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현금 활용이 핵심
생명→전자 지분도 끊어내야 할 숙제
에피스 인수, 공장 확장으로 덩치 키운 로직스
로직스 기업가치 확대 최대수혜는 삼성물산
로직스 활용가치 높아진 삼성물산, 지배구조개편도 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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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개편은 당장의 현안은 아니지만 언젠가 그리고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4세대 경영 승계를 포기했다. 오너 일가가 더 이상 경영에 깊게 관여하지 않는 것과 지배력 또는 소유권을 공고히하는 것은 별개다. 결국 그룹 전반적인 지배력을 안정화하고 정책적 외풍에 영향을 받지 않는 지배구조를 확립하는 것이 핵심이다.
삼성그룹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지배구조개편을 위한 연구용역을 맡겼고, 삼성준법감시위원회 또한 국내 한 대학교에 관련 용역을 의뢰했다. 이르면 연내 최종 결과가 나온다.
어떤 그룹이든 지배구조개편 과정에서의 문제는 자금이다. 삼성전자의 곳간은 넉넉하지만 이를 제외한 계열사들이 지배구조개편에 오롯이 자금을 투입할 여유는 없다. 따라서 그룹은 전자가 보유한 현금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안, 계열사 자체적으로 기업가치를 키워 현금을 창출할 수 있는 전략을 구사해야한다.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바이오로직스)의 삼성바이오에피스(이하 바이오에피스)의 지분 인수도 유사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삼성이 국제중재재판을 진행하던 미국 바이오젠(Biogen)과 ‘현 시점’에서 지분 인수에 합의한 것이 애초 계획한 것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장기적으론 바이오로직스의 기업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카드가 됐다는 점은 분명하단 평가를 받는다.
삼성그룹 지배구조개편의 쟁점은 삼성전자(삼성생명 8.5%, 삼성물산 5%)의 이중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것이다. 이는 금융회사가 보유한 계열회사 지분을 시가로 평가해 일정 수준 이상 보유하지 못하게끔 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발의되면서 논의가 본격화했다. 현재로선 해당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의 최대주주로, 사실상 그룹의 지주회사이자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력이 공고한 삼성물산이 2대주주로 남아있는 구조가 향후에도 유지되기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오너일가는 삼성생명의 지분 일부를 지난해 말 블록딜로 처분했다.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은 오는 4월까지 삼성전자 지분 일부를 매각한다. 이는 오너 일가의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에 대한 직접 지배력은 낮아진 반면 지주회사격인 삼성물산의 지배력은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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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로선 오너일가가 삼성물산의 지분을 확대하고 삼성물산은 삼성전자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방안이 가장 지배구조개편의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란 평가를 받는다.
이 때문에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인수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돼 왔다. 역시 자금이 문제였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의 지분가치는 시가로 약 37조원 수준이다. 삼성물산의 현금성 자산 1.1(개별)~2.4(연결)조원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현금이 부족한 삼성물산이 자회사 지분을 활용하면 상황이 다르다. 핵심은 삼성물산이 최대주주(43.4%)인 바이오로직스이다. 바이오로직스의 지분가치는 현 시가로 22조원 규모이다.
지배구조개편 과정에서 삼성전자의 현금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안이 사용된다면 삼성전자가 바이오로직스 지분을 인수하는 것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 바이오 사업이 삼성그룹의 또 하나의 축으로 부상하고 있는 시점에서 외부 매각은 선택지가 되지 않는다. 삼성물산이 현재 시가 기준 20조원 이상,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해 30조원에 가까운 현금을 확보하면 삼성전자 지분을 추가로 매입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발생할 세금을 고려, 충분한 재원 마련을 위해서라도 바이오로직스의 기업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바이오로직스의 기업가치가 높아지면 <삼성물산→바이오로직스>, <삼성생명→삼성전자> 지분의 등가 교환도 점차 가능한 시점이 다가온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개편은 각 계열사 간 지분거래 등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바이오로직스가 각 회계연도마다 실적을 경신하고 있다는 점은 지배구조개편에 긍정적인 요소이다. 바이오로직스의 지난해 영업이익(5373억원)은 전년 대비 84% 늘었고, 매출(1조5680억원)은 34.6% 증가했다. 최초로 흑자를 기록한 2017년 이후, 영업이익은 8배, 매출은 3.4배 확대했다. 이 같은 실적에 힘입어 바이오로직스는 2025년부터 잉여현금흐름(FCF)의 10% 내외 수준에서 현금배당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현금 배당이 현실화하면 삼성물산이 최대의 수혜를 얻는 구조다.
바이오에피스의 지분 인수를 위해 현금 유출이 있었으나 주주배정 유상증자 등을 통해 자금소요를 충당했다. 바이오에피스는 연간 약 8000억원의 매출, 1500억원가량의 영업이익을 기록하고 있다. 바이오에피스가 100% 자회사화 하면서 연결기준 바이오로직스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크게 늘어난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이번 지분인수가 신용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평가했다.
이번 지분 인수를 통해 바이오에피스의 기업공개(IPO) 가능성 또한 재조명 받고 있다. 2016년 바이오에피스는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다 결국 철회했다. 이는 나스닥 지수의 급락과 무관하지 않지만 바이오젠과 합작 형태인 지분구조도 걸림돌로 작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분 정리가 완료되면서 언제든 IPO를 추진할 수 있는 배경이 마련된 셈이다. 에피스의 기업가치가 시장에서 인정받으면 바이오로직스가 일부 현금을 마련함과 동시에 기업가치를 한층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