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LP도 요건맞춰 등록시 기관전용 변환 가능
제도 초기고 시간 촉박해 등록 절차 혼선 분위기
아예 새 펀드 꾸리는 대형사보다 소형사에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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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정부는 올해 사모펀드 제도를 개편해 기관전용 사모펀드(기존 경영참여형 사모펀드)의 활동폭과 출자자(LP)의 범위를 넓혔다. 일반 기업 자금을 유치한 기존 사모펀드(PEF)도 일정 조건을 갖췄다는 점을 입증하면 기관전용 펀드로 인정받을 수 있는데, 제도가 급히 바뀌다 보니 실무 절차 중 혼란을 겪고 있다. 금융사와 기관출자가 등 전통 전문투자자 자금을 받는 대형사보다 중소형사들이 애를 먹는 분위기다.
지난 10월 전문투자형과 경영참여형으로 구분됐던 사모펀드 분류 체계를 일반 사모펀드와 기관전용 사모펀드로 구분하기로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일반 사모펀드의 관리를 강화하고, 기관전용 사모펀드는 운신의 폭을 넓힌다는 취지다. 기관전용 사모펀드가 되면 10% 지분보유 의무·대출 불가 등 규제를 받지 않아 투자 전략이 다양해진다.
기관전용 사모펀드 출자자군도 넓어졌다. 당초 코스피와 코스닥 상장사 중 금융투자잔고가 100억원 이상인 기업들만 출자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었지만, 최종 시행령에선 비상장사도 LP로 나설 수 있게 됐다. 모태펀드, 해양진흥공사, 일부 조건을 갖춘 재단법인 외에 500억원 이상의 금융투자상품 잔고를 가진 비상장법인도 출자자군에 포함됐다.
기존에 결성된 경영참여형 PEF도 LP 구성에 관한 사항을 정관에 명시하면 완화된 규제를 적용받을 수 있다. 금융회사나 공제회·연기금 등 전통 기관투자가 외의 일반 기업에서 자금을 받은 경우, 기업이 기관전용 PEF의 LP 조건을 충족한다는 점을 입증하고 금융투자협회에 등록하면 된다. 이런 내용을 올해 말까지 정관에 담아야 하기 때문에 PEF 운용사들은 서둘러 절차를 밟아야 한다. 여유가 많지 않은 상황이라 일부 어수선한 분위기도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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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전용 사모펀드 출자자는 일정 규모 이상의 금융투자상품 주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투자 위험성이 있는 주식, 채권, PEF 출자금 등은 이에 포함되고 양도성예금증서(CD), 예·적금, 예수금 등은 이에 포함되지 않는다. 성격이 흡사한 MMF(Money Market Funds)와 CMA(Cash Management Account)의 지위도 갈렸다. MMF는 금융투자상품으로 인정되고 CMA는 빠진 터라 기준을 헷갈릴 만하다는 시선이 있다.
상장사의 경우 금융투자상품 잔고가 100억원 이상인데, 외부감사를 받는 주식회사는 50억원으로 기준이 낮다. 현실적으로 상장된 기업이 외부감사를 받지 않는 경우가 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들은 LP 등록 실무 절차에서 불편함을 겪고 있다. 투자 규모가 일정 규모 이상인 경우 전문투자자로 등록돼 있다. 그렇다 보니 등록 절차를 문의하면 이미 전문투자자기 때문에 추가로 밟을 절차가 없다는 답이 돌아오기도 한다. 다시 금융감독원에 문의하면 기관전용 LP는 별도로 등록해야 한다고 지도한다. 기업 입장에선 문의와 확인을 거듭하는 수고를 겪을 수 있다. 운용사 입장에선 LP에 서둘러 달라 읍소해야 하니 눈치가 보인다. 제도 도입 초기고 시간적 여유도 많지 않다 보니 유관 기관 간 의사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을 것이란 예상도 있다.
한 PEF 업계 관계자는 “아무래도 제도가 만들어진 초기다 보니 어떤 자료를 내야 할지 혼선을 겪거나 기술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기관전용 펀드 LP 등록은 허가가 아니라 조건만 맞으면 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크게 힘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운용 규모가 작고 인력이 부족한 중소형 운용사들이 특히 불편함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법 개정 작업을 통해 기관전용 사모펀드의 LP군을 넓힌 것은 PEF 업계의 성과지만 대형 운용사의 실질에는 큰 영향이 없다. 대형사들은 주로 공제회·연기금과 금융사 등 전통적인 기관투자가 자금을 운용해왔다. 일부 기업 출자자가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 투자 전문성이 있고 투자 잔액 규모로 LP 등록 여부를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
투자 전략을 다변화하고 싶은 중소형 운용사들은 기존 PEF 출자 기업들의 도움을 받아 기관전용 사모펀드로 바꿔야 한다. 반면 움직임이 무겁고 정해진 투자 전략을 바꾸기 조심스러운 대형사들은 아예 크레딧펀드 등 새 수단을 꾸리면 된다. 새로운 펀드를 결성할 때 조건에 맞는 출자자를 가려받을 수도 있다.
한 PEF 운용사 관계자는 “중소형사 입장에선 출자자군이 넓어진 것이 반갑지만 기관전용 사모펀드로 바꾸기 위한 절차가 번거롭다”며 “대형사들은 아예 크레딧펀드, 사모대출펀드(PDF) 등을 새로 만들기 때문에 별다른 부담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