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측은 ICT, 노조는 글로벌 사업"...전문가 기용한 KB
여성 사외이사 선임한 신한·우리..."이사회 독립성 강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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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회장의 ‘거수기’라고 비판받던 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이 달라지고 있다. 영향력이 막강해지고 독립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 자연스레 누가 사외이사가 되느냐도 금융권의 관심사가 됐다. 최근 트랜드는 ‘여성’, ‘전문가’ 사외이사가 약진하는 모습이다.
주주총회를 앞두고 금융지주들은 신임 사외이사 추천에 나서고 있다. KB금융지주는 오는 25일 주주총회를 여는데, 최대 안건은 사외이사진 변경이다. 올해 임기가 만료되는 사외이사 대부분이 연임을 추천받았고 신규 사외이사 후보로 두 명이 이름을 올렸다.
사측에서 추천한 사외이사는 최재홍 강릉원주대학교 멀티미디어공학과 교수다. 최 교수는 카카오 사외이사를 6년간 역임하면서 카카오가 대기업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한 ICT(정보통신기술) 전문가다. ICT 뿐만 아니라 핀테크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한 인물로, KB금융이 대면 영업점에서 비대면으로 확대하는 차원에서 적절한 인물이라는 평이다.
노조 측이 추천한 사외이사는 김영수 전 수출입은행 부행장이다. 김 전 부행장은 수출입은행 국제금융부, 홍콩현지법인 등에서 근무한 글로벌 사업 분야의 전문가다. 노조는 KB금융지주가 글로벌 사업에서 발생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 김 전 부행장을 추천했다. 노조 측에선 2017년부터 꾸준히 사외이사를 추천했으나, 주총 문턱을 넘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 주총 결과에 이목이 집중된다.
신한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는 여성 사외이사를 추천했다. 신한금융이 추천한 사외이사는 김조설 오사카상업대학 경제학부 교수다. 김 교수는 여성 경제학자로서 인권과 사회복지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 받았다. 일본 오사카 출생의 김 교수는 재일교포 출신인 최경록 이사 자리를 이어받을 예정이다. 신한금융은 “ESG 및 금융소비자 보호 전략 추진에 기여하고 다양한 주주들의 의사를 공정하게 대변하는 사외이사로서의 책무를 충실히 이행할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우리금융지주는 송수영 세종 변호사를 추천했다. 우리금융 이사회에 여성 사외이사가 합류하는 첫 사례다. 우리금융은 송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추천한 이유로 성별 다양성, ESG 강화를 꼽았다. 송 변호사는 세종에서 PE 자문 등 금융과 ESG 분야를 주로 담당하는 법률 및 ESG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이사회의 성 다양성 제고는 물론 금융·경제·경영 분야 외에도 법률 및 ESG 분야 등 이사회의 집합적 전문성을 강화하는데 필요한 전문가를 우선적으로 고려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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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외이사 자리를 여성들이 꿰차는 데는 올해 8월부터 시작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의 영향이 크다. 개정안에 따르면 자산총계(금융회사의 경우 자본총계) 2조원 이상인 상장회사는 이사회를 특정 성별로만 구성하면 안된다. 각 금융지주 역시 의무적으로 여성 사외이사 1명 이상이 필요하다.
여기에 더해 각 금융지주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풀 수 있는 사외이사들이 선호되고 있다. 디지털, ESG 경영 등 최근 경영 현안에 대한 전문가들이 중용되고 있는 것이다.
신임 사이외사들의 역할은 비단 여기에만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신한금융, 우리금융, KB금융은 내년에 회장 임기가 만료된다. 사외이사들 임기가 2년인 점을 감안하면 이들은 차기 회장 연임 의사 결정이란 중책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 금융지주 회장들의 셀프연임을 두고 사외이사들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컸는데 최근에는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있다. 단순히 성비를 맞추는데 그치지 않고 보다 선진적이고 독립적인 이사회 구성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리금융의 경우 과점주주 체제가 형성되면서 각 과점주주가 추천한 인사가 사외이사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회사 경영진보다는 자신을 추천한 과점주주의 이해관계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사회 구성만 놓고 보면 4대 금융지주 이사회 중에서 가장 독립성이 높은 이사회란 평가가 나온다. 차기 회장 선임에 있어서도 셀프연임이 힘든 구조다. 이번에 추천된 송수영 변호사는 회사 측에서 추천한 인물이다.
KB금융 이사회의 독립성은 타 금융지주보다 상대적으로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4년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이 맞붙은 ‘KB사태’ 이후 회장 선임 절차 및 후보군 양성 시스템을 개선했다.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서도 지주 회장을 전면 배제하고, 회장 선임과 관련한 이사회 내 위원회 구조를 개선했다. 이사회 구조만 놓고 보면 이사회 의장의 권한이 회장보다 커졌다. 여성 사외이사도 2병(최명희 내부통제평가원 부원장, 권선주 전 IBK기업은행장)이나 포진한 만큼 이들의 이사회 내 영향력이 크다.
신한금융지주도 바뀌고 있다. 신한금융이 IMM PE를 비롯해 사모펀드들을 새로운 주주로 초빙하면서 사외이사 구성에서 이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IMM PE는 이윤재 전 대통령재정경제비서관을 사외이사로 추천한 바 있다. 이들이 새롭게 사외이사진에 합류하면서 회사와 별개로 독립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가 갖춰졌다는 평가다.
지난해 4대 금융지주 이사회에서 113건의 의결안건이 논의됐는데, 신한금융지주가 유일하게 안건이 수정돼 결의됐다. 사외이사들이 안건과 관련해 경영진에게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응방안을 요청하는 건도 금융지주 중에 가장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차기 회장 선임에 있어서도 이들이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대적으로 하나금융지주, 농협금융지주는 이사회 내에서 회장의 역할이 여전히 크다. 농협금융지주는 대대로 외부인사들이 회장에 중용되면서 이들이 이사회 내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농협중앙회장을 정점으로 한 수직적인 구조가 당분간은 바뀌기 쉽지 않다는 평가다. 다만 하나금융지주의 경우 4연임을 한 김정태 회장이 물러나면서 앞으로 이사회 구성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각 금융지주마다 이사회의 색깔이 달라지고 있다”라며 “이사회의 독립성이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전문가’로 대변되는 새로운 사외이사들이 어떤 역할을 할지 지켜봐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