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지배구조 재편에 IR 수요도 증가
대부분 비대면 설명회
대면 방식의‘소통’보단, 메시지 전달에 불과
궁금한 점 많은데…기업은 하고싶은 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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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의 사업 스토리를 써 내려가는 국내 대기업들은 서둘러 사업 및 지배구조의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작업은 투자자를 설득하고 친(親)기업 성향의 주주를 확보하는 일이다.
코로나 국면을 맞아 기업의 소비자·투자자와의 소통 방식은 크게 변화했다. ‘소통’에 방점이 찍힌대면 접촉을 통한 홍보와 투자설명회(IR)는 사라진 반면 뉴스룸·화상회의·컨퍼런스콜 등이 ‘메시지 전달’ 창구 역할을 대신한다.
다양한 투자자를 대상으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온라인 방식의 장점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기업과 투자자들 사이에서 보다 심도있는 논의와 이를 통한 상호보완적인 소통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그렇다보니 기업들이 정확한 수치에 근거한 뚜렷한 계획보단, 기업들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에만 집중하는 일방적인 태도가 늘고 있다는 투자자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기업들은 올해 들어 약 820건의 기업설명회를 개최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약 460건 대비 80%가량 늘어난 수치다. 코스닥 시장도 마찬가지로 지난해엔 약 380여건, 올해는 약 540건의 기업설명회가 개최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실적 발표, 분할과 합병, 주식병합, 사업의 전환 등 주요한 이벤트를 전후로 투자자 설명회를 갖는다. 나타난 실적과 예상되는 업황의 전망, 경영진의 주요 의사결정 등이 주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 기관투자가와 금융사, 외국인 투자자 및 이들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애널리스트 등이 그 대상이다.
올해 열린 대부분의 설명회는 '비대면 온라인' 방식이다. 과거엔 기업의 사업 부문별 실무진과 IR담당자들이 투자자들을 일일이 만나거나, 회의장에서 면담을 하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개별적인 미팅에선 기업의 탐방을 병행하며 ‘미공개 정보’의 선을 넘지 않는 수준의 정보 교류가 가능했다. 대화를 통해 나타나는 뉘앙스 및 피드백 등을 통해 기업은 투자자들의 요구와 필요한 정보를 캐치했고, 투자자들은 보다 세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온라인 설명회가 과거의 대면 접촉을 대신하고는 있지만, 기업과 투자자들의 접촉이 줄어든 만큼 전달 가능한 정보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다수의 투자자들 가운데는 실체를 특정할 수 없는 주체들도 포함돼 있기 때문에 제한적이고 공식적인 내용만을 전달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국내 한 상장사 IR 담당자는 “투자자들이 기업을 직접 찾아 실무진들을 만나며 회사의 상황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 것은 사실이다”며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가 모인 컨퍼런스콜에서 양질의 Q&A가 이뤄지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부분 기업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만 제한적으로 전달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투자자들이 온라인 IR을 통해 기업의 구체적인 계획과 전망을 읽어내는 것도 어렵다.
대면 접촉 가능한 상황에선 신뢰가 쌓인 투자자들에게 심도 있는 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다면, 다수의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IR에선 장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해 최대한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기업들의 성향이 짙어지고 있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근 금융지주회사들의 실적발표에선 향후 주주배당 규모를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늘릴지가 화두였다. 코로나 시대를 맞아 금융회사들의 실적은 급상승했고, 금융당국의 배당 규제도 완화할 분위기가 조성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궁금증이 상당히 컸다.
그러나 대부분 대형 금융지주회사들의 발표에선 배당 성향을 강화하겠단 ‘의지’만을 나타냈을 뿐 구체적인 금액과 기간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제시하지 못했단 지적을 받는다. 물론 금융당국의 규제에 섣부른 계획을 발표하긴 어렵다는 측면도 존재하지만, 삼성전자와 SK그룹 등 국내 대기업들이 “향후 영업현금흐름의 몇 % 수준의 배당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히는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는 평가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들의 경우엔 주주 분류를 세분화해 맞춤형 IR을 제공하기도 한다”며 “주주들에게 배당 정책, 자사주 매입과 같은 주주 친화 정책에 관해 구체적이고 예측 가능한 수준의 발표가 필요하지만 우리나라 기업들 상당수는 아직 이 같은 문화가 정착되진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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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소식을 전하는 뉴스룸 방식의 홍보 채널은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보편화하고 있다. 국내에선 삼성그룹이 원조격이다. 현재는 현대자동차, SK텔레콤, 대한항공 등 주요 기업들이 유사한 형태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최근엔 쿠팡, 무신사와 같은 유니콘 기업들도 이 같은 움직임에 합류했다.
뉴스룸 자체만 보면, 다수의 소비자와 투자자들에게 일원화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효과적인 홍보 수단이란 평가도 있다. 다만 과거에 투자자들이 애널리스트 보고서 또는 언론 등을 통해 다양한 객관적 사실과 기업에 대한 냉정한 의견과 평가를 접할 수 있었다면, 정보가 일원화하고 일부 통제된 현재와 같은 상황에선 투자자들의 판단에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단 지적도 나온다.
뉴스룸을 통해 제공되는 자료는 수차례 내부 검토를 거쳐 주주들이 민감해 할 만한 내용들을 걸러내고 정제한 내용만이 담겨있기 때문에 사실상 기업들이 전달하길 원하는 메시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삼성그룹은 최근 240조원의 역대 최대 규모의 투자계획을 발표했지만 투자자들은 여전히 구체적인 투자시점과 분야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 기업 분할과 합병 작업을 추진하고 있는 SK텔레콤과 셀트리온그룹 역시 그룹 차원의 발표 외에 주주 차원의 이해득실을 계산할 만한 근거들이 상당히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럴싸한 긍정적 메시지만 전달하다 보니 일부 대기업 오너들의 팬덤(Fandom)이 구축되는 현상도 발생한다.
IB 업계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주주친화정책의 일환 중 하나로 비대면 방식의 설명회를 늘리는 추세이긴 하지만 사실상 각 기업들의 비전 선포식에 가까운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며 “효과적인 메시지 전달도 중요하지만 투자자들이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명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도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