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흐릿하고 巨野 협조 불투명…해외 변수까지
"새정부 규제 완화 나선 후에야 기업 움직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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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20대 대통령선거가 정권교체로 마무리되며 자본시장과 기업들의 활동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현 정부의 정책이 호평을 받지 못한 터라 지금보다는 기업활동하기 나아지지 않겠느냐는 예상이 있지만 당장 큰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전망도 많다. 당선인이 기업경제 정책에서 선명성을 보이지 못했던 데다, 거대 야당과의 협치 가능성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등 해외 변수의 영향력도 커졌다. 자본시장에선 새 정부가 어떤 정책과 요청을 내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며 관망세를 보이고 있다.
20대 대통령선거 개표 결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불과 0.73%포인트차로 신승했다. 대선이 정권 교체로 결론남에 따라 국내 정세의 가장 큰 불확실성이 사라졌다. 대선에 촉각을 기울인 많은 기업과 자본시장 참여자, 경제 단체 등은 이제는 이번 결과가 어떤 변화로 이어질지 관심을 두고 있다. 특히 새 정부 초기의 관계 설정은 중요하다는 분위기다.
시장에선 벌써 대선 결과가 반영되고 있다. 이번 정권 말기 공적으로 떠오른 네이버·카카오의 주가가 동시에 반등했고, 대규모 주택공급 약속 기대를 반영하듯 대형 건설사들의 주가에도 힘이 실렸다. 탈원전 정책의 타격을 받은 두산중공업은 이날 사명을 바꾸며 미래 지향점을 드러냈고, LG전자는 이에 앞서 지난달 태양광 패널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다만 당분간 시장에서 이 이상의 변화가 나타나기는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 많다. 경제단체들이 일제히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달라 당부하고 있지만, 대통령이 바뀐다고 뾰족한 수가 생기겠냐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이번 대선은 명확한 비전이나 철학 대결이라기보다는 철저한 네거티브 싸움으로 치러졌다. 서로 흠집내기에만 집착하다보니 정작 정책 마련에는 큰 신경을 쓰지 못했다. 자문 업계에선 대선 공약 분석에 나섰다가 내용이 너무 없어서 황당했다는 평이 나오기도 했다. 윤석열 당선인은 유튜브 채널 출연, RE100 논란 등을 거치며 기업과 경제 분야에서의 전문성이 부족한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취임 전까지 공약과 정책을 현실성있게 만드는 것이 우선이란 지적이다.
윤 당선인과 새 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정하고 밀고 나가려 해도 동력이 있을지 미지수다. 새 정부는 탄핵 후 민심과 강고한 지지층을 업었던 현 정부와는 시작점이 다르다. 지금 국회 의석도 3분의 2가량은 민주당이 잡고 있다. 새로운 경제 정책 수립이나 기업 지원, 규제 완화, 재원 마련 등에서 국회의 도움이 필요한데 대선에서 석패한 거대 야당이 순순히 협조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물적분할 제도 개선처럼 양쪽이 공감한 문제가 아니라면 공조가 어려울 수 있다.
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다음 총선까지 2년간은 여소야대 국면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윤석열 정부는 정책 수립부터 예산 마련, 주요 인사까지 국회의 지지를 받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이 새 정부가 들어선다는 기대감에 먼저 움직일 것으로 예상하기도 어렵다. 섣불리 움직였다가 정책 방향이 틀어지면 전략 수정에 따른 기회 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이제 당선인이 정해진 지금은 물론 정부 출범 초기에도 관망세를 보일 수밖에 없다. 이런 분위기는 과거 새 정부가 들어설 때에도 비슷했다.
기업들은 정책 변화 예측보다 당장의 사업 관리가 더 중요한 상황이다. 팬데믹 후 실적 반등은 작년 말부터 끝이 보이기 시작했고, 유망 사업의 기반은 국내에서 해외로 옮겨가고 있다. 핵심 해외 시장에 어떻게 진입해서 경쟁할 것인지가 생존의 가장 큰 고민 요소가 됐다. 좁은 국내 시장의 정세 변화를 대수롭게 여길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몇 년째 공회전인데, 해외 반도체 투자 속도는 빨라졌다.
무엇보다 지금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모든 것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대기업들은 공급망을 관리하며 사태의 여파를 살피고 있지만 묘수가 없는 상황이다. 수출과 결제가 어려워졌고, 루블화 가치 폭락에 러시아의 보복 조치도 걱정해야 한다. 글로벌 매크로 시장을 둘러싼 불확실성에 비춰보면 정권이 유지되느냐 바뀌느냐는 사소해보이는 문제란 지적이다.
대기업 입장에선 국내서 움직임은 새 정부에서 ‘청구서’가 날아들 때 고민해도 늦지 않다. 새 정부가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살리겠다고 광고를 하면, 어차피 기업들도 얼마간의 성의 표시는 해야 한다. 삼성, SK, 현대차 등 유수의 그룹들도 이번 정부가 들어선 후 정부 행사에 적극 협조하고 대규모 투자 계획을 내놓았다.
다른 자본시장 관계자는 “해외 사업에 신경이 쏠린 기업들이 새 정부가 출범했다고 국내에서 적극 움직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정부가 규제 완화 등 당근을 들고 손짓을 한 후에야 투자 계획을 밝히는 식으로 화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사업 조정 움직임도 조심스럽다. '정권 재창출'에 무게를 두고 지배구조 개편을 준비하던 기업들은 계획을 백지화한 분위기다. 일자리 감소가 수반되는 구조조정은 새 정부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된다. 내부에서 인력 조정을 완충할 수 있는 대기업 그룹의 경우가 아니라면 사업 철수 카드를 꺼내기 쉽지 않다. 작년까지는 대기업이 정리하거나 분할해서 내놓는 사업부가 M&A 시장의 활기를 불러왔었지만, 올해는 적어도 2분기까지 거래 소강 상태가 이어질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기업들이 기존에 진행하던 신사업을 갈아엎지는 않더라도 세부 전략을 짜는 과정에선 새 정부의 정책 방향을 살펴야 하는데 전망이 쉽지 않다”며 “해외 변수까지 있어 섣불리 사업 전망을 내거나 계획을 짜기 힘들기 때문에 다들 옆에서 어떻게 움직이느냐를 주시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