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톡스 균주 출처 문제시 현재·미래 사업 모두 타격
국내 보톡스사 부담 커져…휴젤 M&A 영향도 관심
시행 전 거래 종결 목표지만…소급 적용 규정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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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부정한 방법으로 고위험병원체 취급시설 허가를 받은 곳의 균주 보유를 막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감염병예방법) 개정안 시행이 5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균주 출처에 대한 불확실성이 큰 보툴리눔 톡신 기업들의 걱정이 큰데, 한창 진행 중인 휴젤 M&A에도 영향이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개정안 시행 전 거래 종결이 목표지만 ‘소급 적용’ 규정이 있다 보니, 거래가 완료된 후에도 균주 문제가 분쟁의 불씨로 남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감염병예방법 일부 개정안이 9월 국회 본회의를 거쳐 지난달 개정(공포)됐다. 기존 법에서는 고위험병원체 취급시설의 허가를 취소하거나 폐쇄를 명하는 내용만 있었는데, 개정안에선 고위험병원체를 처리할 근거가 마련됐다. 허가가 취소되거나 폐쇄 명령을 받은 곳은 고위험병원체를 폐기해야 하고,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질병관리청이 폐기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신설됐다.
이 법에 가장 영향을 받을 곳은 국내 보툴리눔 톡신 기업들이다. 이 법이 적용되는 고위험병원체는 탄저균, 에볼라, 메르스(중동 호흡기 증후군),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등 36가지인데 실제로 상업화됐고 관리 위험이 큰 것은 사실상 보툴리눔 톡신 하나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보톡스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보툴리눔 톡신은 1그램(g)만으로도 수십 만명을 목숨을 앗을 수 있는 맹독이다. 국제적으로 생물무기금지협약(1975년 발효, 우리나라는 1987년부터 발효) 대상 물질로 제조나 보유, 수출입에 엄격한 허가가 필요하다. 해외에선 4개국의 4개사만 보툴리눔 톡신을 상업화했는데, 우리나라는 20여개 기업이 보툴리눔 균주를 다루고 있다.
유독 우리나라에만 업체가 난립하다 보니 위험물에 대한 관리가 소홀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메디톡스는 미국 위스콘신대학교에서 균주를 들여왔다 밝히고 있고, 제테마는 2017년 영국 공중보건원(Public Health England) 산하 기관에서 상업용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도입했다. 다른 기업들은 부패한 통조림, 마구간, 돼지 사육장 등에서 균주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는데 유전자 서열 정보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환경에서 균주를 확보할 확률이 낮다 보니 국내 기업들엔 균주 출처 문제가 고질적으로 따라 붙었다.
훔치거나 불법 도용한 보툴리눔 균주를 활용해 고위험병원체 취급시설 설치·운영 허가를 받았다면 이는 ‘속임수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허가를 받은’ 경우에 해당할 수 있다. 그 경우 허가가 취소되고, 균주도 폐기해야 한다. 질병관리청은 작년 12월부터 전수 조사를 거쳐 이동 신고 위반 의심사례 2곳, 개발·실험 승인 위반 1곳, 허위 분리신고 의심사례 1곳 등 4곳의 법률 위반 정황을 확인했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어느 기업이 수사 대상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균주 출처가 불명확하다면 언제든 고발·수사 대상에 오를 불씨는 있다.
보툴리눔 톡신 기업들이 가장 걱정할 부분은 신설 조항의 '소급 적용 규정'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폐기 의무는 허가 취소나 폐쇄 명령을 받을 당시 보유하고 있는 고위험병원체에도 적용된다. 즉 앞으로의 영업 길이 막히게 되고,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균주를 연구·활용해 사업화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현재는 물론 미래 기업가치에도 심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현재 진행 중인 휴젤 M&A에 영향이 있을지에도 관심이 모인다.
베인캐피탈은 지난 8월 휴젤 지분(535만여주)과 전환사채(CB) 전량을 중국 CBC그룹 컨소시엄에 1조7239억원에 매각하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휴젤 측은 썩은 통조림캔에서 균주를 발견했다고 밝혀왔는데, 과거 균주 출처와 관련해 말을 바꾼 적이 있었다. 만일 균주를 자체 발견한 것이 아니라면 그 자체로 부정한 방법이라 볼 여지가 있다. 최근 ‘형식적 법 위반’ 문제로 주요 품목의 허가 취소 처분을 맞았는데, 그보다 훨씬 큰 위험 요인이다.
이번 감염법예방법 개정안은 개정 6개월 뒤, 즉 앞으로 5개월 후면 시행된다. 휴젤 M&A는 거래종결 조건이 충족된 후 내년 1월 12일 또는 매각자-매수인이 합의한 날짜에 종결할 예정이다. 계획상으로는 개정안 시행 전에 거래를 마무리할 수 있지만 소급 적용 규정이 있다는 점이 신경쓰일 수 있다. 거래 후라도 '균주 문제'가 불거지면 '법률 위반'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양생명 육류담보대출 관련 분쟁도 거래 종결 후 한참이 지난 후에야 불거진 바 있다.
휴젤 M&A 조건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통상 M&A에서는 이런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는 '특별손해 배상' 조항을 만들어 대비하기도 한다. 다만 균주 출처 문제라면 애초 거래의 전제 자체가 흔들 수 있는 요소다. 실제로 이런 위험이 현실화한다면 특별손해 배상 정도로 해결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통상 커다란 법률적 위험이 있는 거래에선 특별손해 배상에 대한 합의도 해둔다”며 “다만 사모펀드(PEF)가 매각자인 경우에는 회수 후 투자금을 분배하고 청산해버리기 때문에 배상엔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컨소시엄에 참여한 GS그룹의 고민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시장 예상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투자했고, 거래 대금도 2차에 나눠서 내기로 하며 안전장치를 뒀지만 거래 종결까지 험로가 예상된다. 삼성, 신세계 등은 이런 저런 이유로 도중에 휴젤 인수를 포기했다. 잡음이 이어지면 신사업 확장을 위해 휴젤 투자를 주도한 경영진과 임원들의 입장도 난처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