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수펙스 영향력 줄이고 이사회로 무게이동
LG, 5년차 구광모 회장 힘 받는 개편 관심
현대차, 미래차에 맞는 조직 변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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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앞으로 대기업들의 연말 대규모 인사 및 조직개편은 점점 보기 어려워질 것 같다. ▲산업 패러다임 변화 ▲ESG 경영 필수 ▲포스트 코로나가 전제로 깔리면서 기업들은 상황 상황에 맞춰 예민하고 즉각적인 인사, 조직개편 조치의 필요성이 커졌다.
실제로 국내 4대 그룹의 연말 모습은 예전과 많이 다르다. 오너 경영인이 혼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사업 규모가 비대해지면서 경영 트렌드에 뒤쳐져서는 안된다. 보은 또는 인센티브 성격이 강했던 임원 인사는 사라지고 있다. 오너 경영인을 단순 보좌하는데 그치지 않고, 사업 자체를 책임지고 맡길 수 있는 전문경영인 발굴 또는 확보가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4대 그룹이 지배구조 측면, 사업 측면, 또는 내부 헤게모니 측면에서 처한 환경이 제각각이다보니 인사·조직 스타일에서도 그룹의 특징들을 찾을 수 있다. 누군가에겐 권력을 다시 집중하려고 하고, 누군가는 분산시키는 데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목적은 모두 ‘생존’이다.
올 한 해 삼성그룹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정중동(靜中動)’이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부재 기간 그룹 전체가 사실상 올스톱이었기 때문에 이 부회장 출소 이후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임원 인사 및 조직 개편이 예전보다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들이 나온다. 과거 이건희 회장의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어록만큼 이 부회장의 ‘뉴삼성’ 언급이 주목을 받는 이유다.
타깃은 국정농단 사태 이후 해체된 미래전략실을 대신한 전자, 금융, 중공업 3개 태스크포스(TF)다. 역할은 미미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아 삼성그룹이 다시 컨트롤타워를 만들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SK그룹의 수펙스추구협의회처럼 그룹 내 조정기구가 상대적으로 크게 문제가 부각되지 않는 경우도 있어 이를 벤치마킹할 가능성이 있어보인다. 하지만 이 문제로 홍역을 치른 바 있는만큼 안팎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사회 중심으로 가고 있는 ESG 경영 트렌드에 역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사는 컨트롤타워의 방향성에 따라 맞춰질 공산이 크다. 장기적으로 보자면 삼성그룹의 최대 과제는 부문별 전문경영인 육성 또는 확보다. 이재용 부회장 스스로 4세 경영 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천명한만큼 ‘구인(求人)’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그만큼 힘든 여정이 될 전망이다.
SK그룹은 컨트롤타워의 영향력을 줄이려는 모습이다. SK그룹은 최근 파이낸셜스토리 점검을 마치고, 조만간 계열사별 인사 범위를 정해 이르면 이달 말, 늦어도 12월 중 정기인사를 발표할 전망이다. 지금까지는 그룹 내 조정기구인 SK수펙스추구협의회와 각 계열사 이사회가 협의해 CEO를 평가하고 성과를 결정했다. 올해부터는 계열사 이사회가 사실상 CEO 인사를 하는 첫해가 될 전망이다. 각 이사회의 권한이 한층 강화되면서 그룹 ‘컨트롤타워’의 역할론 조정에 관심이 쏠린다.
지난 3월부터 국내 대표 경제단체인 대한상의 회장을 맡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계열사의 개별 사업보다는 그룹 전체의 그림을 그리려는 모양새다. 최 회장은 최근 잇따른 해외 출장을 통해 글로벌 경영을 가속화하는 동시에 ‘경제 외교관’의 면모까지 보여주고 있다. 미국과 유럽을 돌며 2차전지, 소재, 바이오 등 신성장 사업에 대한 투자와 더불어 탄소 감축 등 친환경 투자를 약속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수펙스추구협의회가 이사회 중심 경영의 토대를 마련했지만 이젠 이사회에 실질적 권한을 넘기는 시점이 되면서 그 역할이 점차 줄어들 것”이라며 “다만 CEO 평가에서 사외이사들의 영향력이 커진 만큼 수펙스의 내부 교통 정리 없는 상황에선 임원들의 경쟁 과열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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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가장 주목하는 곳은 LG그룹이다. 내년이면 구광모 회장이 취임 5년차를 맞게 된다. 그동안은 총수 교체 후 안정에 무게를 뒀다면 이젠 적극적으로 전면에 나설 때가 됐다. 이번 ‘원포인트’ 인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평가다.
구광모 회장은 이달 초 ㈜LG 최고운영책임자(COO)였던 권영수 부회장을 LG에너지솔루션 대표로 선임했다. 배터리 부문 리콜 사태, 이에 따른 모회사 LG화학의 대규모 충당금 축적, 기업공개(IPO) 등 산적해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구원투수로 권 부회장이 다시 CEO로 등판했다.
그룹 2인자 격인 권 부회장의 이동으로 구 회장을 옆에서 보좌해야 하는 '그룹 2인자'의 빈자리를 누가 채울 지가 관심사인건 맞다. 하지만 그보다 구광모 회장이 ‘혁신’을 언급하면서 그룹 전반에 긴장감이 커진 점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젠 그룹 2인자가 아닌, 구 회장의 색깔이 더 뚜렷해질 수 있게 해주는 말 그대로 서포터(supporter) 역할에 그칠 수 있다.
다른 관계자는 “LG그룹은 내년 사업적으로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다”며 “사업을 직접 이끄는 각 계열사의 수장이 누가 되고, 그들을 보좌할 임원진들의 세대 교체가 더 중요하다”고 전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해 정의선 회장이 취임하면서 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 등 주요 계열사 수장을 교체하면서 올해 임원 인사에 대한 관심이 크게 줄어든 게 사실이다. 인사, 조직 개편 상 정 회장의 가장 큰 숙제는 미래차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는 그룹을 얼마나 유연하게 만드느냐다.
현대차는 전기차 현지생산을 포함해 미국, 유럽, 아시아 시장에서의 경쟁력 강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전기차 생산기지 다양화는 미래차 시대 '퍼스트 무버'가 되고자 하는 현대차의 핵심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노사 단체협약에 따라 국내와 같은 차종·모델을 해외에서 생산하려면 노조의 동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전기차 중심이 된다는 것은 현대차그룹 오토메이커와 부품사 노동 환경의 대변환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글로벌 경쟁사들처럼 공장 자동화가 진행된다면 중장기적으로는 현재 단순 생산직 수의 극히 일부만 남기는 대규모 감축이 불가피하다. 광주형 일자리처럼 관(官)의 관여도 있어 독단적으로 결정하기도 어렵다.
정의선 회장은 이번 연말 인사에서 부회장단 변화를 최소화하며 자신에게 리더십을 집중할 수 있는 현 체제를 유지할 공산이 크다. 동시에 첫 외국인 부회장 등장 가능성이 거론될 정도로 인사, 조직도 미래를 향해가고 있다. 그만큼 정 회장 입장에선 유연한 조직 개편이 노조 문제로 발목 잡힐 수 있다는 점은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골치 아픈 문젯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