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캠 유증 실권주 인수 후 ‘최대주주’ KB증권, 의결권 없어 속수무책
과도한 퇴직금에 배임 논란…”주총 통과되면 법적 다툼 여지 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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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일부 코스닥 바이오 상장사들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황금낙하산 조항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황금낙하산 조항이란 적대적 인수합병(M&A)로 회사의 경영진이 퇴임할 때, 기존 경영진에게 거액의 퇴직 위로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기존 경영진의 경영권 방어에 효과적이지만, 소액주주의 지분 가치를 떨어뜨릴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천문학적 퇴임 보수를 현 경영진에 보장해주는 것이 '배임'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논란도 현재진행형이라는 평가다.
2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일부 바이오 업종의 코스닥 상장사들이 황금낙하산 조항을 정관에 신설할 계획이다. 엔지켐생명과학은 통상적인 퇴직금 이외 퇴직보상금으로 대표이사에게 200억원, 사내이사에게 100억원을 퇴직 후 7일 이내 지급하는 정관을 신설키로 했다. 대표이사의 퇴직금은 엔지켐생명과학의 지난해 매출액(229억원)과 비슷하다.
퀀타매트릭스도 적대적 인수합병로 경영진이 교체되는 경우, 대표이사에게 100억원, 이사에게 50억원을 퇴직금 외에 지금하는 안건을 올렸다. 노터스와 아이센스, HLB 등 그 이외 상장사들도 적대적 M&A 방어 정관을 신설할 계획이다.
통상적으로 대주주 지분율이 낮은 회사들이 황금낙하산을 도입한다. 손기영 엔지켐생명과학 대표이사의 지분은 7.4%다. 권성훈 퀀타매트릭스 대표이사와 펩트론 최호일 대표의 지분도 각각 13.55% 8.38%에 불과하다.
특히, 바이오 회사의 경우 상장 전에 매출이 안 나오는 상태가 많아 투자를 받으면서 대주주 지분율이 희석되는 경우가 많다. 바이오 업종 상장사의 황금낙하산 조항 신설이 더 많은 이유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대주주 지분이 낮으면 적대적 인수합병에 대한 불안감이 있기 때문에 경영권 방어 조항을 넣는 것”이라며 “거액의 퇴직금 조항을 넣어 인수하려면 엄청난 돈을 쓰게끔 만들어서 인수 매력도를 떨어트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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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켐생명과학의 경우, 이번 주총을 앞두고 KB증권과 묘한 긴장감을 연출하고 있기도 하다. 엔지켐생명과학은 기존 이사를 해임하거나 신규이사를 선임하려면 발행주식 총수의 75% 이상, 출석주주 80% 이상이 동의해야 가능하도록 정관을 변경하기로 했다. 이사의 인원도 9명에서 7명으로 줄였다.
엔지켐생명과학의 현재 최대주주는 KB증권이다. 경영권을 인수한 건 아니었다. 1685억원 규모 엔지켐생명과학의 유상증자를 주관했다. 그러나 흥행에 실패하면서 실권주를 모두 떠안아 지분율 27%의 최대주주에 등극했다. 3월에 세 차례에 거친 블록딜로 8.76%를 매각했지만 아직까지도 최대주주(19.21%)다.
KB증권의 법적인 지분 취득일은 올해다. 올해 정기 주총에서 의결권 행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경영권과 관계없는 지분이긴 하지만, 정관이 변경되고 나면 소액주주 지분 자체가 의미가 없어져 처분이 더 힘들어질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23일 기준 엔지켐생명과학의 주가는 2만9000원대로 KB증권이 총액인수한 주가(3만1800원)를 밑돌고 있다.
황금낙하산 제도의 민사상 유효성 여부와 업무상배임죄를 적용할 수 있을지 논란도 제기된다.
한 대형 법무법인의 M&A 담당 변호사는 “과도한 보수를 수령하는 임원에게 배임 논란이 일듯이, 황금낙하산 제도에 대해서도 배임의 소지를 볼 수 있다”며 “법조계에서도 황금낙하산 제도의 실효성에 의견이 분분하다”고 말했다.
물론 실제 경영진의 처벌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상법상 이사의 보수는 정관 또는 주주총회에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주주총회 결의로 황금낙하산 제도를 만들었다면 유효하다는 견해가 우세한 상황이다. 국내에서 이와 관련한 처벌 사례도 사실상 전무하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황금낙하산 조항은 자본주의 시장의 자유로운 경쟁과 인수합병을 막아버리는 것”이라며 “회사의 자체적인 효율성 뿐만 아니라 자본시장의 전반적인 효율성을 떨어트려 시장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