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위탁생산이 투자조건…협력사 임상실패로 '빨간불'
"사실상 논의 멈춘 단계"...롯데, 바이오 진출 장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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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롯데그룹이 바이오 사업 진출을 두고 장고를 이어가고 있다. 바이오벤처기업 엔지켐생명과학과 조인트벤처(JV) 설립 등을 논의해왔지만 최근 진행에 차질을 빚으며 관련 논의가 보류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거래는 성사 시 롯데의 첫 바이오 진출이란 점에서 주목 받아왔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엔지켐생명과학(엔지켐) 지분 인수 및 조인트벤처(JV) 설립 등을 검토해왔으나 최근 관련 협의를 사실상 중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 내에선 거래가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는 분위기다.
이번 M&A는 롯데그룹의 설립 이래 최초의 바이오 사업 진출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신동빈 회장은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바이오 사업 진출을 위해 투자처를 꾸준히 탐색해왔다. 올초 엔지켐이 유력한 파트너로 낙점, 롯데지주이 주체가 돼 관련 논의를 이어왔다.
엔지켐은 1999년 설립돼 2018년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업체다. 합성신약을 연구개발하는 업체로 주력 수출품목인 항결핵제는 세계 2위 시장 점유율을 갖췄다.
롯데는 이 업체의 최대주주인 손기영 회장 등 특수관계인 보유지분 일부 매입, 제3자 배정 방식 유상증자 참여로 지분을 확보하는 안을 검토해 왔다. 여기에 JV 설립까지 총 투자금만 1500억원 내외 수준으로 전해졌다. 거래조건은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혔으나 양사 간에 거래완결까지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는 투자 선행조건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내부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신동빈 회장은 당초 엔지켐에 투자조건으로 백신 위탁생산(CMO) 수주를 요구, 진행상황에 따라 인수를 진행할 계획을 전달했다.
이에 엔지켐은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선 정관을 개정해 위탁생산업 등을 사업목적에 새로 추가, 4월엔 세계적 백신 전문가인 세실 체르킨스킨을 극비영입하는 등 적극적으로 의지를 드러냈다. 5월 메신저리보핵산(mRNA)백신 위탁생산 사업 진출을 선언, 글로벌 제약개발사인 큐어백과 CMO 계약도 추진해았다.
투자조건과 연관돼 있는 만큼 큐어백이 개발한 mRNA 기반 코로나 백신 임상 통과는 엔지켐에도 반드시 성사돼야 하는 과제 중 하나였다. 하지만 큐어백은 최근 '낙제점'에 가까운 임상 결과를 받으며 임상종결점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뉴욕타임즈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큐어백 백신 임상 3상 결과, 예방 효과는 48%로 백신 허가 최소 기준인 50%를 넘기는 데 실패했다.
위탁생산에 차질이 생기면서 롯데와의 M&A 논의도 쉽지 않아졌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선 양사 간 거래가 무산될 가능성도 꽤 크다고 보고 있다.
롯데그룹으로선 바이오 사업 첫 진출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다. 업종 특성상 불확실성이 높다보니 사업성을 장담할 수 없는 바이오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결단하기 쉽지 않다. 이에 첫 바이오 투자처를 둔 장고도 계속되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바이오 사업은 신동빈 회장이 낙점한 미래 먹거리다. 삼성·SK·LG그룹 등 주요 그룹사들은 바이오 사업에 이미 뛰어들어 성과를 내고 있고, 기존 사업은 부진한 상황에서 언제까지 신사업 진출을 미룰 수만도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롯데에서도 이번 M&A는 반전의 계기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지금보다 상황이 진전되지 않으면 이번 M&A는 무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그룹 내에선 이번 M&A가 '바이오 사업 첫 진출'의 의미는 아니라고 보는 입장이다. 관계자는 "엔지켐생명과학과 상반기부터 JV 설립 및 출자 방안을 논의해온 것은 맞지만 아직 진행상황이 확정된 단계는 아니며, 본격적인 그룹의 첫 진출이라 보긴 어렵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