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4도 선두권과 후발주자 차이 커져
인력전쟁 결과에 따라서 빅4 내에서도 차별화 커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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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관용구처럼 쓰이는 ‘빅4 회계법인’이 옛말이 될 수 있다. 업계 1위 삼일을 정점으로 빅4가 균형을 이뤘던 시대는 지나가고 삼일-삼정, 그리고 안진-한영으로 빅4 간에도 격차가 벌어지고 있어서다. 그간 업계 맏형 노릇을 하던 삼일 회계법인도 업계 지형 변화를 놓고 전략에 대해 고민한다.
4대 회계법인이 지난 회계연도에 합계 매출 2조원을 달성했다. 재무자문, 세무자문 분야에서 매출 신장이 매출 증가를 견인했다. 감사부문 성장은 둔화하는 추세다.
빅4 회계법인 사이에서도 매출 증가율 격차가 눈에 띈다.
삼일회계법인은 매출이 7633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11.47% 증가했다. 삼정회계법인은 매출이 6202억원으로 10.45% 늘었다. 삼정은 삼일과 달리 컨설팅부문 매출을 포함한 수치다. 반면 한영회계법인은과 안진회계법인은 매출액이 각각 4035억원, 3745억원으로 4%, 8.5% 증가하는데 그쳤다. 빅4 내에서도 삼일과 삼정, 안진과 한영의 경쟁구도가 더욱 뚜렷해지는 양상이다.
이런 경쟁구도는 인력 전쟁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삼정과 삼일이 각각 390명, 385명을 채용했다. 작년보다 40% 많은 신입회계사를 채용한 것이다. 이 두회사는 비단 신입회계사뿐 아니라 경력직 채용에도 적극적이다.
이처럼 이들이 회계사 채용에 나서는 것은 그만큼 인력확보 전쟁이 치열하게 진행고 있어서다. 통상 신입회계사는 회계법인 입장에선 비용 요소가 많다. 회계사 시험을 합격했다고 하더라도 실제 현장에서 제대로 역할을 하기 위해선 최소 2년 이상의 트레이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간 4대 회계법인은 통상 250여명 남짓의 신입회계를 채용하고 이들을 트레이닝 시켰다.
한때는 오히려 신입회계사 채용을 줄이려고 하기도 했다. 비용 부담을 굳이 감당하지 않고 타 회계법인의 경력직을 데려오려는 시도가 있어서였다. 하지만 경력직을 채용하기 힘든 시장이 되다 보니 신입회계사라도 뽑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더불어 삼일과 삼정의 1위 경쟁도 이를 부추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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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문 업무쪽으로 일이 많아진 영향도 있다. 지정감사제 이후 감사 부문보단 자문업무가 주 수익원이 되면서 해당 인력수요가 늘었고, 이 인력들은 사모펀드·대기업·유니콘 등에서도 러브콜을 많이 받는다. 지난해 4대 회계법인 전체 매출에서 경영자문(재무자문)이 차지하는 매출액 비중이 46.4%나 된다.
삼일의 한 관계자는 “업계 1위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경쟁사 수준의 채용규모는 유지해야 한다”라며 “삼정이 공격적으로 나오는 상황에서 지켜만 보긴 힘들다”라고 말했다.
삼일 파트너들도 이전보다 삼정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한다. 그간 삼일은 빅4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업계 1위 자리를 지키면서 회계법인의 ‘파이’를 키울수 있는 전략이란 생각이 강했다. 과도한 경쟁 체제가 구축되면 수수료 중심의 매출구조에서 오히려 타격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삼정이 업계 1위 자리를 노리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근소한 1위 전략에서 벗어나 압도적인 1위를 해야 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는 판국이다. 어차피 빅4 체제가 유지되기 힘들다면 법률시장의 김앤장처럼 50% 이상의 점유율을 가져가는 압도적인 회계펌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빅4의 안진과 한영회계법인은 조직 추스리기에 정신이 없다. 삼일과 삼정이 업계 1위 싸움을 벌이면서 이들 과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당장 삼일과 삼정이 채용시장에서 인력을 쓸어가면서 이들은 인력 공백을 어떻게 메워야 하는지 고민이 크다. 또한 중견 회계법인마저도 이들의 뒤를 바짝 뒤쫓고 있다.
나름의 해결책으로 안진의 경우 경력직 모집에 사활을 걸고 있으며, 한영은 장기 근속을 유도하기 위해서 급여체제를 뜯어고쳤다. 그만큼 인력이탈에 대한 고민이 있으며, 우수 인재 채용에 어려움을 겪는다. 삼일·삼정의 연봉 수준을 맞춰주기 쉽지 않고, 중견 회계법인의 ‘워라벨’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이 이들이 가진 딜레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빅4 체제에서 상위권 그룹과 나머지가 더 벌어질 것이란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