아오는 것이 크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스틱인베스트먼트는 유지 제조업체 대경오앤티를 바이오에너지 기업으로 탈바꿈시켜 매물로 내놨다. IMM PE는 대한전선의 환경 시설 투자 등에 힘을 쏟았고, 2.2배의 투자 수익을 올렸다고 밝혔다. 앞서 맛죤식품 ESG 실사도 필수는 아니었지만, 경영 방향을 설정하고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 하에 진행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ESG 투자를 장려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친환경이 부각된 기업은 투자자들의 관심도 높다”며 “아직 기관들의 ESG 압박이 크지는 않지만 운용사들은 장기적인 수익률 때문에라도 ESG에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사모펀드 시장에 ESG 투자 문화가 자리잡기까진 시간이 더 필요할 전망이다. ESG 평가 방법론은 아직 추상적이다. 당분간은 ‘ESG 투자 기준이 있느냐’를 중시할 가능성이 크다 보니 대형사들은 구색이라도 맞추려 한다. 소형사들은 아직 ESG의 필요성을 크게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출자 시 ESG 평가 항목을 더하겠다면서도 그 효과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선을 보이는 출자자도 없지 않다. 과도한 ESG 압박은 투자를 제약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한 기관출자자 관계자는 “내부에서도 ESG의 중요성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평가 방법론은 추상적이라 운용사가 ESG 규정을 갖추고 있느냐를 많이 보게 될 것”이라며 “ESG 투자 기준을 만들면 만들수록 투자를 제약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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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05월 13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