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줄이기가 애플식 경영?…데뷔 2년만에 귀 닫는 하이브
입력 2021.12.27 07:00
    취재노트
    "산업 혁신하겠다" 외치며 시장 등장한 하이브
    '귀 막고 입 닫는' 엔터사의 전통 오히려 강화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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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상장사로서 주주 및 사회에 대한 깊은 책임의식을 느낀다. 기관투자자뿐만 아니라 주주 모두의 가치 제고를 위해 투명성, 수익성, 성장성, 사회적 기여 등 다양한 관점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 –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 2020년 10월 15일 코스피 상장기념식에서

      하이브(HYBE)가 국내 엔터사 최초로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지 1년이 조금 더 지났다. 상장 당시 방시혁 의장은 ‘상장사의 책임의식’을 언급하며 ‘세계 최고 엔터테인먼트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기업’으로의 도약 의지를 호기롭게 밝혔다. 

      ‘개국공신’ 방탄소년단(BTS)은 여전히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다. 올해 앨범을 냈다하면 빌보드 ‘1위’를 차지했고, 미국의 주요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올렸다. 11월 미국 LA에서 2년 만에 재개한 대면 콘서트는 전 세계 음악 시장에서 9년 만에 가장 큰 흥행을 기록했다.

      하이브도 ‘방탄만큼’ 바쁜 한 해를 보냈다. 연초부터 굵직한 딜(deal)들을 이어가며 스케일을 키웠다. 사업 영역 확장에 사활을 걸었고, 수익성도 양호하다. 무난했던 상반기를 지나 하반기엔 전년 대비 높은 실적 증가를 보였다. 증권가에선 내년 본격적인 월드투어가 재개되고, 네이버 V라이브와 통합한 위버스가 출범하며, 두나무와 미국에 진출해 NFT(대체불가토큰) 사업을 펼치는 점을 고려할 때 호실적을 전망하고 있다.

    • 회사의 덩치가 커지고 이해관계가 복잡해질수록 시장과 적극적인 소통을 강화해 나가도 모자랄 판에 하이브는 오히려 귀를 닫아가고 있다. 시장에서는 소통이 체계적이지 못한 엔터사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가는 하이브에 실망하는 분위기다.

      박지원 대표를 포함한 하이브 경영진은 ‘애플식 경영’을 모토로 미디어와의 소통을 줄이고, ‘신비주의 경영’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세우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경영방침 아래 최근 기업 홍보를 담당하는 팀장급을 포함한 일부 직원들의 이탈이 이어진 점은 마냥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하이브가 추구하는 ‘애플식 경영’이 무엇인지는 알 길이 없다. 애플, 비자, 페이팔, 야후 등 굴지의 미국 테크기업에서 20년 이상의 홍보 업무를 담당한 캐머런 크레이그(Cameron Craig)가 2016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기고한 ‘10년간 애플에서 홍보 업무를 하며 배운 것(What I Learned From 10 Years of Doing PR for Apple)’을 보면 애플은 시장과의 소통에 그 어떤 기업보다 ‘진심’인 기업이다.

      그에 의하면 애플의 모든 공식 자료는 ‘단순해야 한다’는 애플의 ‘신념’을 담아 작성됐다. 스티브 잡스가 모든 보도자료를 직접 읽었다고 한다. 제품 발매 전 기자, 인플루언서, 애널리스트들에게 ‘왜 버튼을 없앴는지’처럼 사소한 변화까지 설명했다. 그 과정에서 나온 피드백은 바로 반영했다. 영향력이 큰 미디어는 따로 리스트를 만들어 집중 관리했다. 해당 매체는 독점 임원 인터뷰, 최초 제품 리뷰 등을 제공하며 가까운 관계를 맺었다. 

      스티브 잡스 사후라고 달라졌을까? 팀 쿡 애플CEO는 올해 11월 뉴욕타임즈(NYT)의 딜북(Deal Book)이 주최한 온라인 서밋에서 회사와 관련된 내용뿐 아니라 암호화폐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까지 밝혀 화제가 됐다. 

