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빗나간 LGES-스텔란티스 깜짝 JV 소식
삼성SDI도 MOU는 했지만…규모·방식은 '미정'
美 4조 투자 보류된 사이 LG가 받아간 정황
불투명한 지배구조 탓?…내부선 잡음 소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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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LG에너지솔루션(LGES)이 18일 스텔란티스와 깜짝 합작법인(JV) 소식을 발표했다. 양사는 약 4조원을 투입해 북미에 40GWh 규모 생산설비를 갖추게 된다. LGES가 장기적으로 받아 갈 수주 물량은 약 4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다음 날인 19일 삼성SDI도 스텔란티스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양사가 MOU를 체결한 것은 사실이지만 구체적으로 밝혀진 내용은 없다. JV 형태가 될지, 삼성SDI가 독자 생산공장을 설립할지도 확실치 않다.
당초 시장의 예상을 한참 빗나간 결과다. 수개월 전부터 시장에선 스텔란티스가 삼성SDI의 미국 진출 협력사로 낙점되었다는 소식이 공공연하게 돌았다.
스텔란티스는 피아트크라이슬러(FCA)와 푸조시트로엥(PSA)이 합병해 올 1월 출범한 글로벌 4위 전기차 기업이다. 지난 7월에는 2025년까지 전기차 시장에 약 300억유로(원화 약 4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FCA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017년까지 사외이사로 재직한 기업이기도 하다. 이 인연 때문인지 스텔란티스 역시 삼성 그룹과 우호적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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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스텔란티스는 중국 CATL을 제외하면 삼성SDI에게서 가장 많은 전기차 배터리를 납품받고 있다. 전기차 시장조사 업체 'EV볼륨즈'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누적 출하량을 기준으로 스텔란티스는 삼성SDI의 세 번째로 큰 고객사다. 이 때문에 삼성SDI가 스텔란티스(크라이슬러)와 손을 잡으며 LGES(GM)·SK이노베이션(포드)과 나란히 미국 시장을 나눠가지게 될 거란 기대감이 컸다.
스텔란티스와 함께 발표할 미국 현지 대규모 투자 계획을 기대하던 투자자들은 다소 의아한 결과와 마주한 셈이다. 삼성SDI 측은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북미 진출을 위해 양사 협력이 지속된다는 점을 제외하면 진출 방식과 투자 규모, 수주 내용까지 확정된 것이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니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궁금해하는 목소리가 많다.
취재를 종합해 보면 삼성SDI 측이 스텔란티스 측이 바라는 28조원 규모 전기차 배터리 수요를 모두 소화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확인된다. 이 때문에 스텔란티스 측이 급하게 LGES를 찾아갔다는 이야기다. 스텔란티스가 시장 점유율 기준 전 세계 4위라고는 하나 경쟁사에 비해선 사업 확장 시기가 뒤처진 편에 속한다.
삼성SDI는 스텔란티스 물량을 LG에 양보한 걸까 놓친 걸까. 그간의 신중하고 보수적인 투자 기조를 감안하더라도 삼성SDI의 입장과 전략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증권사 배터리 담당 한 연구원은 "배터리 기업인데 배터리 사업에 전력을 쏟지 않는 아이러니한 모습으로 비친다"라며 "독점 가능한 물량 절반을 이례적으로 경쟁사가 가져갔는데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라고 전했다.
이전에도 삼성SDI의 미국 투자 내용이 시장 기대에 못 미칠 거란 시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8월 이 부회장 가석방 이후 삼성그룹이 240조원 규모 투자 계획을 밝혔던 당시에도 배터리 사업 존재감은 미미했다. 시장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삼성SDI 측에서도 리비안과 스텔란티스 수주를 고려해 북미 지역에 4조원 규모 투자 계획을 준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 같은 사정을 감안하면 삼성SDI 측이 스텔란티스 물량을 받으려야 받을 수 없었던 상황으로 볼 수도 있다. 배터리 업계에선 삼성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가 그룹 포트폴리오 관리 차원에서 삼성SDI의 투자 계획에 긴밀히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배터리 업계 한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반도체나 바이오 사업에 비해 배터리 사업의 투자수익률(ROI)이 낮다는 이유로 보류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LGES가 스텔란티스와 세부적인 협력 조건을 타진하는 동안에도 미국 투자 계획은 여전히 보류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진다"라고 말했다.
삼성SDI가 스텔란티스 물량을 독차지하지 않은 걸 무조건 문제 삼기는 어렵다. 경쟁사와 똑같은 전략을 취해야 한다는 법도 없다. 그러나 투자자 입장에서는 굴러들어온 복을 놓친 것 같은 아쉬움이 크게 남을 상황이다.
LGES와 SK온은 실적 발표 때마다 꾸준히 추가 수주 내역과 투자 확대 계획을 내놓고 있다. 양사가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삼성SDI와 단순 비교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전기차 시장의 폭발적 성장이 당연한 미래로 받아들여지는 터에 수주와 증설 소식은 호재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룹 차원에서 반도체나 바이오 산업에 비해 수익성이 낮고 무리한 증설 경쟁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현재 리튬이온배터리 시장을 그리 낙관하지 않는 탓이란 분석도 있다. 그러나 배터리 시장에 임하는 삼성SDI와 경쟁사의 온도차를 설명하기 위한 사후적 분석이거나 시장 관계자를 통해 공유되는 내부 사정에 불과할 뿐. 삼성SDI 측이 이에 대해 구체적인 청사진을 내놓은 것은 아니다.
이번 결과를 그룹과 삼성SDI 경영진이 전략적 판단하에 의도한 결과로 볼 수 있을까. 삼성SDI 내부에서도 잡음이 적지 않은 상황으로 파악된다.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주 그룹을 상대로 경영진 차원의 보고가 있었고, 우호 관계이자 미국 시장 진출의 열쇠가 될 수 있는 스텔란티스 물량을 많이 확보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질책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라며 "사실이라면 그룹 입장에 보폭을 맞춘 결과다 보니 경영진 차원에선 황당한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드러난 상황을 종합하면 삼성SDI의 사업을 주도하는 주체가 누군지, 어떻게 의사결정이 내려지는지 불투명하다는 인상을 준다.
그룹 TF 조직이 계열사 사업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건 외부에서 간섭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삼성SDI도 엄연히 독립된 상장 법인이다. 실적과 주가가 받쳐줄 때라면 괜찮겠지만, 지난 3분기를 기점으로 내년 이후 후발주자인 SK온과 점유율 격차가 벌어질 거란 시장 우려가 적지 않다. 이런 때에 그룹 유리천장 때문에 경영진 판단이 가로막힐 수 있다는 우려는 투자자에게 달갑지 않은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