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해 직접 제휴는 어려워…11번가 활용해야
FI 투자 기업가치가 마지노…4조원 이상 전망하기도
결국 11번가 사업성 개선이 핵심…실적은 아직 횡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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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의 자회사 11번가와 아마존의 협력 구도에 관심이 모아진다. 자사주를 거의 소각한 SK텔레콤으로선 아마존과 직접 지분을 섞을 카드가 마땅치 않고, 결국 11번가의 지분을 활용해야 한다. 11번가는 2018년 외부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마지노선이 생겼다. SK텔레콤과 아마존과 지분관계를 맺고, FI의 투자 회수도 지원하려면 11번가의 사업성 개선이 중요해진 상황이다.
10일 SK텔레콤은 SK텔레콤(존속)-SKT신설투자(신설, 가칭) 인적분할 안을 결의했다. 신설 회사는 11번가, ADT캡스 등의 경쟁력을 높이고 통신회사는 AI(인공지능) 기술로 구독(Subscription) 등 신규 사업을 적극 확장하기로 했다. SK텔레콤은 오래 전부터 아마존과 협력을 꾀했는데 이커머스, 동영상 플랫폼 등에서 제휴하면 통신사와 투자사 모두 상승 효과를 낼 수 있다. 회사는 최근 이베이코리아 본입찰엔 불참했다.
SK텔레콤으로선 아마존을 확실한 우군으로 만들 수단이 필요한데 직접 지분 관계를 맺긴 어렵다. 회사는 지난달 발행주식 총수의 10.8%, 시장가 2조6000억원에 달하는 자사주를 소각했다. 아마존에 자사주를 쥐어주는 방식으로 제휴를 맺을 수는 없다.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해 자사주를 소각했는데, 아마존에 신주를 발행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다.
결국 유력한 자회사를 활용해야 하는데 11번가가 가장 중요한 키를 쥐고 있다. SK텔레콤은 작년 11월 아마존과 이커머스 사업 협력을 추진 중이며, 아마존이 11번가 지분 참여 약정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올해 인적분할 계획 확정으로 11번가 등의 기업가치 제고 및 상장(IPO)이 화두로 떠올랐다. 최근엔 아마존이 신주인수권을 활용해 11번가 지분을 인수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이를 위해 조만간 미국행에 오를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SK텔레콤은 아마존과 11번가 지분양수도 관련 협의는 하고 있지 않으며, 11번가 내 아마존 상품을 직접 구매할 수 있는 서비스를 런칭하기 위해 협력 중이라고 밝혔다.
어찌됐든 궁극적으론 SK텔레콤이 아마존과의 제휴에 11번가의 주식을 쓰게 될 가능성이 큰데, 회사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고 얼마를 투자하게 될 것이냐 하는 문제는 남는다. 여기엔 FI의 존재도 고려해야 한다.
11번가는 2018년 사모펀드(PEF) H&Q로부터 5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H&Q의 지분율(우선주)은 18.18%인데 이를 감안한 11번가의 기업가치는 약 2조7000억원이다. SK텔레콤은 11번가가 상장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3.5%의 최소 수익률을 보장해줬다. 지금까지 3년간 최소 수익률이 얹어졌다고 가정하면 기업가치가 3조원에 달한다. 11번가는 2023년까지 상장을 목표로 하는데, 그 때는 눈높이가 더 높아진다.
11번가로선 기존 투자자가 있는데 그보다 낮은 기업가치에 새로운 주주를 영입할 수는 없다. 아마존이 11번가에 들어오기 위한 마지노선이 설정돼 있는 셈이다. SK그룹에서 바라는 11번가 기업가치는 적어도 4조원 이상일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SK텔레콤은 자사주를 소각했기 때문에 아마존을 잡으려면 11번가를 활용할 필요성이 크지만 기업가치를 어느 정도로 매겨 얼마나 투자받을지는 미지수”라며 “기존 투자자들보다는 비싼 기업가치를 매겨야 하는데 그룹에선 11번가 기업가치를 4조원까지도 희망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SK텔레콤은 지금 당장 아마존의 11번가 투자가 이뤄질 가능성은 없다고 보고 있다. 다만 앞으로 11번가의 기업공개(IPO)나 사업 성과에 따른 조건을 충족하면 아마존의 지분 투자가 들어오는 구조란 입장이다.
결국 11번가의 사업 성과가 개선되고 기업가치를 높이는 것이 중요 과제다. 아마존과의 사업 제휴가 잘 돼야 11번가의 가치가 오르겠지만, SK텔레콤이 11번가의 투자 가치를 입증해야 하는 면도 있다. 아마존의 협상 전략이 워낙 깐깐하다 보니 최종 지분 투자까지 난관이 적지 않을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11번가는 2018년 9월 SK플래닛으로부터 인적분할돼 설립됐다. 네이버와 쿠팡, 이베이코리아 등에 이은 이커머스 4위권 업체로 평가 받는다. 첫 연간 실적이 나온 2019년 매출 5304억원, 영업이익 14억원을 올렸는데 작년엔 매출 5455억원, 영업손실 97억원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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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06월 11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