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호재 소멸되고 경영진 매도로 수급 꼬여
상장한 지 1개월차에 지분 매각 전례 드물어
상장 성사시킨 류 대표 카카오 발령도 논란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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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최근 급락한 카카오페이 주가가 상장 후 고점이었던 25만원 문턱에 다시 갈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단기적으로는 쉽지 않을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상장 직후의 밴드웨건(주목ㆍ유행) 효과와 코스피200 편입이라는 단기 호재는 소멸됐고, 최고경영진의 스톡옵션 행사 후 대규모 자사주 매각으로 인해 수급 심리도 꼬여버렸다.
보통 경영진이 지분을 팔면 시장은 주가가 고점에 왔다는 신호로 해석한다. 카카오페이의 경우엔 시장에서 느끼는 '죄질'이 더욱 나쁘다. 상장 후 불과 한 달여만에 경영진 지분이 대량 매물로 나온 건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인 까닭이다.
상장을 성사시킨 5년차 최고경영자를 상장 직후 교체키로 한 카카오의 결정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의장은 이번 인사를 결정한 이사후보추천위원회 위원이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카카오페이 주가는 지난달 말 고점을 찍고 하락 추세다. 장 중 최고점 기준 10거래일간 낙폭이 24%에 달한다. 시가총액의 4분의 1이 보름만에 날아간 셈이다.
이는 앞서 카카오페이는 류영준 대표 (이하 류 대표) 포함 경영진 8명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 약 44만주를 매각했다는 공시에서 비롯됐다. 류 대표는 시간 외 매매 방식으로 총 23만주를 처분했다. 주 당 처분 단가는 20만4017원, 매각 추정가는 469억2390만원이다.
이외 나호열 기술총괄 부사장이 3만5800주, 신원근 기업전략총괄 최고 책임자가 3만주, 이지홍 브랜드 총괄 부사장이 3만주, 이진 사업총괄 부사장이 7만5193주, 장기주 경영기획 부사장이 3만주, 전현성 경영지원실장이 5000주, 이승효 서비스 총괄 부사장이 5000주 등도 20만원 초반에 주식을 매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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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지분 변동일로 표시된 10일이 결제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로 매도한 시점은 8일일 것으로 추정된다. 카카오페이는 지난 9일 종가 기준 코스피 우량주로 구성된 코스피200 지수에 편입됐다. 통상 코스피200 지수에 편입되면 공매도가 가능해지기 때문에 지수 편입일이 ‘단기 고점’인 경우가 많다는 평가다.
실제로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3일 장 종료 기준으로 카카오페이의 공매도 거래대금은 96억 200만원을 기록했다. 삼성전자, 크래프톤, SK바이오사이언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함께 코스피 공매도 거래대금 상위 종목 5위권에 들었다.
지난 9월에도 코스피 200지수 편입으로 공매도 사정권에 든 카카오뱅크와 크래프톤의 주가가 크게 빠졌었다. 한때 9만 4400원까지 올랐던 카카오뱅크 주가는 6만대까지 주저앉았고, 크래프톤도 주가가 공모가였던 49만8000원보다 밑돌면서 체면을 구겼었다.
당시 김광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카카오뱅크와 크래프톤은 지수 편입 이벤트가 종료됐고 이제 공매도도 가능해졌다”라며 “이들의 높은 벨류에이션을 인지해야 하며 동일 업종 내 다른 종목이 수급상 유리할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물론 경영진이 주식을 처분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이에 대해 카카오페이 관계자는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스톡옵션을 행사해서 취득한 주식을 매각한거라 회사 차원으로 말씀드릴 수 있는 내용은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보유중인 주식매수선택권을 전량 행사하여 매각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실제 이번에 보유 지분을 매각한 카카오페이 경영진들은 각자 보유하고 있는 스톡옵션의 30% 안팎의 비율로 주식을 처분한 것으로 전해졌다. 류 대표의 경우 총 71만2030주의 스톡옵션에서 23만주를 처분해 32.4%의 권리를 행사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상장 직후 경영진의 대규모 주식 매도가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2010년 이후 10여년 간 이 같은 전례를 국내 증시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IPO 전문가들도 "대개 신규 상장사 임원들은 자발적으로 최대 주주와 보호예수 기간을 함께한다"고 말한다.
다만 류 대표의 경우 참작할 여지가 없지 않다. 류 대표는 지난 11월25일 그룹 인사에서 지주회사격인 카카오 대표이사로 내정됐다. 회사를 떠나게 되면 스톡옵션은 의미가 없어진다. 보장받은 권리가 모두 사라지기 전에 일부라도 이익을 실현한 것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탓할 일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오히려 모회사 카카오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카카오페이를 5년간 맡아오며 상장까지 성사시킨 최고경영자를 상장 직후 교체하는 결정을 내린 까닭이다.
류 대표는 올해 빅딜 중 하나였던 카카오페이를 대표하던 얼굴이었다. 사상 최초로 100% 균등배정 방식을 도입한 카카오페이 일반청약에는 182만 명이 몰렸었다. 류 대표는 지난달 3일 상장 당시 “카카오페이 IPO를 통해 생애 첫 공모주 청약에 참여한 소액 주주분들이 많을 것이라는 관측은 우리의 시도가 대한민국 IPO 역사에 새로운 길을 열었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런 상징적인 인물을 상장 후 한 달도 안돼 교체하는 결정을 내린 셈이다. 소액주주들 사이에서 "상장 과정에서는 온갖 청사진을 내세우며 투자자들을 꾀어내던 대표이사가 막상 상장하니 대량의 주식을 매도하고 지주회사(카카오)의 대표이사로 '영전'하시는 게 옳은 모양새냐"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카카오의 대표이사는 카카오 이사회 내 이사추천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카카오 이사추천위원회는 사외이사인 최세정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가 위원장을 맡고 있고, 조규진 사외이사(서울대 공과대학 교수)와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의장이 참여한다.
그룹 계열사를 일궈낸 대표이사를 '본사'의 대표로 올리는 인사인 점에서 김범수 의장의 의중이 반영됐을 거란 관측이 나온다.
카카오 이사추천위원회 차원에선 '성과를 낸 계열사 CEO'를 불러올리는 게 합리적인 판단일지 몰라도, 이 역시 국내 증시에서 드문 일이다. 대기업 계열사라 해도 경영 안정성 측면에서 상장 이후 최소 1~2년은 상장 당시 대표이사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는 분석이다.
한 증권가 관계자는 "상장 공모 과정에서 투자자들의 핵심 판단 근거 중 하나가 CEO의 리더십과 전문성"이라며 "불법은 아니지만, 전례도 찾기 어려운데다 엄격하게 따지면 투자자 기망(欺罔;상대를 착오에 빠지게 하는 행위)이라고 지적할 수 있을 정도로 흔치 않은 행위"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