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 투자자는 ETF, 안전 투자자는 TDF에 투자
중간 성격 지닌 EMP는 투자자 관심 상대적 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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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간접투자 상품에 돈이 몰리고 상장지수펀드(ETF)가 주목받으며 ETF를 나눠 편입하는 EMP(ETF Managed Portfolio) 상품도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 운용업계에서 의욕적으로 마케팅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EMP는 아직 ETF·타깃데이트펀드(TDF) 등 다른 퇴직연금 상품에 밀려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위험자산도, 비위험자산도 아닌 애매한 포지션에 비교적 높은 수수료율이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로 꼽힌다. ETF나 TDF의 아성을 위협하려면 '플러스 알파'가 필요할 거란 분석이다.
EMP펀드는 운용 자산의 50% 이상을 주식·채권 등 다양한 종목의 ETF 등으로 포트폴리오룰 구성한 '초분산 상품’이다. 주식·채권 등에 분산 투자한 각종 ETF를 한 번 더 분산한 상품이라 시황에 따른 변동성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EMP펀드는 운용업계에서 퇴직연금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상품의 일환으로 출시됐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설정액은 연초 6202억원 대비 64.1%(3975억원) 증가해 1조를 돌파(10월 19일 기준)했다. 최근 6개월 동안 국내주식형 ETF가 -5.06%의 수익률을 낼 때도 EMP는 수익률 2.46%로 양호한 성과를 냈다는 평이다. 같은 기간 해외주식형 ETF는 23.88%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최근 이례적으로 주식과 채권 가격이 함께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며 개인 투자자가 전술적으로 대응하기 힘들어졌다. 일반적으로 주식과 채권 가격은 반대로 움직인다"며 "출렁이는 장에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커지자 시장 대응을 종합적으로 할 수 있는 EMP 펀드를 인정하는 투자자가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운용사 관계자는 "코로나에 이어 올해 초부터 나온 테이퍼링 이슈와 다가오는 미국 기준금리 인상에 EMP펀드가 단일 자산형 펀드보다 변동성을 안정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며 "다양한 섹터의 ETF의 유동성을 활용한 자산 배분이 유리해지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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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EMP펀드가 주로 진출한 퇴직연금 시장에서 아직 EMP의 비중은 TDF 등 다른 퇴직연금 상품과 비교하면 낮다는 평가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TDF 설정액은 5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2019년 말 3조3000억원 대비 56.8% 증가한 수치다. 이미 2018년 상반기에 1조원을 넘어섰다. EMP펀드가 최근 1조를 돌파한 것과 비교하면 성장세가 빠르다.
특히,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퇴직연금 자산 중 TDF에 대한 투자가 증가한 건 2018년 퇴직연금 자산운용 규제가 개선되면서부터라는 분석이다. 2018년 8월 금융위원회는 퇴직연금 자산의 70%까지만 투자가 허용됐던 TDF 비중을 100%로 허용했다. 선진국에서 연금상품으로 널리 활용되는 TDF를 국내에서도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ETF와 EMP는 다른 펀드와 마찬가지로 70%까지만 투자할 수 있다.
아울러, ETF도 2018년부터 연금계좌를 이용한 투자가 가능해지며 시장 규모가 커졌다. 특히 지난해 '동학개미' 열풍에 연금계좌를 통한 ETF 거래가 활발해졌다는 분석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5월 21일 국내 ETF의 순자산총액이 60조원을 넘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EMP펀드가 굉장히 커질 수도 있는 시장이었지만 상품의 특성이 애매해 그러지 못했다"며 "퇴직연금에 투자할 때 공격적인 투자자는 ETF에, 안정적인 투자자는 TDF에 들어간다. 상대적으로 중간 성격의 EMP가 눈길을 끌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른 운용사 관계자는 "상승장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테마형 ETF 하나 잘 고르는 게 수익률이 훨씬 높다"며 "개인투자자가 똑똑해지며 ETF 종목을 잘 고르고, 운용업계에서 ETF 최저보수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굳이 높은 보수(업계 평균 45bp; 1bp=0.01%)를 주며 EMP펀드를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