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아시아나 기업결합 심사 1년만에 결론
운수권 재분배, 슬롯 제한 조치 담길 듯
10대 글로벌 항공사?…시너지 반감에 구조조정 가능성도
해외 심사 결과는 미지수…결과 예단도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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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기업결합심사를 시작한지 1년여만에 잠정적으로 조건부 승인으로 가닥을 잡았다. 독과점이 예상되는 일부 노선에 대해 경쟁 제한성 조치를 발표했는데 통합 항공사는 운수권과 슬롯의 일부를 반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한 최초 기대했던 시너지 효과는 반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초대형 국적항공사 탄생, 이를 통한 규모의 경제 달성이란 목표도 퇴색됐다. 아직은 명확한 제재조치도 나오지 않았고 해외 공정당국의 결과도 미지수이기 때문에 임직원과 투자자들은 기약없는 기다림을 지속해야 한다.
아시아나항공의 M&A 과정은 애초부터 매끄럽지 못했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영권 매각 작업은 코로나라는 암초를 만나 무산 위기에 놓였고 한진그룹은 경영권 분쟁에 휘말려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때 등장한 산업은행은 판도를 뒤짚었다. 산업은행의 자금 투입으로 조원태 회장은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게 됐지만 부실 자산으로 치부받는 아시아나항공을 자의반타의반으로 인수해야 했다.
다행히(?) 아시아나항공은 정부가 기간산업을 안정화하겠다며 조성한 40조원 규모의 기안기금을 지원받은 몇 안되는 기업으로 선정되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정상화의 속도가 늦춰질수록 기안기금을 지원받은 아시아나항공은 물론, 추후 이를 인수한 한진그룹의 부담이 늘어나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
대한항공의 깜짝 인수 발표는 ‘속도전’으로 비춰지기 충분했다. 당시의 급박했던 발표와 달리 양 대 항공사의 통합은 1년이 지난 현재까지 유의미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 공정위원회의 심사는 그 기한을 3개월 단위로 계속 연장하며 늘어졌다. 항공산업 환경은 여전히 급박하지만 인수후통합(PMI) 작업은 아직 시작조차 못한 상태로 결과적으론 코로나 직전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산업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그나마 대한항공은 화물 운송에서 활로를 모색하며 실적을 회복하고 있는데 아시아나항공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초기엔 시간이 걸리더라도, 양대 항공사의 통합으로 인해 초대형 국적 항공사를 보유할 수 있다는 청사진이 있었다. 최근 공정위의 조치를 보면 이러한 기대감은 사라지고 있는게 사실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만이 운항할 수 있었던 장거리 노선 운수권을 일부 반납해야 하고, 항공사의 경쟁력으로 꼽히는 슬롯 또한 일정부분 재분배 해야한다. 대한항공은 자체적으로 생존전략이 마련된 상황에서 부채가 가득한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해야 할 유인이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에 투자자들 사이에선 ‘이럴거면 뭐하러 항공사를 통합하나’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공정위의 조속한 심사를 촉구했던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공정위의 역할은 기업들의 과도한 시장 지배를 방지하고 이를 조치하는 것이기도하다. 그러나 정부의 산업 구조조정 의지와 목표를 차치하고, 공정위의 이번 조치가 기업 또는 항공 산업 전반에 걸쳐 발전적인 방안인지 또는 과도한 선제적 우려에 대한 조치인지 그리고 현실성이 있는지는 지켜봐야한다.
슬롯의 반납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인천국제공항을 허브 공항으로서 활용할 수 있는 유인을 떨어뜨리는 요인임과 동시에 대형 국적항공사의 경쟁력을 저해하는 조치로도 해석할 수 있다. 장거리 노선은 사실상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만이 운항할 수 있었는데, 이를 재분배해 국내 항공사 가운데 이를 활용할 수 있는 곳이 과연 몇 군데가 있을지도 알 수 없다. 물론 경쟁입찰을 통해 자연스럽게 배분할 문제이긴 하지만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사업적·재무적 여력을 갖춘 후보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특혜 의혹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렵다.
해당 조치를 모두 따르면서 양사의 합병을 통해 글로벌 10대 항공사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기엔 사실상 무리가 있다는 평가도 납득할 만한다. 다소 과도하게 비쳐질 수 있는 ‘공정’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오히려 항공 산업 경쟁력은 후퇴할 것으로 보는 우려도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이후 인천국제공항의 슬롯 점유율은 약 40% 수준인데 독일의 루프트한자는 프랑크푸르트공항 슬롯 67%, 미국 델타항공은 애틀란타공항의 슬롯 약 80%를 점유하고 있다. 과거 공정위가 에어프랑스와 KLM의 합병(2004년), 델타항공과 노스웨스트 항공의 합병(2008년), 2010년 미국 콘티넨털항공과 유나이티드항공이 합병해 미국 내 최대 항공사가 탄생했을 때도 운수권 및 슬롯의 반납·제한 조치는 없었다. 공정위는 최근의 글로벌 공정 당국이 심사가 전반적으로 까다로워진 점이 이번 조치에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공정위의 조치는 전원회의를 거치지 않은 사안으로 확정하기까진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전원회의를 통과해 조건부 승인이 확정되더라도 해외 공정당국의 심사가 남아있다. 실제로 캐나다 1·3위 항공사인 에어캐나다의 에어트랜젯 합병이 유럽연합(EU)의 기업결합심사 이후 불발됐고, 이베리아항공을 보유한 지주회사 IAG의 스페인 에어유로파 인수도 EU 심사에 가로막힌 바 있기 때문에 끝까지 결과를 예단하긴 어렵다.
공정위의 이번 조치가 해외 공정 당국의 심사를 앞둔 상황에서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한다. 다만 이번 공정위의 조치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 통합 시너지를 100% 발휘하는데는 제한 요인이 될 것이란 의견에는 공감이 간다. 1년이 넘는 심사 기간, 앞으로도 기약 없는 기다림과 불투명한 전망은 고스란히 임직원과 투자자들의 피해로 돌아온다. 통합 이후에도 기대한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엔 초대형 항공사의 탄생이란 애초의 목표와 달리 통합 항공사의 대규모 구조조정의 가능성도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