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문제라는 의견 나와
리테일 영업 기반 축소 우려로 디지털 전환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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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의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 시대적 화두로 떠오른지 수 년이 지났지만, 예상보다 전환이 더디다는 평가가 많다. 점포축소를 비롯해 구조조정, 경비 절감, 채용 등 디지털 전환을 가로막는 요소들을 조정하는 게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들의 구조적 문제 외에도 금융당국의 간접적 규제 등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평가다. 제3 인터넷전문은행인 토스뱅크의 영업개시를 앞두고 다시 은행의 디지털 전환에 불이 붙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은행의 점포는 줄어드는 추세다. 실제로 27일 기준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영업점 수는 올해 6월 말 기준 3344곳으로 지난 2018년 6월(3675곳)과 비교해 9.01% 감소했다. 지방은행의 영업점수도 같은 기간 2028곳에서 1849곳으로 8.83% 줄었다.
다만, 은행은 점포를 임의로 없앨 수 없다는 평이 많다. 올해 3월부터 은행들은 금융소비자의 접근성을 고려해달라는 감독 당국의 주문에 따라 강화한 '점포 폐쇄 관련 공동절차'를 따르고 있다. 폐쇄 전 외부인 참관 영향평가, 3개월 전 2회 사전통지 등이 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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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인력 구조조정도 어렵다. 금융사들은 정년이 대부분 보장된 기업들이기 때문이다. 은행권에서는 공공연하게 한국씨티은행의 사례를 들고 있다. 현재 씨티은행이 매물로 나온 상황에서 노조와의 의견 갈등으로 매각 방향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다보니, 금융사들이 이런 전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고객 데이터를 활용할 수 없는 것도 은행이 겪는 애로사항이다. 한 금융 담당 연구원은 “디지털 전환을 하려면 데이터가 자유롭게 왕래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현재는 고객 정보를 마케팅으로 이용하기 어려워 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없어 종합적인 컨설팅이 어렵다. 마이데이터 사업도 이러한 이유로 정체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법의 규제로 발목까지 잡힌 상황이다. 은행법과 보험업법을 보면, 은행과 보험사가 금융업과 관련 없는 비금융회사에 지분을 15% 이상 출자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여기에 금산법은 금융기관이 비금융회사 주식의 '5%+사실상 지배' 또는 '20% 초과 소유'를 금지하고 있다. 금융지주회사법도 금융지주가 비금융회사의 주식을 소유하거나 지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결국, 금융사는 유망 핀테크 기업에 대한 M&A(인수·합병)나 출자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례로 골드만삭스는 2015년부터 SNS의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소셜미디어 업체 데이터마이너(Dataminr)에 투자했는데, 국내에선 유권해석을 받더라도 금융회사가 소셜미디어 업체를 인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은행에 바라보는 시각이 근본적인 문제라는 의견도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회사를 금융기관이라고도 칭한다”라면서 “주주가 있는 주식회사인데도 은행을 공적 기관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아서 핀테크 업체와 다르게 디지털 전환하는데 장애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 국내 은행들은 디지털 전환을 미래 먹거리 목표로 삼으며 적극적으로 대비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올해 은행들은 본업 외에 음식배달, 알뜰폰, 중고차 직거래 등 다양한 비금융 사업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여 뛰어들고 있다.
김기필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본부 실장은 “은행에서는 오픈뱅킹을 필두로 고객 이탈을 방지하면서 고객 유치까지 하려는 상황이다”라면서 “금감원에서 속도를 조절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결국 큰 틀에서는 지점 축소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신평 역시 “핀테크가 치고 올라오면서 리테일 영업기반이 축소가 가속화될 수 있어 은행의 디지털 전환은 불가피하다”라고 평가했다.
한신평에 따르면, 국내 은행이 미국 글로벌 투자은행 수준으로 IT 비용 집행 시 은행의 수익성은 15%가량 하락할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국내 은행은 평균 영업비용의 10%대를 IT 비용에 지출하는데, 미국 은행의 절반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