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신세계·카카오도 바이오 투자처 물색중
적자여도 '바이오' 달면 기업가치 수직상승하나
인수후 그룹재무 악영향 우려…M&A 장고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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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재계가 신사업 확장으로 또다시 바이오 카드를 꺼내고 있다. 과거 진출했던 경험이 있지만 사업 실패로 철수하며 '쓴 맛'을 본 기업들은 물론 거리가 멀어보이는 IT 공룡들도 물밑에서 투자처 물색에 한창이란 얘기가 들려온다. 주가를 단번에 끌어올릴 수 있는 '효자사업'이지만 그룹재무 타격, 불투명한 시너지 창출, 장담할 수 없는 투자금 회수 등의 우려가 있다보니 관련 M&A 성사나 투자 결정은 쉽사리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금까진 삼성과 SK가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삼성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 SK는 SK바이오팜과 SK바이오사이언스를 통해 구체적 성과를 내왔다.
여기에 GS와 CJ, 한화 등도 M&A 카드를 꺼내며 바이오 진출을 알렸다.
GS그룹은 현재 국내 1위 보톡스 업체 휴젤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국내외 사모펀드(PEF) 운용사들과 4자 컨소시엄을 구성해 거래규모 2조원에 인수를 타진 중이다. GS는 그동안 GS칼텍스와 GS에너지를 주력 계열사로 내걸어왔지만 정유업종의 성장성이 약해지면서 바이오를 신사업으로 낙점했다.
CJ그룹도 지난달 바이오 기업 천랩 지분 44%를 983억원에 확보, 마이크로바이옴 분석 기술 기반으로 본격적인 신약개발에 나설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CJ의 바이오헬스케어 사업은 2018년 CJ헬스케어(현 HK이노엔) 매각 이후 3년 만이다. 매각 당시 의약품 사업에선 손을 떼겠단 의도로 풀이됐지만 "결국 익숙한 바이오로 돌아왔다"는 평이 나온다. CJ제일제당은 여기에 건강사업을 별도 독립조직(CIC)으로 구성해 분사도 검토하는 걸로 알려진다.
한화그룹은 지난 6월 오너일가 기업을 통해 간접적으로 시장에 재진출하려는 모습이 포착됐다. 한화는 신라젠 경영권 지분을 인수한 기업 엠투엔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엠투엔은 해외 파트너들과 함께 코로나 치료제 등 신약을 개발중인 곳으로, 한화의 김승연 회장과 처남 관계인 서홍민 회장이 대주주로 있어 사실상 범한화 기업으로 인식된다.
한화는 지난 2019년 헬스케어 업체 유비케어 인수 불발 이후로도 꾸준히 투자처를 물색해 왔다. 바이오 애널리스트들을 초빙해 계열사 주요 임원들이 스터디, 그룹 차원에서 공식 진출도 오랜 기간 검토해왔다. 김승연 회장은 경영진 회의에서 "미래 성장을 담보할 바이오 사업에 전력을 다할 것"이라 밝혔을 정도로 바이오에 대한 열의가 남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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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가 너나 할것없이 신사업으로 바이오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이오 기업에 대한 주식시장 기대감이 높은 만큼 자연스럽게 유동성이 몰리다보니 기업들도 투자를 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룹 오너 입장에서 바이오는 주가를 단번에 끌어올릴 수 있는 '효자'로 인식된다.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더라도 성장성에 기대 기업가치를 수직상승시킬 수 있는 마법이 바이오 시장에선 꽤 빈번하게 발생한다. 실제로 삼성바이오로직스와 SK바이오사이언스가 코로나 백신 생산 기대감을 키우며 상한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한번 시스템을 잘 구축해놓으면 꾸준히 현금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도 바이오 투자의 매력요소다. 이렇다 보니 각기 사업목적이 다르더라도 웬만한 그룹사들은 한번쯤 바이오 투자를 검토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현재 진행중인 휴젤 매각전은 이같은 상황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다. 삼성·SK에 이어 LG·신세계 등 주요 대기업들이 잇따라 인수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바이오 시장 진출에 대한 재계의 높은 관심도가 드러나는 대목으로 풀이됐다.
문제는 진출을 검토하는 사업자는 많은데 실제 확신을 갖고 뛰어들어 M&A를 단행하거나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는 기업들은 잘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세계는 당초 휴젤 인수를 진지하게 검토했지만 자사와의 시너지는 불투명하다고 최종 결론, 인수전에서 발을 뺐다. 그룹 CVC 조직인 시그나이트파트너스를 통한 벤처투자로 가닥 잡힌 분위기로 전해진다.
