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적인 불법 관행에 우발채무 파악 불확실
과거 불법 뒤늦게 알려지며 거래 무산되기도
-
- 이미지 크게보기
- (그래픽=윤수민 기자)
환경·폐기물 처리 기업 인수·합병(M&A)이 늘어나면서 관련 자문 일감도 많아졌지만 실사를 맡은 전문가들은 고개를 젓고 있다. 과거부터 주먹구구·불법 경영이 관행화됐기 때문에 위험 요소를 걸러내기 쉽지 않아서다. 특히 오염물질 불법 배출은 폐기물 처리 기업의 고질병이라 우발채무 유무와 규모를 특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세계적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바람이 불며 국내 M&A 시장에서도 환경·폐기물 관련 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과거 산업의 대표격인 건설사들은 '환경 기업' 이미지를 씌워 기업가치 띄우기에 분주하다. 최근 진행 중인 KG ETS 환경에너지·신소재사업부 매각엔 태영그룹-KKR 컨소시엄과 현대엔지니어링, SK에코플랜트 등 내로라하는 기업이 공방을 벌이고 있다. 특히 SK에코플랜트는 EMC홀딩스, 대원그린에너지 등을 잇따라 인수하며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환경·폐기물 사업이 '대기업이 손을 대는 영역'으로 인식되며 물밑에서의 거래도 계속 활발하다.
자연스레 폐기물 기업에 대한 실사 수요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실사를 맡아야 하는 자문사 입장에선 썩 달가운 일감은 아니다. 특히 법무법인들이 법률 실사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장부 관리가 미흡한 경우가 많고 관행적·기술적 문제에서 비롯된 폐기물 불법 배출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법무법인들이 폐기물 처리 기업에 대한 법률 실사에서 가장 주의깊게 살피는 것은 폐기물 관리법·물환경보전법·대기환경보전법 등 해당 업종에 적용되는 특별법 저촉 여부다. 특히 폐기물 처리 기준을 준수했는지 살피는 등 '불법' 배출 행위가 없는지를 최우선적으로 파악한다. 법령에 명시된 오염물질의 배출허용 기준을 초과하는 경우 기업에 금전적 손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예를 들어 환경범죄단속법은 유해물질·폐기물 등을 불법배출한 곳은 매출액 중 일정액(5% 미만)과 원상복구 및 정화비용에 드는 금액을 더해 과징금으로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물환경보전법에서는 허용된 양을 초과해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경우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한다. 초과량과 초과 정도, 위반 횟수 등을 곱해 산정하기 때문에 금액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이는 결국 우발채무로 이어질 수 있는데 웬만한 실사로는 그 위험 정도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10여년 전, 환경·폐기물 투자 초창기처럼 '기업도 아니다' 할 수준은 벗어났지만 주먹구구식 경영은 여전하다. 지역 밀착형 사업이니 이권 세력과 지방자치단체의 결탁이 문제가 된 경우도 많았다. 정해진 사업 구역에 폐기물을 쌓기로 허가를 받았다가, 이 범위를 조금씩 넘어가도 묵인하는 식이다. 관리가 허술하다보니 법률실사에서 문제점을 지적해도 기업들은 '원래 관행'이라며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업의 과거 불법 배출건을 파악하기는 더더욱 힘들다. 비용절감·시설미비 등의 이유에서 비롯된 불법 투기는 고질적 문제니 그간 얼마나 위반 사항이 있었을 지 가늠하기 어렵다. 지난 2018년 12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전국 18개 경찰청이 적발한 불법 폐기물 사범 1284명 중 (폐기물) 배출업자와 매립업자는 307명에 이르렀다.
SK에코플랜트가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폐기물 소각 업체 클렌코는 변경허가 없이 폐기물을 과다 소각했다는 이유로 청주시와 영업허가 취소 처분을 놓고 분쟁 중이다. 분쟁 결과 인수 실익이 없다고 판단된다면 거래가 최종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한 대형 법무법인 변호사는 "관행상 혹은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하수처리장 등에 폐기물을 불법 투기하는 사례들이 있다"라며 "과거 불법 배출건까지 지금 시점에 정확하게 밝히기는 힘들다"라고 말했다.
환경·폐기물 업체 M&A에선 관리감독기관이나 사법당국이 아니라 민원이나 내부고발 가능성도 변수다. 민원이나 내부고발로 과거 불법 배출이 적발돼 회사가 과징금·영업정지 처분을 받는 일도 빈번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한 폐기물 처리 기업은 법무법인의 컨설팅을 받아 M&A가 추진됐는데, 계약 해지에 불만을 가진 하도급업체의 고발로 폐기물 불법 폐기 사실이 드러났다. 해당 업체는 결국 폐업을 결정했다.
다만 대기업의 진출이 이어지고 있어 환경·폐기물 업계의 불법적 관행이 사라질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최근 M&A 실사에 나섰던 한 변호사는 "영세 폐기물 처리 업자들은 관행이라는 이유로 법률 실사에도 비협조적이지만 대기업이 진출하면 시설 운영이 체계화될 것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