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용업계 “펀드 순자산까지 조작하며 풀베팅하는 사모운용사도 있어”
공모주 흥행 실패할 경우, 풀베팅한 사모펀드 디폴트 이슈 발생 우려
“10%라도 증거금 내야” 2007년 폐지된 기관청약증거금제 부활 필요성도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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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기관수요예측에서 펀드 가용자금만큼 청약을 넣는 원칙을 지키면 '바보' 소리를 듣습니다. 고액자산가들이 사모운용사를 통해 공모주펀드를 만들어 공모주 물량을 대량으로 확보하고 소액 개인투자자들은 공모주를 정당하게 배정받지 못하고 있는 '기울어진 운동장' 현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최근 공모주 시장에서는 일부 고액자산가와 소규모 전문사모펀드운용사가 손을 잡고 공모주 물량을 받는 ‘꼼수’ 청약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공모주를 한 주라도 더 받기 위해 위법한 수단까지 동원되고 있어 기관의 공모주 청약시장에 대한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라임∙옵티머스 사태에도 불구, 전문사모운용사 설립은 꾸준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금융감독원에 등록한 전문사모운용사는 ▲2018년 169개 ▲2019년 217개 ▲2020년 251개 ▲2021년 1분기 255개로 증가하고 있다.
이들의 알짜 수입원은 ‘공모주’다. 7월 말부터 사모펀드 최초 투자액이 1억원에서 3억원으로 상향됐지만 이로 인해 투자자들이 줄어드는 효과는 미미하다. 사모펀드 운용사 설립 컨설팅 업체 관계자는 “고액자산가들의 투자수단으로 사모펀드가 뜨고 있기 때문에 라임∙옵티머스 사태 이후에도 꾸준히 수요가 있다”며 “고액자산가의 투자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1억원에서 3억원으로 높여도 사실 크게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기관투자자는 공모주 청약시, 개인투자자와 달리 배정물량이 많고 펀드에 따라서 우선배정도 받을 수 있다. 업계에 따르면 이러한 이점을 활용해 고액자산가들이 사모펀드를 설정해 기관으로 둔갑한 후, 공모주 배정에서 우위를 점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펀드의 가용자산 범위 안에서 청약을 해야 하는게 원칙이지만 하나도 안 지켜지고 있다”며 “많은 사모운용사들이 무조건 많이 받으려고 운용사 순자산 규모로 풀베팅하거나 심지어 운용규모를 조작해 청약을 넣는 곳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공모주 우선배정을 받는 코스닥벤처펀드를 운용하는 사모운용사 가운데 상당수가 불법적인 방식의 청약을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이로 인해 기관 청약 규칙을 준수하는 운용사들은 피해를 보고 있다고 호소했다.
공모주펀드를 운용하는 한 운용사 관계자는 “사모운용사의 ‘꼼수’ 청약이 늘다보니 최근 공모주 배정 물량이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며 “증권사 판매상품팀이나 투자자로부터 운용규모에 비해 공모주 물량이 과도하게 적다는 지적까지 듣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7월부터 기관 공모주 배정과정에서 공모펀드를 우대하고 순자산 규모에 따라 받을 수 있도록 별도의 공모주 배정 기준을 도입했다. 아울러 지난 6월에는 전문사모운용사 대표들에게 ‘공모주 펀드 운용 관련 유의사항 안내’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사모펀드를 통해 편법으로 공모주 물량을 가져가는 투자자가 적지 않음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위법한 투자관행이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 개선 이후 진행된 카카오뱅크의 경우, 공모운용사는 순자산가치 대비 0.1%~0.2% 가량 배정을 받았지만 사모운용사는 2~3% 가량 배정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카카오뱅크의 수요예측에 몰린 자금은 약 2700조원이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금융감독원에서도 문제를 인지하고 조사하고 있는데 최근 청약시장을 보면 분위기는 여전하다”고 말했다.
주관사들도 일부 사모운용사들이 펀드 가용자산보다 과도하게 청약하는 ‘뻥튀기 청약’인 것을 알지만 청약 흥행을 위해 눈 감아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다른 운용사 관계자는 “이번 카카오뱅크 기관 청약할 때도 100조원 규모로 청약을 넣은 곳이 굉장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주관사에서 일부 걸러냈다고 하지만 IPO 시장에서 주관사의 재량이 크기 때문에 흥행을 위해서 눈을 감아주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꼼수’ 청약으로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음도 나온다.
최근 상장한 크래프톤처럼 낮은 청약율을 기록한 상장사에 일부 사모운용사가 ‘뻥튀기 청약’을 넣었다가 물량을 과도하게 많이 받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공모주를 하는 사모운용사는 운용전략이 공모주 하나 밖에 없어서 과배정에 대한 위험을 안고 운용 중”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2007년 폐지된 기관투자자 청약증거금제도를 부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개인투자자처럼 기관도 청약증거금을 내면 고유자산을 써내거나 자산규모를 조작해 많이 받으려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며 “청약금의 10%라도 내서 펀드 가용자금 중심으로 공모주 물량을 배정받는 원칙이 되살아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