      애플,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국내 상륙 초반 시장과 부실한 소통을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여론에 각별히 신경쓰고 있다. 넷플릭스는 11월 초 ‘미디어 오픈 토크’를 개최하고 딘 가필드(Dean Garfield) 정책총괄 부사장이 국내 언론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민감한 질문에 속 시원한 답변이 나오진 않았어도, 어쨌든 주요 경영진이 2시간가량 직접 수십명의 기자들을 대하는 ‘정성’에 한해서는 글로벌 기업의 ‘배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국내 주요 매체들의 하이브 경영진 인터뷰 요청이 줄을 잇고 있지만 긍정적인 답변을 듣지 못하고 있다. 방시혁 의장을 포함한 경영진이 주주총회 전 ‘헤메스(헤어·메이크업·스타일링)’ 까지 신경쓰는 점을 고려하면 극도로 자제된 노출은 회사 방침으로 추측된다. 물론 ‘두문불출’은 아니다. 하이브는 올해 내내 유튜브로 회사설명회를 개최하며 이타카 인수, 두나무 투자 등 주요 사항들을 발표했다. 코로나 탓도 있지만, 대비한 내용을 준비된 방식으로 전달하는 행사에서는 ‘소통’보단 일방적인 메시지 전달이 크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산업이 흥할수록 시장도 진화한다. 더 이상 시장은 엔터사의 아이돌 ‘데뷔 일정’만 궁금하지 않다. 하이브의 기관 대상 IR(Investor Relations)에서는 쌓여가는 현금을 어디에 사용할 건지와 같은 구체적인 재무 전략에 대한 질문이 나오고 있다. 

      시장은 차치하고, ‘주요 고객’인 팬과의 소통도 원활하지 않은 모양이다. 11월 초 하이브는 BTS를 주인공으로 한 웹툰·웹소설 ‘세븐 페이츠: 차코’(7FATES: CHAKHO) 계획을 발표했다. 내년 1월 네이버 웹툰을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되는 대형 프로젝트다. 그러나 팬들은 고유의 창작 영역을 회사가 ‘직접’ 제작한다는 점에서 반감을 드러냈다. NFT 사업 계획 발표 이후에는 ‘지나친 상업화’에 반발한 팬들의 ‘하이브 불매’ 해시태그 운동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휩쓸었다. 

      최근에는 하이브가 BTS의 ‘직캠’(팬이 찍은 영상)을 삭제해 팬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저작권 등 복잡한 사정이 있겠지만 인기의 ‘은인(恩人)’을 통제하면서 충분한 설명이 뒤따르지 않은 점이 화를 키웠다. 일본의 대표 기획사인 쟈니스가 소속 아이돌의 초상권 및 저작권을 ‘과도하게’ 통제하다 시대 흐름을 타지 못하고 K팝에 완패한 전례가 있다.

      BTS의 주가는 정점을 달리고 있다. BTS의 광고 계약료는 100억원 수준에 육박한다고 알려진다. ‘인기가 언제까지 갈까’ 싶지만 일본의 국민아이돌 ‘스맙(SMAP)’처럼 20년 이상 정상 자리를 지킬 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회사와의 관계가 지금같기는 쉽지 않다. BTS도 내년이면 데뷔 10년차다. ‘머리가 굵어지면서’ 회사의 뜻대로만 가지 않는다. BTS가 등장하는 ‘세븐 페이츠: 차코’ 프로젝트도 멤버들 설득에 1년여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음반 등 활동이 각자의 이미지에 미치는 영향, 효과에 부담감을 느끼면서다. 

      하이브의 ‘성장성’에 대한 의심은 없다. 우리 모두는 대한민국의 소프트 파워가 더 흥하길 바란다. 한국을 ‘문화 거물’(Cultural Juggernaut)이라고 칭하는 시대는 엄청난 기회다. 미국의 디즈니도 미키마우스에서 시작했고, 일본의 ‘포켓몬스터’ 콘텐츠는 전 세계 미디어 믹스 총매출 1위다. BTS로 시작한 하이브가 종합 엔터 미디어사가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미키마우스와 포켓몬은 늙지 않지만 말이다)

      BTS와 일한 외부 관계자들은 BTS의 ‘애티튜드’에 놀랐다는 소감을 전한다. ‘슈퍼스타’는 통상 꽤나 까다로운 요구사항이 뒤따르기 마련인데 BTS 멤버들의 ‘프로다움’에 무난한 진행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간혹 BTS가 사무실에 등장해 큰 소리로 인사를 하는 모습에 놀랐다는 하이브 직원들의 증언(?)도 이어진다. 이정도면 BTS는 ‘글로벌 스타’의 품격을 갖추고 있는 듯 하다. 과연 하이브는 그에 걸맞은 ‘최선의 노력’을 보여주고 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