롯데지주는 올초부터 합성신약 개발기업 엔지켐생명과학(엔지켐)과 조인트벤처(JV) 설립 및 출자 방안을 논의해왔다. 롯데제약 철수 이후 10년 만의 바이오 사업 진출이란 점에서 시장 기대감을 키웠지만 최근 양사 간 관련협의는 무산 위기에 이르렀다.
내부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신동빈 회장은 당초 엔지켐에 투자조건으로 백신 위탁생산(CMO) 수주를 요구, 진행상황에 따라 인수를 진행할 계획을 전달했다. 그러나 엔지켐의 위탁생산 과정에 차질이 생기면서 롯데 내부서 논의를 무산시키려는 시각이 최근 우세해졌다.
주력업종인 유통사업이 경쟁사 사이에서 이렇다 할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바이오는 반전을 가져다 줄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성공이 확실하게 보장되는게 아니라면 뛰어들기 어렵다는 점이 롯데를 비롯한 대기업의 장고 이유가 되고 있다. 업계는 이에 대해 "확실한 게 아니면 섣불리 발을 들이지 않으려는 대기업의 보수적인 스타일이 반영된 것"이란 평가를 내놓는다.
인수 이후 연결기준 실적 타격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크다는 분석이다. 바이오에 정통한 투자사 고위 관계자는 "바이오 벤처기업 대부분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어 대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하기엔 확보한 지분만큼 연결된 실적이 그룹 전반의 재무구조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많은 상황"이라 전했다.
바이오 진출을 두고 유독 잔혹사가 두드러졌다는 점도 함께 언급된다. 삼성만 해도 바이오 사업을 경영권 승계에 활용하려 했다는 의혹, 분식회계 논란과 이에 따른 검찰의 압수수색과 경영진에 대한 기소,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폐지 위기 등 이미 익히 알려진 일들이 많았다.
그룹 이미지를 실추시킬 수 있는 이 모든 리스크를 감수하고 시장에 진출하더라도 수년간의 시간과 천문학적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 바이오시밀러는 평균 6년의 개발기간과 2000억원 이상의 비용을 필요로 하고, 신약 개발은 여기에 두 배 이상의 시간과 10배의 비용이 더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규모 자금을 장기간 투입시킬 수 있는 그룹도 삼성, SK 정도라고 다른 기업들 사이에선 푸념아닌 푸념이 나온다.
모든 관문을 통과하더라도 기술수출 난항, 허가 지연 등 예상 못할 변수를 감안해야 한다. 여기에 투자금 회수마저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은 가장 우려를 키우는 지점이다.
실제로 다수 기업들이 같은 이유들로 바이오 사업에서 '쓴맛'을 본 경험이 있다. 유독 실패사례가 많다보니 제약바이오 사업은 '대기업의 무덤'이란 얘기도 많다.
롯데는 GMP(의약품 제조·품질 관리 기준) 의무화 등의 '규제 장벽'을 이기지 못했고, CJ는 '저조한 수익률'과 '불법 리베이트 제공 혐의' 등의 악재로 33년간 이어온 사업부를 매각했다. 한화는 바이오시밀러 개발까지 마쳤음에도 '소홀한 임상 검증'으로 허가가 보류, 출시 기회를 놓치면서 점진적 철수 수순을 밟았다.
한 관계자는 "삼성과 SK와는 다르게 대부분의 기업들은 신약개발 등을 위한 공장 설비 제반을 갖추지 못했고,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하는데 그만큼 돈을 쏟아부을 확신은 없는 것"이라며 "바이오 투자가 일종의 '독이 든 성배'와 같다 보니 오너들도 사업성을 장담할 수 없는 바이오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결단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 지적했다.
이런 전례가 있다보니 바이오 투자자들 사이에선 전통 대기업이 아닌 새로운 사업자의 출현을 기다리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카카오와 네이버 등 IT 공룡들의 등판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들은 확실한 자본력과 신사업 확장역량에 대한 신뢰, 활용 가능한 데이터 보유 등의 이점을 갖췄다.
IB업계에 따르면 카카오는 올초부터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모 바이오 업체의 지분 10% 수준 확보를 논의해온 것으로 파악된다. 최종 사인만 남은 상태였지만 이 업체와의 논의는 결국 무산으로 가닥잡혔다. 다만 카카오의 김범수 의장의 바이오 시장 진출 의욕이 남다르단 얘기가 많은 만큼 추후 이들 IT기업의 참전 여부도 새로운 관전거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