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 중심 M&A 지속…청사진 궁금한 LG '모빌리티 비전'
입력 2021.09.30 07:00
    취재노트
    LG전자 제조업 벗어나 SW 사업 확장 기대감
    사이벨럼 M&A 등 관련 투자 잇따르지만 초점은 '전장'
    제조업 한계 떠올리고 확장성 가로막는 이미지
    그룹 차원 모빌리티 청사진 구체적으로 밝혀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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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LG도 이제 소프트웨어(SW) 해야죠" 

      올 들어 LG그룹 투자 담당 관계자가 전한 말이다. 해당 발언을 재료로 시장의 여러 의견을 종합해보면 '결국 LG도 자율주행이나 모빌리티 데이터·서비스 사업으로 진출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연결됐다. 실제로 이를 뒷받침하는 듯한 거래가 줄지어 성사 중이다. 그러나 LG그룹의 모빌리티 비전 전체에 대한 청사진은 잘 그려지지 않는 모습이다.  

      LG전자는 지난 23일 약 1000만달러(한화 약 1300억원)에 이스라엘 자동차 보안업체 사이벨럼 경영권 지분 63.9%를 확보했다. 그룹 관계자가 예고했듯 SW에 강점이 있는 회사다. LG전자는 "미래 성장동력인 전장 사업 포트폴리오를 고도화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라고 인수 배경을 밝혔다. 

      방향성에 공감하지만 전장 사업에 포인트를 두는 것이 맞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자동차는 스마트폰에 이어 향후 수십년 동안 데이터가 집중적으로 누적 발생할 기계 장치로 꼽힌다. 이미 관련 업계에선 'SW가 정의하는 차(Software Defined Car)'라는 개념이 통용되고 있다. 애플마저 생소한 자동차 산업에 뛰어든 이유다. 관건은 IT기기 수준의 자동차를 만드는 것인데, 배터리(LG에너지솔루션)로 굴러가고 카메라(LG이노텍)로 정보를 수집하는 게 기본형이다. 모두 LG그룹이 보유한 사업이다. 

      LG가 SW를 한다는 말을 전해듣고 시장 관계자들이 기대감을 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배터리와 카메라 모듈 이외에 파워트레인·내외장재까지 관련 모빌리티 관련 포트폴리오를 두루 갖추고 있는 기업은 드물다. 그룹이 전장 사업으로 뱃머리를 튼 만큼 여기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수집·가공할 역량만 확보한다면 확장성이 전에 없이 커지는 구조다.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큰폭으로 주가가 뛴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대차는 수년간 지속적으로 모빌리티 서비스 사업으로 전환을 지속해왔다. 이를 뒷받침하는 거래가 앱티브·보스턴다이내믹스였고, SW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현대오토에버 중심 지배구조 개편까지 마쳤다. 시장 규모는 크나 수익성은 박한 완성차 제조업에서 벗어나 서비스형 모빌리티(MaaS) 사업으로 전환한다는 점에 시장이 주목했다. 

      연초 애플과 현대차그룹의 협업이 흐지부지되면서 LG그룹이 직접 전기차 시장에 진출하는 게 가능하다는 분석도 부상한 바 있다. 국내 주요 그룹사 전반이 모빌리티 기반 데이터 시장에 진출하는 만큼 LG그룹도 큰 그림을 그리고 있을 거란 시각이었다. 그러나 스마트폰 사업을 철수한 것과 애플카의 폭스콘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제외하면 LG그룹이 주도한 모빌리티 관련 거래는 시장에 그리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하고 있다. 

      시장에선 LG그룹의 역량 부족보다는 '전장'이란 포지셔닝 자체가 확장성을 가로막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LG그룹 내 인공지능(AI) 관련 인재풀이 상당히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찬가지로 미래 모빌리티 산업에서 핵심 기술로 꼽힌다. 지금은 철수했지만 스마트폰 사업도 영위했고, 가전과 연계한 사물인터넷(IoT) 역량도 꾸준히 키워왔다. 그러나 정작 이를 모빌리티 중심으로 종합할 수 있는 LG전자가 전장 사업을 주축으로 내세우는 상황이다. 

      완성차 업계 한 관계자는 "전장 사업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제는 제조업 한계를 금방 떠올리게 하는 측면이 있다"라며 "밸류체인 내에서 대체 불가능한 입지를 구축하기도 힘들고 주도권을 쥐기도 어려운 포지션이라 잘 이해가 가지는 않는다"라고 전했다. 

      단순히 제조업 이미지를 벗어나기 힘든 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실제로 LG그룹이 커넥티드카 시대 핵심 부품 시장을 모두 선점한다고 해도 주도권은 데이터를 확보하는 사업자가 쥘 가능성이 높다. LG전자가 공들여 스마트폰을 개발하고 큰돈을 들여 기기를 생산·판매했지만 정작 돈을 벌고 입지를 키운 것은 기기를 통해 데이터를 확보한 빅테크였던 것과 같은 구조다. 

      전장이 일부 부품 사업에 불과하단 것 자체도 리스크가 될 수 있다. 완성차 시장의 생산 구조는 빠르게 변화 중이다. 모듈 업체 중심으로 구축된 완성차 생태계 자체가 청산 대상이 된 까닭이다. 전기차 대응이 비교적 빠른 완성차 업체는 차량 내 운영체제(OS)부터 반도체까지 내재화 시점을 앞당기고 있다. 테슬라에 이어 애플까지 참전이 확정될 경우 장기적으로는 전기차 시장에 뛰어든 완성차 업체 전반에서 '전부 내재화' 경향이 짙어질 거란 전망도 있다. 

      투자 업계에 따르면 LG그룹 벤처캐피탈(CVC)인 LG테크놀로지벤처스도 모빌리티 관련 투자를 담당하고 있다. 이번 LG전자의 사이벨럼 인수 이후에도 그룹 차원의 후속 거래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장 사업을 넘어서는 전체 청사진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으면 LG그룹 모빌리티 비전에 대한 투자자 접근성은 개선되기 힘들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