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사태로 원자재 상승…건조 자금 유입도 난망
채권단 신규자금 지원 부정적…당분간 자체 살림해야
당장 현금흐름 위주 수주에 산은 관리 부실 가능성도
-
대우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그룹으로의 편입이 무산된 데다 작년 실적도 5년 만에 적자 전환하며 암운을 드리웠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각종 원자재 가격은 오르고, 자금 계획이 꼬일 가능성도 커졌다. 회사가 3년치 일감을 쌓아뒀다지만 이익으로 이어질지 미지수다. 주인 없는 회사 체제가 이어진다면 수익성보다는 당장의 현금흐름에 집중한 수주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정치적 변수도 많은 상황이라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 관리의 고삐를 죄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일 한국조선해양은 대우조선해양 M&A와 관련해 산업은행과 맺은 계약들을 합의해제했다고 밝혔다. 1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두 회사의 기업결합 심사를 최종 불허한 데 따른 것으로, 2019년 M&A 발표 후 3년여 만에 거래가 최종 무산됐다.
대우조선해양은 같은 날 2021년 실적도 발표했다. 매출 4조4866억원과 영업손실 1조7547억원을 기록, 2016년 이후 5년 만에 적자전환했다. 회사는 지난 2~3년간 수주 부진으로 매출이 급감했고, 자재 가격 상승으로 약 1조3000억원의 공사손실충당금을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최근엔 우크라이나 사태 변수도 생겼다. 회사는 이미 상반기 후판 조달가격 가정 변경에 따른 충당금을 설정했는데, 이런 후판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면 하반기에도 추가 충당금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국제 제재로 러시아 선주로부터 수주한 선박의 건조가 지연되거나 취소될 경우 매출 하락이 불가피하다. 코로나 재확산으로 인한 조업 일수 감소, 인건비 증가 등도 부담스럽다.
각종 악재가 겹치며 대우조선해양의 재무구조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M&A가 원래대로 됐다면 대우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그룹으로부터 1조5000억원의 증자금을 받았겠지만 없던 일이 됐다. 회사의 유동비율은 2019년 144%, 2020년 116%를 거쳐 작년 85% 수준으로 떨어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자본총계는 2019년 3조7548억원, 2020년 3조8689억원에 이어 작년말엔 2조원 초반대로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자본이 사실상 수출입은행이 가지고 있는 영구 전환사채(CB, 2조3000억원)로만 이뤄진 셈이다.
-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에 신규자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면서도 회사의 정상화 가능성에 대한 확인 없이는 추가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달 경영 컨설팅을 거쳐 대우조선해양 정상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는데, 뾰족한 수가 있을지 미지수다. 회사는 당분간 추가 자본유치 없이 자체적으로 살림을 꾸려야 한다. 채권단은 유럽연합 심사를 기다리며 회사의 여신 만기를 올해 말까지 1년 연장해준 바 있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러시아에서 발주한 선박은 스위프트(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 퇴출 등 영향으로 선수금이나 잔금을 받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대우조선해양 입장에선 원자재를 투입해야 하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며 “가뜩이나 회사 살림살이는 어려워졌는데 채권단은 당분간 추가 자본을 넣어줄 생각이 없기 때문에 채권단이 열어둔 대출로 필요 자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 입장에선 조선 업황이 살아나고 수주가 늘고 있는 점은 다행이다. 작년 수주 금액은 108억6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2배 늘었고, 올해도 2월말까지 27억2000만달러를 수주해 순항하고 있다. 앞으로 3년치 일감은 확보했다. 선박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며 선가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조선업계의 골치거리인 미인도 드릴십의 평가 가치가 오르거나, 매각 이익이 반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수주 잔고가 많다고 항상 덕을 보는 것은 아니다. 과거 추세를 보면 수주를 적게 했다고 몇 년 후 이익이 줄거나, 많이 했다고 이익이 늘어난 것은 아니었다. 회사가 강점을 가진 고부가가치 선박이자 일감의 40%가량을 차지하는 LNG운반선조차 이익률이 1~2%에 불과하다. 선가의 5% 수준인 LNG 탱크기술 로열티보다도 이익 규모가 작다. 그나마 이 정도도 수주가 꾸준히 이뤄지고 원가 관리가 이상적으로 잘 됐을 때나 가능하다는 평가다.
산업은행이 관리하는 회사의 경영진이 능동적으로 움직이기는 어렵다. 2019년 취임한 이성근 사장은 M&A 불확실성 속에 보수적인 행보를 보였는데, 새로 취임할 박두선 사장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당장 딸린 식솔들이 많다 보니 수주할 때도 나중에 얼마나 수익으로 돌아올 것이냐 보다는, 임기 동안 얼마나 유동성이 원활히 유입되느냐에 집중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당장 대우조선해양의 새 주인을 찾기 어렵다면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이 쓴소리를 해야 하는데 이 또한 쉽지 않다. 국책은행이 나서면 바로 노조가 들고 일어서고 지역 민심도 흉흉해지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가 정권 교체로 마무리 되며 이번 정부의 요인인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의 입지는 모호해졌다. 이 회장이 임기를 채우든 그렇지 않든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산업은행이 과감한 결단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산업은행의 관리 역량 부재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몇해 전 대우조선해양 노사가 이면 계약을 통해 한달치 월급을 몰래 가져간 적이 있는데, 산업은행은 이를 되돌리지 못하고 임원진을 면직 처리하는 데 그쳤다. M&A가 진행되는 기간엔 노사가 경각심을 가졌을 것이라지만, 반대로 산업은행 관리 체제에서 이런 사례가 다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한 조선업계 전문가는 “조선사 이익률이 안정화 됐을 때도 3~4% 수준에 그치는데 프로젝트 하나 잘못 맡으면 한 순간에 1조~2조원 손실이 나기도 한다”며 “철저히 수익성 위주로 수주한다는 의지 없이 당장 임직원 월급 줄 수 있는 일감만 따와서는 독자 생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